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자! 이제는] 5. 신뢰 안 가는 애널리스트 주가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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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한 외국계 증권사는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100만원으로 제시했다. 수익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삼성전자의 주가는 50만원선을 넘어 60만원대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국내 증권사들도 앞다퉈 80만~100만원선으로 목표가를 올렸다.

그러나 이 회사 주가는 4월 26일 63만8000원을 기록한 뒤 한 달여 만에 40만원선까지 곤두박질했다. 급락세가 이어지자 증권사들은 5월 중순부터 목표 주가를 낮추는 경쟁에 나섰다. 그러더니 주가는 거꾸로 반등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목표 100만원'이라는 전망은 2000년과 2002년에도 나왔다. 100만원 목표가가 나온 뒤 주가가 내린 것도 공통점이다.

국내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당시 삼성전자의 실적이 워낙 좋았고 모든 증권사가 높은 목표가를 제시하는데 나홀로 낮은 값을 고수하기 어려워 일단 따라갔다"고 털어놨다. 기업들의 실적과 전망을 냉정하게 따져 투자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이 시류와 장세에 너무 많이 흔들린다는 비판이 높다.

특히 인기 종목에 대해 서로 눈치를 보며 '경매식'으로 제시하는 목표 주가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많이 잃었다. 실제 지난해 3월 금융감독원이 2003년 중 나온 49개 증권사의 종목 보고서를 따져 본 결과 목표 주가에 실제 주가가 단 한 번이라도 도달한 건수는 절반 정도(54.9%)에 불과했다.

소속 증권사의 영업 등 관계를 고려해 분석 대상 기업에 긍정적 전망만 내놓는 관행은 더 큰 문제다. 올 초 한 증권사의 리서치 책임자는 증시 전망을 '부정적'으로 진단한 용기있는(?) 보고서를 냈다가 전격 경질되기도 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분석 보고서가 기관투자가에 대한 증권사 영업의 지원 수단으로 쓰이는 만큼 부정적인 의견을 내기 힘들다"며 "정말 팔아야 한다고 생각해도 '보유'나 '중립'정도로 완화하는 게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장세가 급변하는데도 이 종목, 저 종목 바꿔가며 '매수'만 권하고 보고서의 80~90%가 '사라'는 의견뿐인 현실을 계속 외면하면 시장의 신뢰를 잃기 십상이다.

◆ 미국에선=2002년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진 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닷컴 기업에 대해 무조건 매수를 권하던 관행을 혹독하게 비판받았다. 미국은 2002년 사베인-옥슬리법과 증권거래법 등에 애널리스트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이해관계의 상충을 피하는 조항들을 추가했다.

예컨대 애널리스트는 보고서가 개인 의견을 충실히 반영했음을 인증해야 배포할 수 있다. 또 애널리스트는 기업 공개, 인수합병 등 소속 증권사의 업무와 관련한 보수를 받지 못한다.

특히 기업을 조사하다 내용이 나쁠 경우 '매도'의견을 내지 않기 위해 조사를 슬그머니 중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실도 공시하도록 하는 규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런 노력에 따라 미국에선 요즘 '매수'의견 보고서가 절반 정도로 확 줄었다.

한국증권연구원 조성훈 연구위원은 "국내에서도 애널리스트 업무에 대한 법적 규제와 내부 규율을 강화해야 한다"며 "특히 애널리스트와 이들이 속한 조사 분석 분야의 독립성을 서둘러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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