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기상 기소여부에 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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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 의원들의 국회 농성사태를 정치협상으로 「무사히」 해결해낸 뒤로도 민정당의 표정은 전혀 밝지가 못하다.
13일 상오 당사에 나오는 노태우 대표위원의 표정도 썩 유쾌하지는 못했고 농성사태 뒤처리를 논의할 예정이었던 당직자 회의도 취소됐다. 그 대신 정순덕 사무총장·이세기 총무 등 핵심 당직자들만 대표위원실을 무거운 표정으로 드나들었다.
심명보 대변인은 여야합의문중 여야 「공동 노력」이란 말이 『불기소의 보장이 아님』을 몇 번이고 거듭 강조해 해명했고, 강용식 대표위원 보좌역은 합의문 1항의 「85년 정기국회 때 의사당에서 발생한 사건」이란 대목이 모호한 표현이라고 지적했으며, 정순덕 사무총장은 의사당의 폭력사태를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이 총무가 감을 잘 못 잡았던 게 아니냐고 까지 했다.
이로 미뤄볼 때 여권의 상층 분위기는 의사당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의법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기조이고 따라서 이에 벗어난 여야합의는 상당히 내부비판을 받았음직 하다.
한 당직자는 『국정연설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는데도 구인장을 발부해 조사를 하겠다는 것을 보면 여권의 의지가 어떻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 않느냐』고 속사정을 귀띔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의사당 사태는 사법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했던 애당초의 방침에 따라 처리되는 것으로 봐야하며 협상타결로 별 영향을 받지 않을 전망이다.
그리고 민정당이 운신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도 아주 비좁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민당측은 이 같은 민정당측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두 국회소집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데 민정당 관계자들은 『연두국회와 이 문제를 연계시킬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한마디로 딱 자르고 있다.
○…정치협상으로 농성을 해제한 후 호의적 사법처리를 기대해온 신민당은 민정당측의 계속된 협상 평가절하 발언과 검찰의 신속한 소환조치에 의아해하는 분위기.
이민우 총재는 농성을 해제한지 3시간만에 검찰의 출두요구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 『여야협상정신을 깬 것』이라고 화를 내면서 『민정당 의원도 조사를 받는지 확인하고 응하라』고 지시.
이 때문에 소환대상 의원들 간에는 『구인장 발부의 연장이 아니냐』며 한때 조사불응 움직임까지 있었으며 대부분의 소속 의원들은 민정당의 분위기가 경직되어 가는 이유를 탐색하느라 부산.
농성해제 직후 신민당 의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정치적으로 농성을 풀 수 있는 명분을 찾은 것은 다행이며 이 같은 대화기조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쪽이었다.
때문에 이 총재는 『검찰이 상식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면 국정연설을 위한 연두국회에는 무조건 등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였고 일부 의원은 『구속된 보좌관 문제도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성급한 기대.
그러나 김동영 총무는 합의문 제3항의 『총무간 대화노력』을 『정치적 해결을 뜻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부·여당이 꼭 그렇게 해줄 것 같으냐는 물음에는 부답.
○…신민당 의원들에 대한 조사는 「금주 중 자진 출두한다」로 되어 있는 여야합의 내용에 비해 긴박한 속도로 진행.
12일 하오 9시 여야간의 극적인 타결이 있은 직후 서동권 검찰총장실에서 보도진과 만난 검찰 간부들은 『오늘밤은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고 후련한 표정들이었으나 이날 자정을 전후해 갑자기 상황이 「즉각 조사」쪽으로 급전.
서 총장은 하오 10시 30분쯤 모처에서 김성기 법무장관과 이 사건 수사방향을 논의했는데 자정 무렵 전화로 정구영 서울지검장을 불러 청사에 대기토록 지시한 뒤 13일 0시 35분쯤 청사로 돌아와 정 검사장에게 『관련 의원들에게 바로 연락해 13일 아침부터 즉각 수사에 착수하라』고 지시해 수사에 갑작스런 박차가 가해졌다는 후문.
이에 따라 대검과 서울지검 공안관계자들은 13일 상오 1시가 넘도록 해당의원 집에 전화로 13일 상오까지의 출석을 요청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 사건수사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대목은 검찰이 과연 신민당 의원들을 공무집행방해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기소할 것인 지의 여부.
이에 대해 서동권 검찰총장은 12일 밤 『여야간 합의는 국민에 대한 약속인 만큼 검찰로서도 이를 최대한 존중해 사건을 처리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정치적 합의가 있었다고 해 검찰이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일부 기소 가능성에대해 단서를 달았다.
