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유를] 16. 작은 일에도 감동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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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내가 독일에서 유학할 당시 총리는 헬무트 콜이었다. 경제장관 겸 부총리로 위르겐 묄레만이란 사람도 있었다. 20세기 독일 정치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의 총리, 부총리였다.

독일통일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유럽공동체가 이뤄질 수 있는 모든 기반을 이뤄낸 사람들이다. 그러나 몇 년 전 콜 전총리의 아내는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 남편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을 때다. 살아있을 당시 차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독일인들 사이에 남편보다 훨씬 더 인기가 있었던 그녀였다.

'의미요법(logotheraphy)'이란 정신치료법을 개발한 빅터 프랭클 박사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은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도 견뎌낸다'고 주장한다. 유대인이었던 빅터 프랭클 박사는 나치수용소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태를 경험한다.

그러나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감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붉은 저녁노을의 장엄함, 동료의 흥얼거리는 노래, 수용소 입구에 핀 들꽃을 감탄하며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의미요법의 측면에서 본다면 콜 전총리의 아내나 묄레만 전부총리는 작은 것에 감동하고 감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성공이 오히려 그들의 삶을 박탈해간 것이다. 감동하고 감탄하는 능력은 삶을 의미있게 할 뿐만 아니라 재미있게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가수 김흥국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호랑나비' 이외엔 별로 기억나는 히트곡이 없는 그가 여전히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으-아'하는 그만의 특별한 감탄사 때문이다. 있는 대로 인상 쓰며 수시로 연발하는 그의 감탄사는 듣는 이들의 삶을 살만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아주 자주 목숨을 걸면서도 한편으론 사소한 것에 감동할 줄 모른다. 감동하기는커녕 웬만해선 눈썹조차 까딱하지 않는다. 놀 줄 모르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도대체 최근에 어떤 것에 감동하고 감탄한 기억이 있기나 한가? 대신 가수 김흥국이 대한민국을 대표해 혼자 연일 감동하고 감탄한다.

우리는 슬퍼서 울기도 하지만 울기 때문에 슬퍼지기도 한다. 마찬가지다. 수시로 감동하고 감탄하면 사는 것이 즐거워진다. 여가를 즐겁게 보내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감탄사에 익숙해져야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계속 감동하고 감탄해야 한다. 그러면 감동하고 감탄할 일이 아주 쉽게 생긴다. 정말이다.

김정운 명지대학교 대학원 여가정보학과 교수, 문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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