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교양] '예수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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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죽음/이 아무개 지음, 샨티, 8천원

'이아무개 목사의 금강경 읽기'에서 '장자 산책' '대학 중용 읽기'에 이르기까지 이현주(59) 목사의 저술은 종교 간의 구별이 없다.

개신교 목사이면서 가톨릭 사제들과도 폭넓은 교유를 나누는 그를 보고 누군가 짓궂게 물었다. "차라리 개종하시지요?". 이아무개 목사 대답이 걸작이다.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왔다갔다 하는 걸 이사한다고 말하던가요?"

굳이 자기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싶지 않다해서 필명 이아무개를 쓰는 그가 27년 전 펴냈던 책의 재출간본이 '예수의 죽음'이다. 1970년대 유신 상황 속에서 쓰여진 글들은 지금 읽어도 흡인력이 인정된다.

예수를 화자(話者)인 '나'로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독특한 소설적 구성 때문인지 정교한 문장에 힘입어 문학작품 못지않은 향기도 있다.

이 책은 예수의 활동기간 3년 보다는 그의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맞춰 서술했다. 십자가에 못박히고, 유다와 베드로의 배신을 지켜보는 예수의 심리묘사와 독백등도 풍부해서 통상적인 기독교 서적과는 크게 구분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예수의 죽음에 비춰 사회 비판을 감행하고 있어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즉 여전히 폭력과 물신숭배에 휘둘리는 지금 '예수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이어야 한다'는 명제에 충실한 서술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 예수가 활동한다 해도 현대인들은 2천년 전 유대 사람들처럼 그를 십자가에 세울 것이 분명하다는 느낌까지 안겨주기도 한다.

다만 저자가 30대 시절에 썼기 때문인지 다소간 감상주의에 빠진 흔적이 엿보여 흡인력을 일부 잃고 있다. 마침 다음주 부활절을 앞두고 이 책을 되새김질해볼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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