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차폐지는 임금삭감 생리휴가도 유급화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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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움직임이 부쩍 빨라졌다.

재계가 21일 정부의 주5일 근무제 입법안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데 이어 정치권도 이 법안의 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여전히 정부 입법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재계와 정부가 짜고 노동계를 배제한 채 법을 만들려고 한다"며 비난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계가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임금이 줄어든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월차 휴가의 경우 지금까지는 사용하지 않을 경우 돈으로 받았다. 여성의 생리휴가도 그랬다.

따라서 이들 휴가는 사실상 임금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그래서 월차 휴가가 폐지되고 생리휴가가 무급화되면 임금이 삭감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물론 노동계가 무조건 월차 휴가 폐지나 생리휴가 무급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건을 국제 기준에 맞추려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만은 제도를 폐지하더라도 지금처럼 보전해 달라는 것이다.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은 "현 노동자에게 보전해 달라는 것이지 향후 미래 노동자에게까지 보전해달라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일단 현 노동자의 임금이 떨어지는 일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노동계의 속사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노동계로서는 노동자들의 월급이 줄어들면 상급단체에 책임을 묻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임금과 관련된 ▶휴가▶초과근로수당▶임금보전 조항 등에 매달리고 있다.

노동계는 시행 시기도 문제삼고 있다.

정부 안대로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하면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박탈감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아이들이 '우리 아버지는 대기업 근로자라서 쉬고, 네 아버지는 중소기업이라서 일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계층 간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노총은 늦어도 2005년까지는 모든 사업장이 주5일 근무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은 한발 더 나아가 법 공포 후 7개월 이내에 모든 사업장에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가 주5일 근무제 입법의 발목을 계속 잡기에는 주변 여건이 좋지 않다. 당초 정부 입법안에 반대하던 재계가 정부 안을 받아들인 데다 현장 노동자들도 "어떤 형태로든 빨리 마무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노총은 다음달 15일까지로 예정된 주5일 근무제 관련 재협상을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주5일 입법안 반대를 외치며 23일 총파업을 선언했던 민주노총도 파업을 유보했다.

한국노총 이정식 대외협력본부장은 "8월 15일 이전에 노사 간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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