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문화 향상 없는 대형화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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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얼마전 부산·대전·전주 등 일부 지방도시의 서적상들이 교보문고의 지방지점 개설을 반대하며 철시한 일이 보도된바 있다.
이는 대형서점이 진출하면 영세서적상들이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현재 문공부의 주선으로 교보측이 지점개설을 일단 보류했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진 않은 것 갈다.
출판문화에 관심이 있는 대학원생으로서 이번 사태를 보고 느낀 점이 적지 않다.
서점의 대형화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교보측의 주장은 일단 수긍할 만 하다. 다원화된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이나 정보를 한곳에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상황에서 교보문고식의 대형화가 바람직한 것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는 의문이다.
우선 해당지역 서적상들의 주장처럼 영세서적상들이 도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영세출판사가 대부분인 우리상황에서는 대형서점이 출판문화의 건전한 발전을 왜곡할 가능성도 있다.
책은 지적작업의 산물이며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형서점이 유통기구를 장악함으로써 출판자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출판문화의 발전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으며 소비자에게도 장기적으로는 손해를 주게될 것이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지만 지난해 대학가에서 서적할인판매를 했을 때 참여한 출판사들이 보복압력을 받은바 있다. 잘 잘못을 논하기 이전에 대형서점이 이러한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앞에든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사태는 서적상끼리의 다툼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출판 문화의 건전한 발전과도 관련돼 있는 문제다.
출판문화의 전반적 향상이 없이 서점만 대형화되는 것은 바람직한 것으로만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아 건전한 출판문화의 방향에 대해 진지한 모색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전병유씨<24·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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