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수사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처럼 떼강도와 도둑이 주택가에서 종횡무진으로 극성부리던 때도 일찍이 없었다.
「뛰는 범죄에 기는 경찰」이니, 치안부재니 하는 비아냥거림이 나도는 가운데 뛰는 강도들이 대낮 주택가를 제집 드나들듯 설치고 있다.
경찰의 불명예도 불명예거니와 주택가 주민들은 불안과 공포속에서 30도를 오르내리는 찌는 날씨에도 문을 꽁꽁 닫아걸고 있는 실정이다.
어제 중앙일보 사회면에는 떼강도·인질강도·신사복강도·차치기강도들이 경찰의 1백일소탕작전을 비웃듯 잔악 범죄를 저지르는 실상들이 소개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경찰관이 작년에는 64명, 올해 들어서는 벌써 30여명이 범인의 흉기에 숨지거나 부상했다.
사립문도 닫아걸지 않고 지내던 우리사회가 왜 이처럼 살발해졌는지 개탄스러울 뿐이다.
범죄의 다발은 인적·경제적·손실은 물론 사회불안까지 가중시켜 그 해는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범죄가 해마다 늘어나는 것은 사회·경제적 원인도 있겠으나 직접적인 원인은 결국 경찰의 무력화 때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경찰의 예방 활동이 완벽하고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으면 범죄는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경찰의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나마 잦은 시위로 공백이 생기는 데다 수사요원과 장비·수사비의 빈약 등으로 급증하는 범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경찰이 겪고있는 고충이다.
누누이 지적하다시피 경찰의 기본사명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와 사회의 안녕 및 질서의 유지에 있다.
바꿔 말하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는 것이 경찰의 고유의무이고 정부의 당연한 책무인 것이다.
그럼에도 경찰이 맡은바 소임을 여건의 한계성 때문에 수행하지 못할 때는 결국 정부와 사회가 정책적 지원을 해야 마땅하다.
수사비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 사회의 안위를 위해 쓰여지는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국방비와 그 성격에서 차이가 없다.
그러나 수사비를 가장 많이 받는다는 서울시경 산하 수사경찰관의 하루 수사비는 2천 5백원에 불과하다. 범인을 잡으러 가는 택시 편도요금도 안될 만큼 보잘 것 없는 금액이다. 수사요원이 쓰는 수사비가 이럴진대 수사장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을 요하는 수사요원도 태부족이다.
더구나 베테랑 수사관이 대거 퇴직한 이래 경찰내부에서 수사부문에 대한 기피현상까지 일어 수사다운수사를 할 경찰관이 드문 실정이다.
오늘날 치안문제는 급증하는 범죄와 치안수요에 대비, 무언가 획기적인 대책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이르렀다.
미·영·일 등 여러 나라에서는 수사비를 예비비항목으로 거의 무한정 쓰도록 하고있다. 경찰예산의 1% 미만인 우리경찰의 실정과는 너무도 차이가 있다.
우리도 외국처럼 수사비를 사후정산제로 해 수사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킹」목사암살사건에 들었던 수사비용이 우리 전 경찰의 연간수사비와 맞먹는 액수였다는 사실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또 수사관의 전문화에 주력하고 퇴직 베테랑수사요원의 활용방안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현행 용역경비처럼 용역수사제를 신설해 살인사건 등을 용역 주는 방안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경찰인사에서도 수사요원 푸대접이라는 말이 없도록 우대하고 과학수사 교육도 강화할 것을 당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