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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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선 상식과 싸워 이겼다. 농구는 흔히 장신을 최대의 무기로 삼는다.
높이가 한정되어 있는 백보드에 볼을 던져 넣는 경기여서 장신은 아무래도 유리하다.
바스켓까지의 높이는 3m5cm. 가령 2m20cm 신장의 선수는 사뿐히 뛰어서 볼을 넣을 수 있다. 이 경우는 볼을 던진다기보다 볼을 바구니에 담는 격이다. 엊그제 동경에서 벌어졌던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에서도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중공의 진월방 선수는 2m20cm의 장신으로 백보드 앞에 서서 볼을 주워 담고 있었다. 중공선수들의 평균신장은 우리 여자농구팀의 경우보다 6cm나 컸다. 중공은 한 선수만 제외하고 나머지 4명은 모두 1m80cm이상이었다. 그러나 우리 한국선수는 한 선수만 제외하고 모두 1m80cm 미달의 신장이었다.
바로 상식과 싸워 이겼다는 말은 숙명논자의 탄식에 도전했다는 뜻도 된다. 『키가 작아 안 된다』는 말은 일리는 있을지 몰라도, 합리적인 말은 아니라는 것을 한국의「작은아가씨들」은 눈으로 보여주었다.
더구나 놀라운 사실은 거목의 숲 속으로 뛰어들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숲을 바라보는 자세로 볼을 던진 우리 선수들의 놀라운 재능이다. 이른바 야투기술이 그것이다. 장신의 벽을 뚫는 길을 정면으로 충돌하듯 달려들기보다는 멀리서 머리위로 넘나들며 찾아내는 그 재치는 차라리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또 하나의 상식은 중공의 여자선수들은 5억의 여자인구 속에서 뽑아 낸 팀이라는 사실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 여자선수들은 1천9백만 여자인구가운데서 뽑아 낸 재원들이다. 질적으로 상대 쪽이 더 우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다.
일본 팀과의 결승리그 최종일 경기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선수들은 어느 모로 보나 우리 보다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을 것 같다. 성장과정에서 영양관리가 나을 것 같고, 재치를 따져 보아도 일본민족 특유의 섬세 와 기교가 있음직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공연한 선입관이었다.
결국 세상만사에서 노력이상으로 무서운 힘은 없다. 노력은 성실의 소산이다. 중공여자선수들이 뛰는 모습에선 그런 성실성이 보이지 않았다. 악착같이 덤벼드는 적극성이 모자란 인상이었다.
일본 팀도 그 점에선 비슷했다. 파이팅 스피리트가 부족한데 점수가 오를 리 없다.
이번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를 보면서 우리의 감동은 승리 그것보다도 우리 선수들의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 그것이었다. 우리 민족의 핏속엔 그런 열기와 다이내믹스가 있는 것 같다. 문제는 그것을 흔들어 깨우는 모티브를 어떻게 만드느냐 다. 우리 여자농구선수들은 끊임없는 연마와 노력으로 그것을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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