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기 KT배 왕위전' "이창호의 수가 아닙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제39기 KT배 왕위전'
제8보(107~120)
● . 옥득진 2단 ○.이창호 9단

107을 선수하고 109로 포위했다. 살(殺)의 바둑이다. 적막한 대국실에 옥득진 2단이 토해내는 살기가 진동하고 있다.

110으로 뻗자 111의 선수. 포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철저히 백의 눈을 박탈하고 있다. 대마는 한 집도 보이지 않는다.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이창호의 대마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검토실은 '죽고 사는 것은 50 대 50'이라고 말한다. 대마란 긴 강과 같아서 다 죽은 듯 보여도 어딘가 생명력이 숨어 있다는 얘기다.

115로 선수했을 때 유창혁 9단이 "아하! 실수 같습니다"고 말한다. 상변은 포위망 중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A로 두어 연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옥득진 2단이 다시금 117로 파호해 왔을 때 이창호 9단이 깊은 장고에 빠져들었다.

'참고도' 백 1부터 7까지 상변을 돌파하는 유일한 생명줄이 숨어 있다. B와 C를 맞봐 수가 나버린다. 흑이 D로 응수하면 E로 몰아 패를 할 수 있다. 이창호 9단은 지금 그걸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검토실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장고 끝에 떨어진 이창호의 118에 검토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눈을 의심케 하는 120은 더 큰 파장을 몰고 온다. 이상하고도 옹색한 빈삼각이다. 시각적으로는 영락없는 하수의 행마다. 김수장 9단이 말한다. "이창호 9단이 두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수입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