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씨 한국으로 보내야한다|국제법에 비춰본 처리 방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13일 신상옥·최은희 두 사람이 북한의 감시 체제를 극적으로 탈출하여 미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리 정부가 복잡한 이 사건에 올바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에 얽힌 국제법적 문제를 정확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의 법적 문제는 ①어느 나라가 어떤 관할권을 가지느냐 ②신상옥·최은희 두사람의 국적은 어떻게 되는가 ③이 사건은 정치 망명인가 아니면 납치 희생자의 탈출인가 ④두 사람의 의사가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⑤우리 정부는 어떤 법적 근거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한미가 주된 관할국>
첫째 이 사건에 관련된 나라 및 남북한의 관할권에 관하여 생각해 보면 ▲문제의 두사람이 미국 대사관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하였고 현재 미국의 관할 하에 있으므로 미국이 이 사건의 관할권을 갖는 것은 틀림없다 ▲오스트리아는 이 사건 발생의 영토 국가이며 두 사람이 제3국으로 가기 위해서도 오스트리아의 영도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역시 관할권을 갖고 있다.
또 ▲한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신·최 두사람은 납치된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인적 관할권을 갖는다 ▲이 두사람은 북한에서 살다가 탈출하였기 때문에 북한 당국도 관련되어 있다.
관련된 두 나라와 한국 및 북한의 관할권 관계를 생각해보면, 신·최 두 사람이 북한에 납치된 것이 확실하다는 조건하에서 미국과 한국이 주된 관할권 당사국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건이 정치 망명이며 외교 공관에의 정치 망명이 국제법상 확립되지 않았다고 하여 오스트리아가 영토 국가로서 1차적 관할권을 갖는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이것은 이 사건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외교 공관에의 정치 망명이 크게 문제된 것은 50년 및 51년 Hayade la Torre 사건에서 페루에 있는 콜롬비아 대사관에 페루 정부를 전복하려다 실패한 사람이 망명을 요청한 경우, 58년 「민젠티」 추기경 사건에서 헝가리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헝가리 정부를 반대하는 「민젠티」 추기경이 망명을 요청한 경우처럼 영토 국가와 거기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관의 이해 관계가 정면으로 대립하는 경우다.
위와 같은 경우에는 외교 공관에의 정치적 망명이 국제법상 확립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실제로는 양국의 교섭에 따라 제3국으로 보내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신·최 두 사람은 오스트리아 법을 위반한 일도 없으며 그 정부를 반대한 일도 없다.

<귀환에 적극 나서야>
따라서 오스트리아 주재 미국 대사관의 특권과 면제가 인정되는 범위에서, 또한 오스트리아가 특별한 이해 관계를 갖지 않는 한에서 미국이 1차적인 관할권을 갖게 된다. 다만 미국은 영토 국가인 오스트리아와 사건 처리 과정에서 영토 통과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당연히 협의해야 한다.
미국·한국·북한의 관할권 관계는 두번째 문제인 신·최 두사람의 국적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
84년 한국 정부 발표에 의하면 신·최 두 사람은 분명히 북한 공작원에 의하여 납치되었고 따라서 한국적에 변동이 없다.
북한에 8년간 체류한 점을 들어 귀화에 의한 국적 변동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귀화란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관계 국가의 국적법상의 요건을 충족시켜야한다. 또한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실효적 실질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55년 Nottebohm 사건 판결 등 국제 판례의 입장이다.
두사람이 탈출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78년에 납치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해줄 것이다. 또한 한국의 입장에서 북한은 한국 영토의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정치적 집단이다. 모든 점을 종합하여 볼 때신·최 두 사람은 한국의 국적을 가진 한국 국민이며 따라서 한국은 두 사람에 대하여 인적 관할권을 행사할 권리·의무가 있다.
세째 이 사건이 정치적 망명이냐, 납치 희생자의 탈출이냐도 규정해야할 중요한 문제다. 정치 망명이란 A국가의 국민이 정치적 이유로 A국가로부터 심하고 부당한 탄압을 받거나 받을 염려가 있을 때 B국가의 영토나 외교 공관·군함 등에 피신하여 보호를 청하고 A국가로 인도되지 않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최 두사람이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한국 사람이라고 보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정치 망명이 될 수 없고 불법 납치된 희생자들의 탈출이다.
미국은 납치 사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약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납치된 사실을 인정하고 한국이 이 두 사람의 원소속국임을 전제로 하는 것 같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미국에 데려간다 하여도 궁극적으로는 본인이 특히 반대하지 않는 한 한국과 협의하여 원소속 국가인 한국에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네째 본인들이 미국으로 가기를 강력히 원하는 경우의 법적 문제다. 우선 78년 납치 사실이 확인되고 한국에서 정치적 이유로 처벌 받을 가능성이 없으면 본인들의 의사에 불구하고 한국으로 보내야 한다. 본인들의 부채 문제 등은 정치적 이유가 되지 않는다. 미국의 이민법을 적용하여도 같은 결과가 될 것이다.
납치 사실은 인정되나 한국에서 정치적 이유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한국으로부터의 정치 망명이 거론될 수 있으나 한국 정부는 두 사람의 귀국을 환영한다고 하여 처벌가능성을 공식 배제하였으므로 문제가 없다.
다섯째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위에서 밝힌 것처럼 신·최 두사람은 북한공작원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다행히 탈출하여 미국 측의 보호를 받고 있다. 따라서 정치 망명자가 아니라 납치된 한국 국민의 탈출이므로 인적 관할권을 갖는 한국 정부는 좀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또한 오스트리아 법을 위반하지도 않았으며 오스트리아는 이 사건에 특별한 이해 관계도 없고 실제로 별로 관심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신·최 두사람의 국적 국가로서 인적 관할권을 행사하여 미국 측과 접촉하고 본인들과 면담을 요청하며 본인들이 특히 반대하지 않는 한 두사람이 한국 측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교섭해야 한다.

<정치 망명자 아니다>
끝으로 이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나타난 몇가지 점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일본 공동 통신 등에서 이 사건이 크게 보도되고 나서도 오랫동안 침묵을 지킨 일, 둘째 국가의 이해 관계와 국제법적 분석과는 거리가 멀게 정치 망명으로 다루면서 사건이 한국의 관할권과는 관계없이 다른 나라 관할에만 속하는 것으로 취급한 점, 세째 한국 사람이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탈출하였기 때문에 한국인의 관심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며칠동안 신문의 대부분을 차지할만한 사건이었는지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