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춘추 공종원<본사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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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숙사회」를 지향한다고 하는 우리사회의 한구석에서 가끔 「유치한사회」의 현상을 보게되어 입맛이 씁쓸할때가 있다.
이른바 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란것을 보면서도 역시 그런것을 느끼게된다.
서울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들이 신입생을 상대로 전개하는 오리엔테이션에 학부모들을 함께 참석시키고 있었다.
유치원 원아도 아니고 국민학교신입생도 아닌 대학신입생들이 학부모에 이끌려 대학에 들어와야한다는 현실이 딱하기만 하다.
물론 오리엔테이션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교육학에서도 학습자가 새로운 교육환경이나 학습활동에 들어 올때 초기에 조직적이고 집중적으로 지도를 행해서 원활한 적응력을 기르는데 이를 이용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새로운 학교의 커리큘럼이나 규칙, 시설의 소개, 교구·교재의 이용, 생활지도등에 관해 지도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오리엔테이션에 학부모를 함께 참석시키는 것은 희귀한 일이다. 82년에 서울대학이 창안한 이래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아뭏든 대학측이 신입생오리엔테이션에 학부모를 참석시키는 목적은 학생들이 정치활동을 할경우 학사징계나 형사처벌등 불이익을 당하게되니까 학부모의 지도를 바라서 이겠다.
어느면에서는 대학의 짐을 학부모와 함께 나눠지겠다는 의도로 불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대학이 자신의 권위와 책임을 학부모에게 미루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부모치고 자기 자식이 정치에 휘말려들어 그런 희생을 당하게되는 것을 바랄 사람은 없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자기 자식만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대학에서 조용히 공부나 잘했으면 하는 것이 거짓 없는 부모의 심정이다.
그런 정황을 모를리 없는 대학이 학부모를 불러내 학생들을 잘 단속해 달라고 설득하는 모습은 이색적이다.
이미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한 젊은이들을 과연 어떻게 단속하란 말인가.
최근 미국의 아동정신병학자 「로버트·콜즈」교수(하버드대)는 10년간의 조사연구를 결산한『어린이의 도덕생활』과 『어린이의 정치생활』에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있다.
『어린이를 잘 보호된 가정에서 키우며 세상일들에 물들지 않게 한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어린이는 어른이 믿고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도덕적 반성과 정치적 상식을 가지고있다』는 것이다.
그는 8살쯤 되는 어린이는 벌써 날카로운 도덕적·정치적 관찰자가 되어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 실례로써 어머니가 카톨릭이고 아버지가 개신교도인 가정에서 자란 8살의 한 소년은 예수가 지금 살아온다면 현실적인 기독교 종파간의 싸움을 볼때 얼마나 당황할 것인가를 걱정했다.
또 메인주의 한 어린이는 그곳의 한 침례교 목사가 도덕적·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간통문제로 교회를 떠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말로는 도덕적 선을 말하면서 행동은 전혀 딴판인 어른들의 도덕적 위선에 대해서 어린이들은 갈등을 느끼기도 한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정치를 모를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북아일랜드나 남아공화국의 어린이들은 벌써 7,8살에 정치적·종교적 싸움에 뛰어들어 한쪽을 편들고 있다. 심지어 6살짜리가 미국의 민권운동에서 흑백분리교육반대에 참여한 일도 있다. 어떤 경우엔 부모들은 어린이들이 개입되는것을 원치 않지만 어린이는 부모의 뜻을 거역한다.
어린이가 부모의 정치적 이념에 따른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때때로 어린이들은 부모와 정반대되는 생각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10살도 안된 어린이들이 그런 형편인데 20살 안팎의 대학생이 자기의 도덕적 분별력과 정치적 견해를 갖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학부모를 대학의 오리엔테이션에 동석시키는 것의 어리석음은 그것으로 분명해진다.
대학이 신입생들에게 대학의 입장과 학칙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 없는 일이지만 학부모를 설득, 위협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다만 어린이가 도덕적 가치관과 정치적 식견을 얻게되는 과정에서 부모와 교육자들의 역할이 중요함은 지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어린이는 생활 속에서 여러가지를 배우지만 특히 부모와 스승들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행동과 판단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등 중요한 많은것을 배우게 된다.
그점에서 어른들이 도덕적 위선이라든가 금권주의 풍조를 극복하고 정치의 화동을 이루려는 진지한 노력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지금 가장 중요한 책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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