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의 편수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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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는 한국검인정 교과서주식회사의 거액 부정사건을 계기로 검정교과서 정책을 전면 재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는 검인정교과서 회사의 엄청난 해묵은 비행이 치안본부 수사결과 명백한 사실로 드러난 이상 마땅히 취해야 할 조치다.
지금까지의 수사결과 검인정교과서 회사의 비행은 ①문교부와 국세청 관계 직원들을 거액의 뇌물로 매수 ②검인정교과서의 값을 지나치게 올려 받고 ③고본 사용을 막기 위해 해마다 내용 일부를 필요없이 수정하는 한편 ④완전 독점을 목적으로 단일본 발행을 추진, 거액의 폭리와 세비를 자행해 온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 규모나 관련 범위가 넓어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이기는 하나 사건은 터질 수밖에 없는 것이 터졌다는 점에서 전혀 예상 밖의 일은 아니다.
교과서 정책은 문교행정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정책인데도 편수행정 분야는 경시되기 일쑤여서 검정교과서 출판업자들의 농간이 쉽게 침투할 수 있는 소지를 항상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편수관실의 구성부터 보자. 편수관의 정원은 20명에 불과해 이들만으로는 초·중·고교의 교육과정 연구·분석과 3백82과목 1천3백1책의 각급 학교 교과서 내용을 시대의 추세에 맞게 검토·수정하고, 개편 및 신편 계획수립 등 방대한 업무를 감당하기란 너무나 힘겹다.
그런데도 이들 전문직에 대한 대우는 일반직과 다를 바 없고 수당도 월2만원밖에 안돼 우수한 편수관 확보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다음으로는 문교부가 검정교과서 개편시에 임시로 위촉하는 검정위원의 구성을 보자. 대학교수, 중·고교 교사 등으로 구성되는 검정위원은 과목당 3명밖에 안 된다. 이들에게 무려1백36과목 7백81종에 이르는 각급 학교 검정교과서의 내용을 제대로 검정해 주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과욕이다.
편수행정의 이같은 취약성으로 인해 관계 직원들은 업자들로부터 쉽게 매수 당하거나 그럴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었다고 하면 지나치다 할 것인가.
또 문교당국이 73년부터 추진해 온 교과서의 단일화 작업도 장점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문젯점을 처음부터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초 목적은 물자의 낭비를 억제하고 검정교과서의 난립으로 인한 내용의 불충실한 교과서 발행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현재 중학용 검정교과서는 13과목중 중요 7과목이, 인문계 고교용도 39과목 중 11과목이 단일본으로 출판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교육의 다양성을 위축시키고 충실한 교과서 발행을 오히려 저해하는 한편 특정교과서 출판업자들의 독점과 폭리를 조장하는 결과를 처음부터 예정하고 있었던 것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교 당국은 이상과 같은 문젯점들을 감안, 이번 사건과 관련, 검인정교과서 회사의 공영화를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연히 검정교과서의 가격 재조정·발행·공급의 유통체계개선 등과 아울러 차제에 교과서 정책의 구조적 모순을 시급히 재검토,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우선 편수행정을 대폭 강화, 편수관의 증원과 대우개선 및 자질향상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겠다.
또 현행 검정교과서는 하루속히 73, 74년에 개정된 교육과정에 맞춰 전면 개편하되 단일본은 종류를 다소 규제는 하더라도 복수본으로 환원, 많은 전문가들에게 검정교과서의 저작기회를 주어 양질의 교과서가 출판되도록 해야한다. 교과서 행정에 있어서도 자유경쟁의 원리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검정교과서의 신청자격과 공급인의 자격을 강화하고 발행·공급에 대해 강력하고 효율적인 감독 체제를 마련함으로써 보다 알차고 싼 교과서를 사 쓸 수 있도록 할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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