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기준가격제의 철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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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상공부는 현재 59개 품목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수출기준 가격제를 폐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을 둘러싼 업계의 과당경쟁을 막고 질서 있는 수출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되었던 이 제도는 그동안의 공과를 따지기 어려울 만큼 유명무실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평가였다.
덤핑수출을 막아 업자간의 출혈경쟁을 견제함으로써 수출질서를 바로잡고 덤핑에 따른 수입국의 규제유발을 사전에 막아보자는 것이 당초의 뜻이었으나 현실적으로는 그 철저한 이행이 매우 어려운 성질의 것이었다. 우선 수출상품의 종류와 가격은 물론 용도와 소재가 날이 갈수록 다양해져 획일적 기준으로는 가격규제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더우기 체크프라이스의 기준이 되는 국제가격도 수시로 변화하여 이에 연동시키려는 탄력운영도 거의 불가능해지고있다.
무엇보다도 수출가격통제 자체가 시장구조의 변동요인을 모두 소화할 수 없다는 원천적 제약요인을 안고 있었다. 따라서 이 제도는 명분만 남기는 무실한 제도로 남아온 셈이다. 대기업이나 대형상사들은 그 다양한 취급품목에 힙 입어 수출가격 규제를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는 대신 단순품목의 중소기업들에게는 오히려 이제도가 탄력적인 시장개척에 장애요인이 되어온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때문에 이번의 기준가격제 폐지는 이런 여러 현실의 변화와 불합리를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제도의 폐지에도 불구하고 기준가격제가 당초 내걸었던 명분은 지금도 유효함에 유의해야한다.
3년여 지속된 세계불황과 수출부진은 안으로는 덤핑수출의 촉진요인을 만들어낸 데다 밖으로 부터는 보다 강력한 수입규제 압력을 조성하고 있다.
이런 양면 협공에 직면하고있는 수출업계로서는 더욱 더 과당경쟁을 경계해야할 처지에 와있다.
특히 세계경기의 회복기미가 엿보이는 과정에서도 강력한 수입규제추세는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어 올해 수출은 쉽게 낙관하기 어려운 처지다. 상공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말현재 우리나라 상품은 19개국에서 1백52개품목이 수입규제를 받고있으며 14개국에서 17개품목이 추가로 규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수입규제에 관한 두 가지 우려되는 요소는 우선 이들의 대부분이 우리의 주력수출품목이면서 동시에 지역적으로는 대종수출국인 OECD19개국에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이중에도 특히 미국과 EC가 우리의 최 주력상품인 섬유류·신발류에 대해 85년부터 일반특혜관세의 혜택을 정지시킬 것이 확실하고 다른 나라들도 쿼터축소·관세인상 또는 구상무역제의 등 직·간접 규제를 강화하고있다.
이런 무역환경을 고려할 때 수출업계의 과당경쟁은 어느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음은 자명해진다. 따라서 수출기준가격제의 폐지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자율적인 제값 받기와 질서 있는 수출의 필요성은 더 높아진다.
관 주도의 기준가격제보다는 아무래도 업계스스로의 자율적 결속이 더 효율적이며 민간주도경제의 시대적 흐름에도 걸 맞는다.
수출구조도 다양해지고 해외시장의 변화속도도 삘라지고 있음에 비추어 수출업계의 보다 신축성 있는 대응이 절실하며 덤핑을 막고 제값 받기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도 부단한 기술혁신과 신제품개발, 품질고급화가 빼놓을 수 없는 전제가 된다는 사실을 유의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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