또 정구영 서울지검장도 13일 『정치적 협상의 정신은 최대한 존중하겠지만 검찰권 행사가 여기에 절대적으로 기속되는 것은 아니며 여러 사정을 참작, 독자적으로 결정할 방침』이라고 신민당측 희망과는 달리 일부 기소 가능성을 암시.
일부를 기소할 경우 그 대상자는 비교적 사안이 무거운 1차 소환대상자 7명중에 있을 것으로 한 검찰관계자는 14일 시사.
○…13일 조사를 받은 신민당 의원 7명중 제일 먼저 진술을 마치고 나온 김영배 의원은 자신에 대한 혐의사실이 『문을 부수고 민정당 의원의 멱살을 잡았다는 것인데 모두 사실과 달라 부인했다』며 『예상외로 간단한 것 같더라』고 설명.
김 의원은 『검사의 태도가 정중하고 예의바르더라』고 했다.
○…이어 하오 4시 30분쯤 나온 김태용 의원 역시 『혐의사실이 사실과 달라 모두 부인했다』고 밝힌 뒤 『나는 신민당 의원 중에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생활을 가장 오래한 사람』이라며 『조사에는 이골이 났다』고 말해 은근히 여유를 과시.
○…검사 출신인 장기욱 의원은 특유의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나도 노련하지만 검사도 상당히 노련하더라』고 말해 주위를 웃기고는 『조사 받는 동안 줄곧 감을 잡으려했지만 도저히 눈치를 챌 수 없었다』고 전언.
장 의원은 네 가지 행위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며 그중 유상호 법사위원장에 대한 감금 및 임두빈 의원의 의사진행방해 부분은 부인했고, 유리창과 146호실 문을 부순 것은 시인했다고 조사내용을 소개.
○…세 가지 혐의를 조사 받은 김동주 의원도 『유 위원장을 따라다닌 것은 사실이나 감금이 아닌 구두 설득』이라고 부인했고, 146호실의 문을 부순 부분도 자신은 주먹으로 한 두 차례 쳤을 뿐이라고 부인.
김 의원은 민정당측 보좌관의 점퍼를 찢어 3천원 어치 재물 손괴를 했다는 부분을 가장 집요하게 묻더라고 전하고 『돈 3천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점퍼 터진 부위를 보니 내가 찢은 것 같지 않아 반 부인했다』고 소개.
김 의원은 『하도 어처구니없어 담당검사에게 우리 집 사람을 시켜 기워주겠다고 말하고 기껏 3천원 어치 때문에 국민의 대표에게 구인장을 발부할 수 있느냐고 호통쳤다』고 주장.
○…이철 의원은 혐의사실이 『의사봉을 10초 정도 등뒤로 감춘 것이 공무집행방해로 걸린 것』이라고 밝힌 뒤 자신은 이러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시인했지만 『행위의 정당성을 강력히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세기 원내총무·김종호 국회 예결위원장·유상호 국회 법사위원장·임두빈 법사위 간사 등 민정당 소속의원 4명도 13일 하오 검찰청 삼청동 별관에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이 총무는 조사를 받고 나온 후 『별로 유쾌하지 않다』고 「소감」을 피력한 뒤 피해조서·피의자 조서작성을 모두 마쳤으므로 자신의 문제는 다 끝났다고 설명.
이 총무는 피해자 조서는 예산파동당시 「당한 것」에 대한 사실의 확인이었으며 신민당의원의 「폭력」행위에 대한 참고진술 정도의 것이었다고 설명.
이 총무는 신민당측 고발에 대한 「피의자」로서 진술한 대목에 이르자 『때린 자가 고발하는 세상이 되다니 코미디라도 보통 코미디가 아니게됐다』면서 검찰이 주로 물어온 부분은 △위계 △회의공고 △보좌관 배치 △회의장 봉쇄 등이었다고 했다.
이 총무는 『우리의 의총을 위계라고 규정해 고발했는데 그게 무슨 위계냐』고 반문하고는 『의총을 무엇 때문에 상대에게 알려야하느냐』고 주장.
또 회의공고 부분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최영철 부의장 소관사항이라 언급할 필요가 없었으며 보좌관 배치부분은 △지시한 일이 없었고 △그들이 문밖에 있던 것은 예상되는 충돌을 예방·방지키 위한 것이라고 강조.
김 위원장은 피해조서는 검찰이 조사한 사항의 확인이었다면서 신민당이 고발한 내용은 「엉터리」가 많았다고 지적.
피해자 조서 작성 마지막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처벌을 원하느냐』는 검찰측의 물음에 이 총무는 『처벌을 원치 않으나 의사당내에 폭력사태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김 위원장은 『관대하게 다뤄지기를 바란다』고 진술.
유 위원장도 『관대한 처벌』을 요망했고 임 의원은 『정치권내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치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말로 대신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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