흥남철수 빅토리호 선원 “피란민 2세 문 대통령, 평화의 리더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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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50년 흥남철수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로버트 러니. [사진 안정규 JTBC 뉴욕기자]

1950년 흥남철수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로버트 러니.[사진 안정규 JTBC 뉴욕기자]

1950년 12월 흥남부두. 등 뒤에서 총탄이 날아오는 급박한 상황에서 피란민들은 아슬아슬하게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올라탔다.

대통령 방미 때 만나는 90세 러니 #굳건한 한·미 동맹 이어갈 거라 믿어 #살아있을 때 통일 한반도 보고 싶어

레너드 라루 선장은 마침내 1만4000여 명의 피란민을 빼곡히 싣고 거제도로 ‘생명의 항해’를 시작했다. 당시 빅토리 호는 7600t 급 화물선이었다. 거제도에 도착하기까지 사흘간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5명의 아이까지 태어났다. 기적적인 생명구출 작전이었다. 빅토리 호는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해낸 기록으로 2004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흥남철수의 진정한 영웅은 자유를 찾아 배에 올라탄 피란민들이었습니다.”

2001년 세상을 떠난 라루 선장 밑에서 빅토리 호의 상급선원으로 생명구출에 일조한 로버트 러니(90·은퇴 변호사)를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브롱스빌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당시 모습을 떠올리며 간혹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시 빅토리 호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와 누나가 타고 있었다.
“우리는 피란민을 태우기 위해 군수 물자를 포기했다. 또 일가족이 흩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구출해낸 피란민 중에 한국의 새 대통령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감격스러웠다. 문 대통령의 부모님이 빅토리 호에 타지못했다면 문 대통령은 현재 위치에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문 대통령은 가족이 거제도에 도착하고 3년 뒤인 1953년 1월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에서 태어났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선 젊은 러니. [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선 젊은 러니. [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당시 흥남부두 상황이 어땠나.
“인천 상륙작전 당시 미군 제7사단을 태우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해 12월15일 전투기 연료를 싣고 부산에 도착했다. 선박에 아직 하역하지 못한 300t 가량의 연료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흥남철수 작전지원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작전은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안다. 연료를 내릴 시간도 없이 빅토리 호는 흥남으로 떠났고 22일 도착했다. 부두 전체는 10만여 중공군에 포위된 상태였다. 퇴로는 해상밖에 없었고, 피란민 3만~4만 여명이 부두에 몰려있었다. 미군 제3사단장으로부터 피란민을 태우고 퇴각할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라루 선장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때부터 피란민을 태우기 시작했다. 피란민들이 빅토리 호에 탑승하는 16시간 동안 불과 5㎞ 앞까지 뒤쫓아온 중공군은 극한의 공포였다. 23일 흥남부두를 떠난 빅토리 호는 24일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이미 피란민들로 가득 찬 부산항에 입항하지 못하고 거제도로 배를 돌렸다. 성탄절인 25일 거제도에 도착한 빅토리 호에서 피란민들이 차례로 내렸다. 그들이 육지에 내려 빅토리 호를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문 대통령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문 대통령은 이달 말 방미 기간 러니를 워싱턴DC로 초청해 만나기로 했다.)
“먼저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전쟁으로 초토화된 한국을 한국인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일으켰는지에 대해 내가 느끼는 경애심을 전달하고 싶다. 그가 평화를 추구하는 훌륭한 리더가 될 것으로 믿으며, 미국과 가까운 동맹을 이어나갈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미주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그들의 자녀가 얼마나 우수한 인재로 성장하고 있는지, 그들이 미국 경제발전에 얼마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새 대통령에게 말해주고 싶다. 끝으로 내가 살아 있을 때 통일된 한반도의 모습을 보고싶다.”  

흥남철수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러니는 1953년 코넬대 법대에 진학해 55년부터 50여 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8년 은퇴했다. 이후에는 안재철 월드피스자유연합 이사장과 빅토리 호의 감동적 스토리를 전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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