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깎인「금통운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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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은은 올해도 금융기관에 대해, 2%의 지준부리를 해주기로 했다.
금융기관이 한은에 맡겨놓은 지불준비금에 대해 2%썩 이자를 셈해 거저 주겠다는 것이다.
은행들이 올해는 작년보다 영업실적이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시늉만이라도 배당을 하고 떼인 돈을 조금씩 이라도 까나가기 위해서는 올해도 좀 보태줘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그럴수도 있겠다 싶은 얘기지만 이 지준부리를 놓고 지난 19일 열린 금통련위는 걱잖은 논란을 벌였다.
무엇보다 크게 문제가 된것은 지난해 5%의 지준부리를 해주면서 내년 (85년)부터는 은행이 경영을 잘해 더 이상 지준부리를 받지 않도록 한다고 달아놓은 단서조항이었다.
단서조항을 붙인것도, 이번에 또 지준부리릍 해준것도 어찌됐건 표면상으로는 김통운위였기 때문에 금통운위의 체면은 깎일 대로 깍인 셈이다.
물론「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쓴웃움이나 짖고 어물쩍 넘겨버리면 그뿐이랄 수도 있다.
사실 한은이나 금통운위의 일부금통위원들은 지준부리출해주지 않겠다는 소신을 여러차례 밝힌바 있기 때문에 이번에 어떤 기분으로 결정을 내렸을 까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은자체도 82년 이후 누적 적자로 그동안 쌓아둔 적립금이 바닥날 지경이고 지준부리다, 뭐다해서 남 뒤치다꺼리를 하다 정말 바닥이 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넘겨진다는것을 몰랐을 리 없다.
부리를 해주자는 재무부의 주장을 고려 안할 수 없고 은행의 어려운 상황도 모르는바 아닌 상태에서 거절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해전 스스로 다정한 의지가 바로 이등해 이처럼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일까.
더우기 그「의지」가 명분이 서지 않는 일을 해주면서 더 이상 그럴 수는 없다는 올바른 소신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을 진대 단 한번도 그 의지를 펼쳐보지 못하고 그렇게 쉽게 좌절할 수 있는 것일까.
은행의 어려운 사정, 재무부가 나서야하는 이유를 모르는게 아니다.
은행수지가 나아졌다고는 해도 시은을 몽떵 합해 2천억원 남짓한 영업이익으로는 대손충당금이나 퇴직급여충당금 등을 떼고 세금을 내고 나면 5%정도의 체면유지배당을 하기도 빡빡한게 현실이다.
그러나 지난해의 단서조항이 너무도 쉽게 사문화되고 금통위가 쉬 물러날 수 있는 분위기가 과연 좋은가.「금융통화위원회」가「금융통과위원회」로 불리는 현실을 자초하고 끝날 일은 아닐것 같다. 박태욱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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