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소년의 벗」>
3월 초순의 동경은 눈이 내려 한얀데다 여기저기 눈 녹은 자국이 남아있어 길이 질었다. 밤차로 오면서 잠도 옮게 못 잔데다 외투 없는 학생복 차림에는 바람이 꽤나 차가왔지만 긴장한 탓인지 별로 추위를 몰랐다.
동경 천지에 아는 사람은 하나가 없다. 그러나 찾아갈 곳이 한군데는 있다.
「소년의 벗」이란 잡지사-역전에서 전차를 탔다.
나는 대판에서 이 소년잡지를 신문광고로 알고 두어 차례 투고한 적이 있다. 사우가 되면 여러 가지 특전이 있다고 해서 나도 1년치 지대를 내고 사우가 되었다.
「공문」(아끼마)라고 써 붙인 셋방 광고를「가라마」라고 읽어 곁에 사람이 고쳐 준 기억이 있다. 그때의 내 일어능력은 겨우 이 정도였다. 그런 내 실력으로 소년시를 써서 잡지에 질려졌다는 것이 내 딴에는 대견했다. 그 시의 선평에도 몇 마디 찬사가 적혀 있었다.
동경 땅에 아는 얼굴이라고는 개 한마리도 없으니 찾아갈 곳은 거기밖에 없다. 사우가 되면 학교도, 취직도 알선해 준다고 했다.「본사 사옥」이라고 설명이 붙은 커다란「빌딩」사진도 잡지에 질러 있었다. 거기를 찾아가 취직자리를 의논하리라-. 그리고 우선 야간중학에라도 다니리라- 이것이 내 설계였다.
「고이시가와꾸 묘오가다니쑈오」(소석천구명하곡정)- 구명은「문경구」로 고쳐졌지만, 그「묘오가다니」는 지금도 지하철역 이름으로 남아있다. 내기 찾아갈「소년의 벗」사기 거기있다.
학생이 많고 서점이 많은「진보쬬」(신보정)를 지날 때 차장이 외치는 소리가 내 귀에는「빔보오표」(가난뱅이동리)로 들려서 처량한 마음에도 그 이름이 우스웠다.
「가스가표」(춘일정)를 지날 무렵 차장이 표를 끊으러왔다.
서슴없이 7전을 내 놨더니 헤어보고 1전이 모자란다고 한다.
동경은 대판보다 1전이 더 비싸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려나 내 주머니에는 그 1전이 없다.
얼굴을 붉힌 내게 차장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명하곡정」라고 하자『그럼 얼마 안 남았으니 다음에서 내려서 걸어가도 멀지 않다』고 한다. 거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전차가 다음 정류장에 닿았을 매 나는 차장이 서 있는 뒷문으로 내렸다. 내릴 때 차장이 내 손에 종이 조각을 쥐어주면서 내 귀에다 나지막하게 일러주었다. 『다음 전차를 타라구…. 』 전차가 떠난 뒤 손을 펴 보니「펀치」를 넣지 않은 새 회수권 대여섯 장이 쥐어져 있었다.
동경에서 내린 첫날 내게 맨 먼저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은 이 차장이었다.
다음 전차로 목적지인 명하곡정에 닿았다. 지금은 메워져서 흔적이 없지만 60년 전 그 당시는 동네이름 그대로 깊은 골짜기가 있었다. 그 골짜기를 오르고 내려서 겨우「소년의 벗」사를 찾아냈다.
잡지에서 본 커다란「빌딩」이 아니요,「제이동향관」이란 간판이 걸린 하숙집이다.
내 키 만한 그 간판 옆에 두어 뼘 되는 작은 문패-「소년의 벗 편집부」라는 그 문패를 보고도 그것이 지방 소년들의 코 묻은 푼돈을 거두어 가는 엉터리 잡지사란 것을 그 자리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현관에 들어서서「소년의 벗」사를 찾아왔노라고 했더니 한참 뒤에 웬 중년사내 한사람이 2층에서 내려봤다.
내가 대판서 온 아무개라고 하자 그 사내는 부르퉁한 표정 없는 얼굴로『왜 미리 편지라도 하지 않았느냐면서 이 역시 전차표 두 장을 내게 주었다.
그리고는 내 뱉는 어조로『취직이 어디 그리 숴워?』하고는 올라오라는 인사 한마디 없었다.
