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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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승패는 병가지상사아닌가. 이다음에 우리가 또 이기면 되지.』
『아니 병가지상사도 경우가 있지 북한한테 지다니 말이 되는가. 진작 화랑을 보내지 왜 약한 단일팀을 보내 망신을 자초하는가.』
『화랑이 갔다고해서 꼭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이번에 북한은 대표팀이요, 우리는 단일팀이니 차·포떼고 둔 장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외국인들이 보는 시각(시각)이나 국민들의 감점은 한국의 패배, 북한의 승리일 뿐이지 그런 세세한 점을 따지는가.』
14일 밤잠을 설치게 만든 방콕 킹즈컵국제축구대회의 결과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충의가 북한팀에 2-0으로 완패한데대해 분노와 수치를 느끼지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중에도 대범하게 받아들이려는 견해도 있는데 이것이 「국민감점을 모르는 무신경한 자위론」이 아님은 물론이다.
이번 대회에 충의가 출전한것은 작년대회의 우승팀이기때문이다.
대한축구협의는 지난9월 이대회에 북한팀이 처음으로 출전한다는 태국축구협회의 통보를받고 한때 화랑의 파견을 고려한적이 있었다. 그러나 충의는 관례에따라 자동출전의 기득권을 주장했고 또 화랑은 8월이후 인도네시아·말레이지아·사우디아라비아등을 원정, 선수들이 극도의 권태감에 빠져 또다시 원정보내기가 적합치않은상태였다.
그러나 축구협회의 처사가 다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8월부터 9월까지 40여일간에 걸친 불요불급한 장기해외원정이 실수였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그후 피로한 화랑은 전력이 와해상태에 빠진 것이다.
또 이점보다도 축구협회가 충의라는 일개 단일팀의 강경한 요구(출전주장)에 끌려다니기만 한 무력함과 남북대결을 다소 안이하게 생각한 소극성이 더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각 가맹경기단체를 행정적으로 지도·통할하는 입장이며 각종 팀이나 선수의 해외파견을 심의·승인하는 권한과 임무를 지닌 대한체육회도 이에관해 전혀 능동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도 간과할수없다.
따라서 이번 충의의 출전과 패배에 관련해 제기되는 논란은 한국스포츠계에 도사리고 있는 커다란 취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급변한 상황에 지혜롭고 기민하게 대처할수 있는 탄력적이고 통일된 브레인(두뇌조직)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 초점이다. 일부 재계인사와 경기인들로 구성된 임의단체인 경기연맹이 일사불란하고 강력한 체제의 집행부를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않은 일이지만 이러한 허약체질을 개선할 방도가 지금부터라도 모색돼야하지않을까.
특히 최대의 관심종목인 축구가 국내에선 날로 사양화돼가는 추세. 서울운동장 잔디그라운드는 폐쇄된거나 다름없고 으례 텅빈 스탠드안 진흙탕에서 축구아닌 씨름을 하는 국내축구와 현실을 직시하면 기대할것이 아무것도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재건을 위한 획기적인 처방과 투자가 아쉽다. <박군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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