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4년 만에 단독공연 박·상·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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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사진=안성식 기자

최근 가요계에는 '리콜 공연'이란 용어가 자리를 잡았다. 공연을 했더라도 질적으로 흡족하지 않다면, 공짜로 한번 더 공연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시작은 윤도현이었다. 지난 5월 고려대 100주년 행사에 참여했다가 "관객과 하나가 되어 즐기지 못해 만족스럽지 않다"며 공짜로 다시 출연하는 리콜 공연을 선언했다.

'자전거 탄 풍경'에서 '나무 자전거'로 새출발한 강인봉.김형섭도 7월 리콜 공연을 약속했다. 1집 발표 후 첫날 공연에서 "너무 떨리고 긴장해 실수를 많이 했다"며 "첫날 공연 티켓을 가지고 오면 다시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즉석에서 관객에게 제안한 것.

사실 윤도현이나 나무자전거만 하더라도 공연을 자주 하는 팀이다. 그런데 최근 의외의 리콜 공연 소식이 있었다. 가수 박상민이었다. 4년 만에 여는 단독 공연. 소극장인 대학로 라이브 극장에서 15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4주간 여는 장기 공연이다(1544-1555). 지난 25일 공연장을 찾아가 그를 만났다.

"좁은 연습실에서 공연 첫날 당일 새벽까지 연습을 했더니 목감기가 걸렸어요. 첫 공연은 무사히 마쳤는데 둘째 날에는 제가 만족을 못하겠더군요."

1부 공연이 마치고 스태프에게 "환불하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좋은데 왜 그러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박씨는 무대 위에서 "오늘 오신 분들은 다음에 어떤 공연에 오시든 VIP로 모시겠다"고 말해버렸다. 그 다음날인 17일이 문제였다.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았다.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는 공연장으로 달려와 관객에게 일일이 고개 숙여 사죄했다. 자비로 차비도 1만원씩 쥐여 돌려보냈다. 다음날엔 환불자를 포함한 모든 관객에게 전화해 공연에 초대했다.

"집에 가서 울었어요. 가수 생활 14년 만에 공연을 취소한 건 처음이에요."

그를 더 아프게 한 건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 올라 있는 비난글이었다.

"아마 응급실에 있는 동안 환불을 해가는 바람에 제가 직접 사과를 못한 관객이 글을 올렸나 봐요. 나쁜 가수라는 소리는 안 듣고 살았는데, 제가 얼마나 우스운 존재였으면 그랬을까요. TV 쇼프로에서 웃기는 바람에 우스워 보였을까…. 너무 슬프고 속상했어요."

쇼프로가 좋아 출연한 건 아니었다. 소속사와 방송국 사이에서 후배 가수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대신 박상민이 한번 출연하는 식의 거래가 이뤄졌다. 거절 못하는 박씨의 성격 탓도 컸다. 오랜만에 단독 공연을 연 것도 이런 반성에서였다.

"옛날엔 공연 정말 많이 했는데…. TV 녹화가 끝나고 나면 마음이 허전해요. 남는 게 없거든요. 명색이 가수인데, 노래하는 모습은 보여드리지도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작은 곳에서, 관객과 가까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지요."

소극장 공연 예산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2억5000만원을 자비로 충당했다. 공연 기획도 직접 했다. 소리의 품질을 높이려고 5.1채널 사운드, 대형 운동장에서나 쓰는 음향기기를 동원했다. 좌석이 불편하다는 관객 반응을 보고는 객석 공사를 감행했다. 평평한 바닥을 계단식 객석으로 만들어 관객의 시야를 확보한 것이다.

"먼저, 가수이고 싶어요. 용필이 형은 10년 걸렸고, 문세 형도 5~6년 걸렸잖아요. 저도 2~3년 안에 공연을 통해 가수로서 뭔가를 만들어 놓으려고요."

박상민의 히트곡이 아주 많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노래를 참 잘하는 가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2시간 반가량의 열광적인 공연이 끝났다. 출연자 대기실에 찾아갔지만 박씨는 보이지 않았다. 돌아서서 나오는데 공연장 입구에 그가 있었다.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닦지도 않고 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경희 기자<dungl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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