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참사 '자원봉사 물결' 60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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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합니다.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얼굴들도 많고….”

대구지하철 참사 이튿날인 2월 19일부터 60여일간 대구시민회관 광장을 지킨 정행기(삼성사회봉사단·삼성전자 구미공장 과장)씨는 철수를 하루 앞둔 17일 아쉬운 듯 시민회관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사고수습대책본부가 마련된 시민회관 앞 광장을 가득 메웠던 자원봉사 캠프가 18일 삼성사회봉사단을 마지막으로 완전 철수하게 된다.

유례없는 대형사고로 기록된 대구지하철 사고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원봉사 측면에서도 대기록을 남겼다.

사고 직후 대책본부가 시민회관에 설치되자 시민회관 앞 광장은 물론, 대강당 현관·계단 등 곳곳에 자원봉사 단체들이 둥지를 틀었다.

자원봉사자들은 희생자 유가족은 물론 사고수습 관계자에게도 봉사활동을 펴 가족을 잃은 아픔과 추위를 달랬다.

대구시 자원봉사과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개월동안 모두 1천6백여개 단체 2만6천여명에 이른다.

유가족 대기실에서 선잠을 자야 했던 유가족에게 따뜻한 국밥을 대접하고 합동분향소와 중앙로역 입구에서 조문객에게 일일히 국화꽃을 전하기도 했다.

양말·내의·치솔·수건 등을 나눠 주는 봉사활동이 등장했는가 하면 상실감에 빠진 유가족을 위한 심리치료 자원봉사도 있었다.

지역의 의사·약사·간호사 단체들도 간이 진료소를 차려 놓고 제몸을 돌볼 새 없는 유가족을 외래환자처럼 보살폈다.

이동통신회사들은 휴대폰 위치 추적에 앞장섰으며 삼성사회봉사단·대구은행봉사단·KT봉사단 등은 그 기업의 덩치에 맞는 봉사활동을 벌여 기업 이미지를 높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인근 업소를 중심으로 이들 자원봉사자를 위한 목욕·여관숙박 제공 등의 자원봉사까지 펼쳐졌다.

18일을 마지막으로 시민회관 앞 자원봉사 물결은 사라졌지만 대구시내 각 병원의 부상자를 대상으로 한 자원봉사는 17일에도 7개 단체 70여명이 참가해 계속되고 있다.

대구시 자원봉사과 관계자는 “‘자원봉사 도시 대구’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인 시간이었다”며 시민들의 참여에 감사를 표시했다.

정기환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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