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2년만에 공개된 미국무생 비밀문서 내용|"분단선 남는 휴전은 사형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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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휴전회담이 개시되려하자 한국전쟁이 막대한 한국인의 인명과 재산상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성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끝나버릴지 모른다는 한국정부의 우려가 드디어 표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상고정상태에서 전쟁을 끝내야겠다는 미국 및 연합군의 의도와 기왕 시작된 전쟁이니 압록강까지 북진하자는 이승만대통령의 의도는 휴전회담이 계속되고 있는 막후에서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었음을 국무성문서들은 보이고 있다.
휴전협상이 개성에서 열리기 하루전인 7월 9일「무초」대사가 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은 이박사가 총리·의무장관을 배석시키고「무초」대사와「콜터」장군을 접견한 내용을 보고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박사는 중공군과 북한군은 이미 패배했으며 앞으로 전쟁이 압록강까지 확대되어도 소련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측은『귀하는 어떻게 소련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가』라고 물었는데 이박사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회피했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이어 이박사가『미국 사람들은 동양인들의 체면손상이 얼마만큼 중요한 뜻을 갖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개탄한 다음『침략자를 동등한 자격으로 협상테이블에서 대우하는 것은 실수라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
「무초」대사는 이박사의 이와 같은 발언에 대해『휴전협상에서 김일성을 인민군최고사령관으로 처우하면서 한국정부는 미미한 역할만 준데 대해 불쾌해 있는 것 같다」고 주석을 붙였다.
이 면담에서 일반적인 인상을 보고하면서「무초」는 이박사가 어떤 문제에 있어서 구체적인 논리적 귀결을 설명하라는 반문을 받으면 화제를 바꾸어버리면서 대답을 슬쩍 회피하곤 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휴전회담이 시작된 지 1주일이 지난 7월 17일에는「리지웨이」장군이 직접 이박사를 찾아가 휴전협정에 대한 한국측 우려를 무마하려 했다.
이 자리에서 이박사는 공산군이 해군 및 공군력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더 좋다는 의견을 말했고「리지웨이」장군은 그 정도로 북진하려면 현 병력보다 훨씬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박사는 38선 부근에서 휴전을 해야된다는 의견이 미국무성 쪽에서 나왔다는 점에 대해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이박사의 견해는 더욱 강경해졌다.
이박사는「리지웨이」장군에게 왜 원자탄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질문하고 한반도의 통일을 이룬 선에서 정치적 타결을 이룰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중소간에 분열이 일어나게 하는 것인데 중소분쟁을 추진하는 방법은 북으로 밀고 올라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리지웨이」장군은 그렇게되면 3차대전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처럼 현지 외교관과 작전사령관을 여러번 설득하려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자 이박사는 7월 28일「트루먼」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통일에 미달한 상태에서 휴전을 하는 것을 한국정부가 얼마나 중대한 문제로 보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이박사는 이 서한에서『6·25 이전에는 공산권 국가를 제외한 어느 나라도 북한정권이나 38선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제 유엔이 그 정권을 공식적으로 상대하고 있고 38선은 유엔정책의 일부가 되려한다』고 불평했다. 이박사는 이어서『한국인은 분단선의 부활을 전 민족에 대한 사형선고로 간주한다』고 경고했다.
이 편지가 전달된 같은 날「무초」대사는 이박사가 휴전협상을 방해할 어떤 조치를 취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한 전문을 국무장관에게 띄웠다. 이 전문은『앞으로 며칠 안에 이박사가 어떤 음모를 생각해 낼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경고하고 있다.
「무초」대사는 이박사가 공개적으로 분단을 수락한다는 인상을 줄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휴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때는 한국대표를 협상에 참석시키는데 별문제가 없었지만 이제 휴전의 가능성이 커지자 이대로 가면휴전합의에 한국이 동의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게된 사실에 대해 이박사는 크게 분노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와 같은 배경설명 끝에「무초」대사는 당분간 이박사를 미국으로 초청해서 이박사가 난처한 언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이 상태가 악화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건의하고 있다.
한편 이박사의 친서를 받은「트루먼」대통령은 8월 3일 답신을 보냈다. 이 글에서 「트루먼」은 휴전협상에 참가한 한국군장교를 앞으로 불참시킬 것을 고려중이라는 이야기와 한국정부가 휴전회담에 반대시위를 지원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전제하고 양국사이에 의견분열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적은 이를 최대한 이용할 것이고 그렇게되면 그 동안의 회생이 허사가 된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양국간의 의견충돌이 격화하고 있을 무렵 미국무장관은「무초」대사에게 전문을 보내 지극히 어려운 일인 줄 알지만 이박사와 한국국민들에게 휴전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도록 설득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전문은 이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훈시를 하든가 충고를 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말고 귀하의 재량껏 휴전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국이익에 맞는다는 점을 설득시키라』고 지시하고 있다.
휴전과 휴전후의 유엔군철수를 반대하는 한국정부의 입장은 표면상 미국에 큰 골칫거리가 됐던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한국측 태도를 공산측에 대한 선전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건의가「무초」대사 쪽에서 나왔다.
8월 11일 부산에서 국무성에 타전한「무초」대사의 비밀전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박사가 휴전협상을 방해하려고 교묘한 농간을 꾸미고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측 반대운동을 심리전과 선전전에 이용할 수 있는 측면이 있음을 신중히 고려하기 바란다.
이상하게도 중공과 북한은 휴전과 38선 부활을 반대하는 한국내 시위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있다.
한국이 휴전회담에서 대표를 철수시킬 것이라는 보도도 전혀 그들은 외면하고 있다. 아마 한국내의 시위를 미국이 조종한 교묘한 선전활동으로 보고 있는지 모른다.
여하튼 우리는 공산측이△한국정부가 미국의 꼭두각시다△북한공산주의자가 독립운동의 창시자다△휴전협상에서 강경자세를 취하는건 미국뿐이다△모든 한국인은 평화와 외국군철수를 원한다는등 그들이 주장해온 것들이 거짓이란 점을 한국축의 휴전반대운동을 들어 반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이런 역선전활동은 한국외부에서 행해야되며, 공개적으로 하지 말고 음성적으로 하라고 건의했다. 그는 이런 선전활동을 펴면 다른 아시아국민들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워싱턴=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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