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만에 찾아온 두 제자에 가슴흐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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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눈이 오는 저녁나절이었다. 「띵똥!」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선생님, 저예요.』
『오! 영순이구나, 어서 들어와.』
『제 목소릴 아직도 알아 들으시는군요.』
정확히 십년전의 담임선생과 제자는 몇년만에 그렇게 해후를 했다.
그녀가 들어서자 바로 한 군인이 미리들어 와서 인사를 꾸뻑했다.
『선생넘, 저도 왔어요.』
『영식이.』
그들은 눈을 맞고 내게 불쑥와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선생님, 제대를 하는대로 저흰 결혼을 하려구요.』
참으로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몇해전, 꼭 한번 그들은 함께 찾아 왔었다. 차를 끓이는데 영식이가 곁에와서 조그만소리로 물었다.
『그녀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데 어떨지요?』
『그앤 참 총명하고 예뻐. 특히 네꿈을 실현하는데 적지않은 도움이 될 거라고믿어.』
저녁식사준비를 하는데 이번엔 영순이가 곁에와서 소곤거렸었다.
『선생님, 어쩌면 저애가 데이트를 신청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해야될까요?』
『니 생각에 싫지 않다면 밝은 마음으로 응해도 좋을 것 같구나.
저 앤 주관이 있고 무엇이든 해 낼 실천력이 있으니까……게다가 미남이고.』
우리는 조그맣게 웃었었다.
나는 특히 그들 각자에게 내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흐뭇했었다.
그 날, 나는 혼자웃음지으며 생각했었다. 어쩌면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이미 그들이 자꿍이 될 것같은 예감을 가졌었는지도 모른다.
소문이 날 정도로 말썽이 많은 남녀합반이 초임 발령을 받은 내게 맡겨 졌었다.
나는 학급을 잘 운영해 보기 위해 정열을 다하는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간혹 지칠때면「이 학급을 모범 학급으로 이끌지 못하면 나는 선생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깨우치기도 했건만 문제학급이란 낙인이 지워지지 않은채 한 학기가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그때 문제점을 발견했다. 아이들에게는 목표가 없었고 이때문에 부작용이 일고있었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선정하는것과 안하는것의 차이를 누누이 설명하며 각자 인생의 설계를 해보도록 권유했었다.
사실상 어려운 처지의 그 아이들은 꿈을 갖지 못하고 그렁저렁 나날을 보내고있었던 것이었다.
2학기가 끝나는 날, 내 시간인 미술시간에 학급 전원이 종과 별을 만들어 전나무에 걸어두고 큰 소리로 합창을했다.
여학생들은 슬기로왔고 남학생들은 용감했으며 우리 반은 어느 사이에 모든것에 우수한 학급이 되어 있었다.
요즈음 들어「결혼 합니다」라는 제자의 소식을 접할 기회가 가끔 있어『나두 이젠 늙어 가는 거예요』라고 얘기하면 남편은 온화한 목소리로『당신은 그럴듯하게 나이를 먹어 가는군』하며 웃음짓는다. <경기도안양시석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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