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권위와 독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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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재판의 생명은 공정과 신속이다. 그중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으뜸으로 친다.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한다는 것도 공평무사한 재판을 위해서다. 공정한 재판은 재판결과가 공정해야 한다는 뜻 못지않게 재판 절차와 진행 과정에서의 공정성이 유지되어야한다는 취지도 함께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재판절차와 진행의 공정성이 더 중요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재판의 결과는 다름아닌 재판과정에서 추출되기 때문이다. 재판이 진실을 규명해내는 작업이고 그 결과를 판결로써 말하는 것이라면 진실을 캐내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때문에 사람을 재판하는 형사소송 절차에서 적법하고 공정한 절차를 가장 중시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이같은 재판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기위해 피고인이나 검찰이 재판부를 기피할 수 있는 조항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재판을 담당한 법관에게도 스스로가 재판을 회피할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해당 법관이 피해자일때는 말할것도 없고 피고인이나 피해자가 가족관계에 있거나 증인일때등 공정성 유지에 사심이나 이해관계가 개입될 소지가 있으면 스스로 그 재판을 피하도록 하고있다.
자유당 때 강직하기로 이름났던 어느 법관은 피고인이 동향인이라는 이유하나로 다른 법관에게 사건을 넘겨준 일도 있었다. 이처럼 재판에 임하는 법관은 스스로의 자세를 가다듬고 법정과 재판의 존엄성을 지켜왔다.
요즘은 어떠한가. 법원은 최근법관 스스로가 회피하는게 아니라 변호인(피고인)들이 재판부가 공정치 못한 재판을 하고있다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잇따라 내고 있다고 한다.
이건 예사일이 아니다. 법관은 물론 사법부의 권위와 존엄성을 보아서도 불행한 일이다.
어떤 시국관련 사건에서는 무려9차례나 재판부 기피신청이 있었고 2,3차례 기피는 보통인 모양이다.
변호인들의 기피신청 이유는 법관이 재판을 서두르고 유죄의 예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당국은 변호인들이 재판을 늦추기 위해 법관기피신청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며 신청을 모두 기각 또는 각하하고 있다. 법원은 또 야당의원이 관련된 사건의 경우 임기 중 유죄가 확정되면 의원직 상실 등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때문에 기피신청을 악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법원의 주장대로 그런 측면이 능히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변호인들의 주장처럼 유죄의 예단까지는 몰라도 사건당사자가 아닌 일반에게도 법원이 어쩐지 재판을 서두르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실제로 재판을 서둘렀는지는 알수 없으나 그같은 인상만이라도 받게 했다면 사법부의 신뢰나 명예를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다른 것은 다 접어두고라도 신성해야할 사법부에서 그런 세왕세내가 있었다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기피신청이 잇따르고 재판의 공정성이 운위되고 시끌시끌해진 것 그 자체가 유쾌하지 못하다.
야당의 당수가 대법원장을 찾아가 공정한 재판운용을 요구하고 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고 엊그제 퇴임한 대법원 판사가 『바깥 입김의 부담을 느끼는 법관』을 걱정하는 상황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시국관련 사건으로 사법부의 신뢰가 몽땅 심판받을 수는 없다.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는 재판결과는 물론, 재판과정의 공정성에서 구축된다는 것을 명심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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