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김찬삼 교수 세계 여행기-이란에서 만난 동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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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반다라바스」항은 바로 앞의 「흐름」섬에 그 옛날 「마르코·폴로」가 둘렀던 곳 인만큼 역사적인 「이미지」을 자아낸다. 이 항구에 드나드는 수많은 선박들의 뱃고동은 더욱 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항구는 앞 바다에 방파제의 구실을 하는 섬들이 있어 좋은 조건을 지니기 때문에 최근에 개발된 새 항구 도시다. 시내는 예스러운 흙담집이 헐리고 이 나라의 독특한 해풍 흡입탑 대신에 외국제의 「에어컨」으로 바뀌고 있으며 이 항구를 중심으로 멋진 「하이웨이」가 뻗어 있다.
이 항구에서 운수 용역에 종사하는 우리나라 동포를 만나기 위하여 여행 안내소로 가다가 우연히 사귄 이 나라의 어떤 신사는 우리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옛친구를 만난 듯이 반겼다. 그는 정치에 조예가 깊은 듯이 한국 사람은 동족 상잔을 한 나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되었기에 같은 민족끼리 그렇게 가혹하게 싸우지요』하고 의아해 했다.
『우리나라도 제2차 대전후 자칫 잘못 했다가는 당신 나라처럼 둘로 나뉠 뻔했답니다. 제2차 대전 중에 우리나라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영국은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남부를 점령했으며 한편 소련은 「페르샤」만에서 우리나라 땅을 거쳐 자기 나라에 이르는 미국의 원조 「루트」를 지키기 위하여 북부를 점령했었지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소련은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었으므로 남북이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나뉘어지지나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종전 다음해에 소련에 석유의 이권을 줄 약속으로 소련군을 철수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소련군이 철수하자 의회에서 그런 조약의 비준을 부결했습니다. 소련은 미처 이것까지는 생각 못 했던지 흐지부지되고 말았지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참 아슬아슬하게 민족 분단을 면했다.
이 「이란」사람에게 운수 용역에 종사하기 위하여 한국 사람이 여기 와 있는데 아느냐고 물으니 그는 운전하는 흉내를 내며 『한국 사람은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마음도 좋지만 여간 슬기롭지 않거든요』한다. 극구 칭찬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보아 분명히 그에게는 운수 용역에 종사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우 좋게 반영된 것이 틀림없다.
그는 내가 더 묻기도 전에 『한국 사람은 작년부터 여기 와서 일을 하고 있죠. 꾸준히 일을 하고 있는데 모두들 머리가 비상하단 말이요.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도 현명하기 그지없으니 더 배운 사람들은 머리가 더 뛰어날 게 아니겠어요』하며 우리나라 사람의 머리가 뛰어났다고 칭찬한다.
운수 회사인 「이란·탱커」사무소를 찾으니 앞면 벽에다 한글로 『한국 기사 여러분!』이란 서두로 시작하여 『곡류는 계량를 분명히 하고 소독을 해야 하며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지니고 일하자』는 내용의 글이 붙어 있었다.』 조국을 떠나 처음 보는 우리 한글이 무척 반가 왔으며 세종대왕이 이것을 본다면 얼마나 기뻐하랴 싶었다.
이 항구에서는 수출입품 수송의 태반을 한국인이 맡고 있으므로 「코리언」하면 「드라이버」로 통한다는 것이다. 우리 동포들은 고국을 몹시도 그리워하고 있으며 지난번 1월말 한국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했다고 한다. 이 동포들은 자기들의 활약상을 말하고 나는 고국 이야기를 하였는데 우리 한국 민족은 줄곧 세계사적인 비극만을 안고 살아온 때문인지 이렇게 먼 나라에서 동포를 만나면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우리 동포를 만나기 위하여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와서 반갑게도 동포를 만나니 기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우리나라를 아껴 주는 「이란」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묘한 가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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