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졌지만 차분…성숙해진 응원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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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밤 서울 월드컵경기장.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이 끝난 뒤 취재석을 지나 경기장 밖으로 향하는 관중의 틈에서 초등학생 아들과 아빠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들:"아빠, 우루과이 짬쎄지(매우 강하다는 뜻)?"

아빠:"응"

아들:"우루과이가 어디야?"

아빠:"집에 가서 지도 보면서 가르쳐줄게"

이날 경기장의 응원 열기는 대단했다. 그러나 한국팀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패했다. 시종 공세를 펴면서도 우루과이의 골문을 열지 못했고, 오히려 상대의 역습에 간단히 두골을 내줬다. 한국팀 감독이나 선수들을 질타하는 소리가 높을 법도 했다.

그러나 퇴장하는 관중 사이에서는 어떤 빈정거림도, 자조섞인 푸념도 없었다. 거리 응원이 펼쳐졌던 시청앞 광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약간의 아쉬움, 그리고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난 뒤에 오는 카타르시스만 있었다.

영국의 문인 올더스 헉슬리(1894~1963)는 한 작품에서 "영국이 문명에 가장 크게 기여한 공로는?"이라고 자문한 적이 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축구였다. 의회 제도나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 존 스티븐스의 증기기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시보다도 축구가 훨씬 더 공헌을 했다고 그는 규정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나 법률은 전쟁을 대신할 수 없지만 축구는 전쟁의 '완벽한 대용물'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런저런 이유로 끊임없이 싸워 왔다. 그러나 축구를 시작하면서 인간의 전투적 본능은 축구를 통해 해소됐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적은 사라지고 대신 새 친구가 생겼다.

우리에게 '전쟁적 축구'로서의 이미지가 가장 강한 경기는 한.일전이다. 1954년 3월 도쿄에서 치른 첫 한.일전 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지면 현해탄을 건널 생각을 말아라"고 선수들을 다그쳤다. 다행히 5-1로 이겼기에 선수들은 '불귀의 객'(?)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이제 옛 얘기에 불과하다. 지금은 축구 때문에 전쟁이 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축구는 멍울진 것들을 시원하게 풀어버린 뒤 이웃을 늘려나간다. 아까 그 초등학생에게도 이제 우루과이는 그리 먼 나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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