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돈 없으면 유죄? 깊은 병에 걸린 미국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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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맷 타이비 지음,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544쪽, 2만2000원

“비교하지 않는다면 큰 것도 작은 것도 없다.”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가 한 말이다. 비교하지 않는다면, 크고 작음만 아니라 민주·독재, 선진국·후진국 구분도 없다. 사법 제도 역시 그렇다.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가 던지는 충격은 미국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것이다. 어떤 면에선 한국보다 심하다. 한국은 수 십 만 직원의 생계를 책임지는 대기업 총수도 잘못한 게 있으면 수감된다. 미국의 경우엔 2008년 경제위기를 불러일으켜 세계 부(富)의 40%를 허공에 날려버린 월스트리트 사람들 중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우리가 정의롭다고 생각해온 미국에서는, 새벽 1시에 자기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가도 경찰에 잘못 걸리면 감옥에 갈 수 있다. 행인들의 보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다. 실은 그가 가난한 동네에 사는 흑인이라는 게 결정적 이유일 수 있다. 수사적 과장을 한다면 미국에서는 가난이 죄다. 가난한데다가 흑인이면 감옥에 갈 가능성이 더 커진다. 어느 정도 잘 사는 성공한 백인이더라도 뭔가 삐끗해 가난하게 된다면 역시 감옥이 가까워진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에서도 비중 있게 다뤘다. 허무맹랑하다는 평가는 받지 않았다. 책 내용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의 트럼프나 민주당의 샌더스가 예비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미국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탐사 저널리즘의 아이콘인 맷 타이비가 쓴 이 책은 미국 사법 제도가 병들었다는 것을 생생히 드러낸다.

 우리의 모델이던 미국이 이제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 반사되는 거울이다. 정의 문제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할 만하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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