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의 참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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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추석은 아름다운 명절이다. 자연도 아름답거니와 인정도 아름다운 때다. 소슬한 가을바람 속에 무르익은 계절의 정취가 특별히 충만감을 안겨줄 뿐 아니라 무르익은 오곡백과를 앞에 둔 사람의 마음 또한 한층 정겹고 풍부해지는 것이다.
「중추가절 좋은 때」라고 한 선인들의 이야기도 그래서 나왔다.
추석은 정녕 우리민족의 큰 명절이다. 가위 (嘉俳)라 했던 것은 신라의 풍속이었다. 「중추」는 또 이웃나라 중국의 명절이기도하다. 『5월 농부도 8월에는 신선』이라는 옛말도 있듯이, 이 때쯤이면 농사일도 거의 끝나고 햇곡식을 먹을 수 있으니 풍년을 즐기기에 적당한 때다. 과일도 풍성하거니와 날씨 또한 덥도 춥도 않은데다 달마저 가장 밝으니 그아니 좋은가.
무더위 속에 땀을 뿌리며 논밭을 가꾸었던 농민들의 고생도 이젠 보람으로 되돌려 받는 때다.
이제 한해 가운데 즐김과 감사의 순간이 온 것이다.
땀흘려 일한 농민들의 노력은 사람의 정성을 최대로 승화시킨 「진인사」의 표상이거니와 우순풍조하여 농작물을 키워준 것은 오로지 하늘의 뜻 「천명」 에 틀림없다.
비록 올해는 농사의 막바지에서 태풍이 휘몰아와 일부지방의 농사를 망쳤다곤 하나 그래도 전체적으론 애초의 풍작예상에 차질이 없다고 한다.
이는 실로 천우신조의 결과로서 「진인사」한 온 겨레의 정성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니 수확을 즐기는 가운데 감사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신곡으로 떡과 술을 장만해서 조상에 차례를 지내며 성묘하는 추석풍속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이는 그 감사의 뜻을 새롭게 함이요, 이웃과 친척이 함께 즐기는 것도 그 감사의 보편화·사회화의 표현이겠다.
객지에 흩어졌던 가족들이 고향을 찾아 돌아가는 것도 옛 풍속이다. 오랜만에나마 가족과 친지가 풍요로운 자연속에서 인정을 두텁게 하는 것은 좋은 풍속이라 할만하다.
벌써 귀성열거나 귀성버스가 선물을 한아름 안은 귀성인파를 싣고 고향으로 떠나가고 있다. 그리운 얼굴, 정다운 인정을 찾아 고된 여행길도 멀다 않고 마음 가볍게 고향을 찾아가고 있다.
그런 귀성인파는 3백60만에 이르고 있다. 이것을 소모적인 민족에너지의 유출이라고 보아선 안 된다. 그것은 민족의 대이동에 진배없는 흐름이지만 인정의 흐름이요, 생활의 흐름인 것이다.
그것은 열심히 일하고 잠시 갖게되는 휴식이며, 노동의 신성한 보상적 즐거움이기에 반드시 창조적 에너지로 재생되고 승화될 것이 분명하다.
고향을 떠나, 부모형제를 떠나, 외로운 객지생활로 뼛골 아프게 번 몇푼의 노임을 받아들고 고향과 부모를 찾는 근로자들에게도 추석의 아름다움은 결코 지워질 수 없다.
명절의 아름다움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인정은 결코 저버릴 수 없으며 풍요한 자연은 결코 덧없이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작은 정성과 조그만 보람에는 무한한 가치가 깃들기도 한다고
올해처럼 경기도 신통치 않고 태풍 때문에 농사마저 마음처럼 되지 않은 때일지라도 우리의 사랑과 정성은 결코 시들게 내버려두어선 안되겠다.
피해를 본 이웃들에게 따뜻한 인정을 보내고 의롭게 고생하는 불우한 이웃에도 듬뿍 마음의 정을 나눠야겠다고
산업화와 도시화시대의 각박한 생활 속에 쫓기며 사는 우리들이 풍요한 명절 추석에나마 메마르고 모질게 닫혀졌던 마음을 풀고 이웃과 친지들을 생각하며 함께 즐기는 마음가짐을 새기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명절을 즐길 수 없는 외롭고 괴로운 이웃이 없는가 주위를 둘러봐야 하는 것도 명절의 인정이다. 상대적 불행감은 이 시대가 안고있는 사회병리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사회의 삶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도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는 정성을 이때 다시 한번 가다듬어야겠다.
중추가절 추석은 그런 이웃사랑의 정신에서 더욱 값있고 아름다운 명절이 될 것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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