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리번을 매셔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코라손」은「코리」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려지고 있다. 그만큼 필리핀 국민에겐 친근한 인물로 느껴지는가 보다. 「코라손」은 원래 스페인어로「마음」이라는 뜻이다. 「코리」대통령의 심벌은 노란색이다. 노란색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1983년8월「아키노」가 3년 동안의 미국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마닐라로 돌아올 때 공항에 모였던 수천명의 환영 인파는『떡갈나무에 노란 리번을 매달아요』라는 노래를 합창했다. 『타이 어 옐로 리번 라운드 디 울 오크 트리』(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나는 집으로 돌아가요. 3년의 옥고를 치르고…』이런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다.
그러나「아키노」는 그때 이 합창도 듣지 못하고 세 발의 총격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노래는 미국의 대중가요로 이런 얘기가 담겨 있다. 한 사나이가 3년의 옥고를 치르고 고향에 돌아오는데 그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사랑하는 부인이 도망이라도 가지 않았나 하는 불안을 안고 집 앞에 이르니, 이 무슨 영문인가.
집 앞 울창한 떡갈나무엔 1백개의 노란 리번이 매달려 미풍에 나부끼고 있지 않은가. 그의 부인은 변함없이 정절과 사랑을 지키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리」는 불과 2년 사이에 필리핀의 7천개 섬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그 노란색의 대행진이 오늘의「코리」를 만들었다.
「코리」의 또 다른 심벌은「L」자 사인이다. 그는 군중 앞에선 언제나 팔을 번쩍 들고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펴 보인다. 바로「L」자 모양이다. 이것은「라반」, 곧 투쟁이라는 뜻이다. 연약해 보이는 여성의 사인으로는 걸맞지 않지만 그「라반」의 힘은 거꾸로 굴러가던 필리핀의 수레바퀴를 휘어잡는「삼손」의 힘을 발휘했다.
노란색은 혁명적 패기도, 열정도 없는 색깔이다. 그러나 필리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태양의 광채로 빛났다. 한 여성의 작은 손짓은 20년 독재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물론 양식 있는 군의 봉기가 그 힘이 되었지만, 이들 군인들은「코리」뒤의 노란색 대행렬을 힘의 원천으로 삼았다. 「코리」의 정치 구호 역시「피플 파워」, 국민의 힘이었다. 정치인의 가장 강한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힘은 권력으로도, 탱크로도 밀어버릴 수 없다.
마닐라의 미모리얼 공원 묘역에 있는「아키노」의 묘비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줄 것입니다』
「코리」대통령은 지금 그 묘지에 노란 장미 화환을 바칠 수 있게 되었다.
필리핀 국민도 이제『떡갈나무에 노란 리번을 매달아요…』를 마음놓고 합창할 수 있게 되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