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고난·삶을 무리없이 대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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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감자밭에 서있는 허수아비는 지킬 것이 없다. 마당굿이 민중의 고난과 삶을 손색없이 대변할수 없다면 비견해서 감자발의 허수아비와 짝이 된다. 새벽녘에일어나 수도꼭지를 틀였을때, 수조로 쏟아져 내리는 수도물처럼 명쾌한 청량감을 충만하게 지니지 못한마당굿은 신명을 지니지 못한다.
민중의 말씀과 몸짓과 더불어 얼싸안고 살자하는 의지의 고리를 갖지 못한 마당굿 역시 민중으로부터 괄시받을수 밖에 없다. 그 세가지의 해답을 위해서 임진택의 연희광대패가 벌이는『밥』의 공연은 출발한다. 그리고 똥은 곧 밥이요, 받은 나라는 자기 희생의 동양적 세계관이, 보리는 썩음으로써 움을 틔우고 그래서 영원히 산다는 서양사상과 넌짓 어우러진다.
신촌의 골목장터 안쪽에 굿터를 차리고 살여움을 역류하는 숭어뜀처럼 생명력있는 춤사위로 연희판을 벌이고있는 여덟의 광대들은 한결같이 낯설다. 그러나 그 낯선 광대들은 낯설지않은 우리들에게 광대는 누구인가하고 묻는다. 연희자들은 여느사람들처럼 길모퉁이에서 비를 맞고 섰다가 입고 뒤집어쓴 모습 그대로 연희판으로 뛰어든 사람들이다. 교사도 있고, 방송국 구성작가도 있고, 가사를 돕던 규수들도 있다.
그들의 모임은 우리 모두가 광대임을 뜻하고 똥이요 밥임을 뜻한다.
인간의 존귀함이 스스로의 세력이나 기능에 의해서 획득된 것이 아니다. 귀한것과 천한것, 참한것과 추한것, 높은것과 낮은 것, 큰것과 작은것, 6과 9와, 냄새와 연기와, 나무와 풀꽃들이 어우러져서 이루어지고, 더불어 함께 살지 않고는 더불어 함께 죽게 된다는 근원적인 진리에 이『밥』의 마당굿은 확실한 목소리로 접근하고 있다.
원한과 허무와 신명과 죽음조차도 상대하는 의연함이 이 마당굿에는 진한색감으로 스며있다. 굿과 놀이가 미개한 장난이 아니라 근원회기의 활력임을 이『밥』이란 마당굿은 귀뜀하고있다. 나는 나 이후에이 마당굿을 구경할 사람들에게 강한 질투를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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