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 안희제 추모비 제막 29일 고향 경남 의령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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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제 하 항일독립운동가로서 언론과 교육사업에도 종사했던 백산 안희제 선생(1885∼1943)의 추모비 제막식이 지난 29일 상오 선생의 고향인 경남 의령군 의령면 동동 삼거리에서 거행됐다.
노산 이은상씨가 비문을 쓴 이 추모비는 선생의 독립유지를 받든 의령출신 유지들의 도움으로 백산기념사업회(회장 박종대)가 완성한 것이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한말의 국운이 쇠하는 1885년(고종22)에 태어나 평생을 조국독립에 바친 애국자다. 일제의 조선침략마수가 노골화되던 1909년 항일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당에서 시작된 그의 독립운동은 1914년 무역회사인 백산상회를 설립. 자금지원을 중심으로 실제행동에 옮겨졌다.
양정의숙을 졸업한 백산은 교육에도 뜻을 가져 의령에 의신학교, 동래에 구명학교를 세우기도 했고 1925년에는 운영난에 처한 『시대일보』를 인수, 『중앙일보』로 개칭, 운영하기도 했다.
1933년 만주로 망명한 후는 주로 국내를 드나들며 민족자본가로부터 자금을 얻어 상해임시정부에 조달해 주는 역할을 도맡아했다.
해방 후 김구 주석이 귀국했을 때 경주의 부호였던 최준은 백산을 통해 임시정부에 전달한 자금이 제대로 수령됐는지를 의심, 장부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푼도 어긋남 없음이 김구 주석에 의해 확인되자 백산의 묘소가 있는 남쪽을 향해 『의심한 최준을 용서하라』고 통곡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유명하다.
추모비 건립에 관계했던 한 인사는 해방 30여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선생의 업적이 올바로 부각됐다면서 독립운동가의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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