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의 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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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96회 정기국회가 내년 예산을 비롯한 1백23건의 의안을 처리하고 18일 폐회했다. 새로 개편된 신민당 지도 체제의 성격을 반영하듯 이번 정기국회는 어느 때 보다도 정치적 대결 없이 순항했다. 여야간의 충돌이 결국 일방통행만을 결과했던 것을 생각하면 비록 적으나마 야당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이번 국회의 운영 방식은 현실적이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여야의 바람직한 대화 자세가 더욱 깊고 넓게 우리 의정에 정착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의 대안을 제시하고 문젯점을 지적하는 야당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여당의 자세가 모두 허심탄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야당이 마련한 대안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질 때 그 수용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여당의 수용자세가 인색할 때 대화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충족되기 어려운 것이다.
적어도 이번 국회만은 여야 모두 상대방의 의견을 무조건 반대하는 식의 행태는 없었다.
그러한 여야 대화의 면목은 내년 예산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내무위 소위의 지방세법개정안 여당 단독 처리를 백지화하고 초당적·평화통일협의회를 구성 한데서 약여하게 나타났다. 비록 세법의 수정이나 예산 삭감액이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야의 협의를 통해 이뤄진 이러한 작은 성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국회를 통해 정치의 입김이 행정에 작용하게 되는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소리만 있었을 뿐 정치를 결여했던 국회가 이 모처럼의 정치 기술을 계속 증폭시켜 국민의 여러 의견을 흡수하는 보다 원숙한 기능을 다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 정기국회가 원만하게 치러진데는 실질투쟁이란 야당의 국회운영 자세에 그 까닭의 대부분이 있다.
명분 위주의 투쟁을 지양하고 실질 투쟁을 편다는 방침을 세운 신민당의 새 지도 체제는 지방세법 처리 과정을 재외하고는 이 방침으로 시종했다.
야당에 명분이 중요하냐, 적으나마 실속이 중요하냐 하는 것은 많은 논쟁이 따를 문제이나 지금으로서는 실질 투쟁 방침이 현실적이라는 것만은 부인될 수 없다. 따라서 이왕 이런 방침을 세운 바에는 지방 세법 처리 과정에서도 좀더 일관성 있는 실질 투쟁을 벌여 적으나마 국민의 부담을 줄이는 노력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이렇게 국회의 운영이 전반적으로 실질화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구석은 적지 않다.
우선 그 대표적 예로 질문 위주의 국회 운영을 들 수 있겠다. 본회의의 대 정부 질문은 논외로 치더라도 상임위나 예결위의 의사진행마저 모두 질문으로 시종하는 것이 우리 국회의 습관이다.
더구나 질문에만 열중할 뿐 뒷마무리엔 거의 관심이 없다. 질문 중에는 훌륭한 문제 제기도 없지 않은데 그저 질문으로만 끝날 뿐 그 내용이 국정에 반영되도록 대 정부 건의나 법률 등의 형식으로 마무리를 짓는 노력이 부족한 듯 하다. 앞으로는 질문 그 자체보다도 제기된 문제를 마무리하고, 심의하는 의안에 대한 토론 및 조정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항상 문제가 돼 온 것이지만 의원들의 질문이나 정부측의 답변이 모두 내용에 있어 좀더 실질적이고, 자세에 있어 더욱 성실해야 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내년에는 자주 국회가 열려 국민의 바램과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는데 더욱 충실한 국회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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