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엔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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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31차 유엔총회의 개막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유엔에는 한국문제에 관해 서방·공산양측의 두 결의안이 제출되어 있어 또 한바탕 비생산적인 설전이 거듭될 판이다.
이 듣기만 해도 신물이 나는 연례행사를 그만둘 방법은 없을까.
그러나 불행히도 상대가 이에 집착하는 한 이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그것은 자칫 유엔이란 그라운드를 북괴 등 공산 측의 선전장으로 내버려두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쪽에서 싸움을 걸어오는 한 어느 정도의 대결은 불가피하다.
다만, 이 경우 겉으로는 같은 대결일 망정, 그 성격에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공산 측의 태도가 대결을 위한 대결이라면 우리의 자세는 대결을 회피하기 위한 대결이 되는 것이다.
이번 유엔총회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가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기회를 통해 부모의 대결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리라 생각한다. 결의안이 유엔에 제출되면 대체로 의제채택·토의·표결 등 3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이 단계마다 토의를 회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우선 총회개막 직후 운영위와 본회의의 의제 채택과정에서 한국문제를 아예 의제로 채택하지 않거나 1년간 토의를 연기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토의연기방식은 이미 우리가 71년과 72년에 시도해 성공을 거둔 방안이다.
작년 30차 유엔총회가 한국문제에 관해 두개의 상반되는 결의안을 모두 채택함으로써 드러난 유엔 권위실추라는 충격은 한국문제의 토의 회피를 정당화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작년 유엔 정치위가 두개의 상반된 결의안을 통과시킨 직후 이미 14개 중립국이 한국문제의 토의를 연기하자는 움직임을 보였었다.
당시에는 본회의의 표결이 임박해 이러한 움직임이 별 성과 없이 무산되고 말았지만, 이러한 주장의 합리성은 그후 점점 국제사회에서 긍정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다행히 작년과 달리 금년에는 25개국 운영위의 구성윤곽이 서방측에 유리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제채택 과정에서 한국문제의 토의연기나 공산 측 안의 원천봉쇄를 시도해 봄직도 하다. 물론 운영위의 구성이 서방측에 유리하더라도 전 회원국으로 구성된 본회의란 어려운 고비가 있기 때문에 성공 여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시도해 볼만은 하다고 본다.
또 정치위의 토의에 회부된 후에도 정치위가 토의를 연기시킬 수는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위와 본회의의 표결과정에서 두개의 결의안을 하나로 묶거나 아예 두 결의안을 모두 묵살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이미 73년 28차 총회에서도 한국문제에 관한 서방·공산양측의 결의안을 타협을 봉해 하나로 묶어 합의 성명으로 채택한 선례가 있다.
이 모두 한국문제에 관한 쓸데없는 설전과 대결을 피하려 할 때 고려될 수 있는 방법들이다.
그러나 『남한혁명에 유리한 국제적 여건조성』을 위해 유엔을 이용하려는 북괴가 순순히 대결회피에 응해 올리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결을 회피하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대결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결국 대결을 회피하거나 대결을 하거나 간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다수 지지국의 확보라 하겠다.
우리의 세력이 많거나 최소한 백중하지 않는 한 타협마저도 불가능한 것이다.
가능한 모든 기회를 탄력적으로 활용하는 기민성과 더불어 다수 지지국 확보를 위한 끈질김이 모두 요청되는 까닭이다. 외교당국의 가일층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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