「도떼라」(솜을 둔 실내의)차림의 그 중년사내가 아마「소년의 벗」의 사장 겸 편집장 겸 급사였던 모양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맥없이 현관문을 나왔다. 실낱같은 희망은 동경에 내린 겨우 두어 시간만에 속절없이 끊어져 버렸다.
그 하루에 나는 온 동경을 헤맸다. 그 시절 시내 전차는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몇번이고 승차권을 끊어주었다. 한장 표로 세 번, 네번 바꿔 탈수도 있다. 전차표만은 부자다. 그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끝에서 끝까지 전차가 가는 곳이면 어디고 가 보았다.「스가모」폐병원(소압폐병원)도 그날 보았고 거기서 30리 떨어진「가메이도덴진」(귀호천곤)도 그날 구경했다. 사신으로만 보았던「사이고오·다까모리」(서향강성)의 개 한마리를 데린 동상도 상야공원에서 그날 처음 만났고, 일본 천황이 산다는 궁성의 이중교도 그날 처음 보았다.
대진재로 해서 지금은 자리를 옮긴 신전교-, 밤 10시쯤 되었을까-, 나는 그 다리 곁에 서서「룸펜」들이 불을 쬐고있는 다리 아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있었다.
전신이 녹아드는 것 같은 피로-, 주림이니 추위니 하는 그런 감각보다 쓰라림도 슬픔도 아닌 일종의 허탈감에 몸이 끌려 들어갔다. 어디고 그저 드러눕고만 싶은데, 불 쬐는 사람들 곁으로 가면 이것저것 물을 것이 귀찮았다.<계속>계속>엉터리「소년의>
(3016)제 72화 비관격의 떠돌이-김소운
중앙일보 지면보기 서비스는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최근 1개월 내
지면만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지면만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지면보기 서비스는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면 최신호의 전체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더중앙플러스 회원이 되시면 창간호부터 전체 지면보기와 지면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
더중앙플러스 회원이 되시겠습니까?
더중앙플러스 회원이 되시겠습니까?
앱에서만 제공되는 편의 기능
- · 로그인하면 AD Free! 뉴스를 광고없이 더 깔끔하게
- · 속보는 물론 구독한 최신 콘텐트까지! 알림을 더 빠르게
- · 나에게 딱 맞는 앱 경험! 맞춤 환경으로 더 편리하게
개성과 품격 모두 잡은 2024년 하이패션 트렌드
Posted by 더 하이엔드
집앞까지 찾아오는 특별한 공병 수거 방법
Posted by 아모레퍼시픽
“차례상에 햄버거 올려도 됩니다”
ILab Original
로맨틱한 연말을 위한 최고의 선물
Posted by 더 하이엔드
데이터로 만들어낼 수 있는 혁신들
Posted by 더존비즈온
희귀질환 아이들에게 꿈이 생겼습니다
ILab Original
ADVERTISEMENT
ADVERTISEMENT
메모
0/500
메모를 삭제 하시겠습니까?
기사를 다 읽으셨나요?
추억의 뽑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보세요. 이벤트 참여하기
추억의 뽑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보세요. 이벤트 참여하기
기사를 다 읽으셨나요?
추억의 뽑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보세요. 이벤트 참여하기
추억의 뽑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보세요. 이벤트 참여하기
더중앙플러스 구독하고
추억의 뽑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보세요. 혜택가로 구독하기
추억의 뽑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보세요. 혜택가로 구독하기
중앙일보 회원만열람 가능한 기사입니다.
중앙일보 회원이 되어주세요!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편의 기능이 궁금하신가요?
중앙일보 회원이 되시면 다양한 편의 기능과 함께 중앙일보만의 콘텐트를 즐길수 있어요!
- 취향저격한 구독 상품을 한눈에 모아보고 알림받는 내구독
- 북마크한 콘텐트와 내활동을 아카이빙하는 보관함
-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스크랩하고 기록하는 하이라이트/메모
- 중앙일보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스페셜 콘텐트
알림 레터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 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중앙일보는 뉴스레터, 기타 구독 서비스 제공 목적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이용 합니다. ‘구독 서비스’ 신청자는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대해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 동의를 거부 하였을 경우 이메일을 수신할 수 없습니다. 구독 신청을 통해 발송된 메일의 수신 거부 기능을 통해 개인정보 수집 · 이용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