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 리포트] 불도저 버전은 0점…첫 훈련에선 구멍병사였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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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고대하던 첫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팀RGB’의 감독님은 서울 창천초등학교 과학교사 이종환 선생님! 일 년 전에 열린, 데니스 홍 당시 버지니아공대 교수님의 강연회에서 처음 뵌 분이었죠.

그 때 저는 한 어린이신문의 명예기자로 홍 교수님을 인터뷰 했는데요. 이 선생님께서 저랑 홍 교수님의 사진을 찍어 주셨지요. 정말 신기하지 않으세요? 그 작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팀 사령탑과 ‘구멍병사’로 만나게 되다니요! 알고 보니 감독님이 마냥 친절하시기만 한 건 아니란 게 함정이긴 하지만요, 흐흐~

김서준 학생기자가 만든 로봇 스콜피온 ‘불도저’ 버전. 삽으로 공을 뜨게 하려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다.

스콜피온 팔에 삽을 달아라!

우리 로봇 스콜피온이 감독님 눈엔 세계 대회에 나가기에 부족해 보였나봐요. 첫 훈련 전까지 각자 전혀 다른 로봇으로 개조해 오라는 과제를 주셨답니다. 벡스-아이큐 공식 홈페이지(www.vexrobotics.com)나 유튜브를 찾아보면 괴물 같은 로봇들이 잔뜩 나와요. 그걸 보면 볼수록 스콜피온의 집게 손으로 공을 잡아 골대에 넣기는 어렵겠더군요. 그 괴물들은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파란 축구공을 순식간에 몇 알씩 집어삼키거든요. 그렇게 모은 공을 골대에 한꺼번에 뱉어 넣으면 순식간에 십 점, 이십 점이 올라간다니까요.

저희는 감독님을 만나기 전날 밤 늦게까지 꼼지락거리며 로봇을 만들었죠. 친구들의 완성작이 ‘밴드’에 속속 올라올 때마다 감탄이 나왔어요. 저에겐 비장의 무기 ‘삽’이 있었어요. 진공청소기는 아니어도 불도저는 만들 수 있겠죠!

“석규야, 팔이 너무 길고 약해. 모터의 힘이 집게까지 전달되지 않잖아.” “태현아, 무게중심이 안 맞아 덜컹거린다. 바닥을 긁고 가다간 넘어질 수밖에 없지.” 이렇게 한 부분씩 친구들의 로봇을 고쳐 주시던 선생님은 제 로봇을 보시더니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어요. “서준아, 삽은, 도저히 안 되겠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자.”

스콜피온 불도저 버전은 이렇게 단 하루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답니다.

스콜피온을 손보고 있는 ‘팀RGB’ 멤버들.

세계대회를 향한 ‘겁나 먼’ 길

창천초등학교는 옛날부터 알아주던 명문학교래요. 발명교실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기가 팍 죽을 정도였지요. 수영장이 얼마나 큰지 복도를 따라 사물함 수백 개가 설치돼 있더라고요. 일층, 이층, 삼층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어요. 빙빙 돌다 발명교실에 들어가니 세상에, 교실 두 개쯤 합쳐놓은 공간에 공작용 선반과 공구세트가 한 가득 펼쳐져 있는 거예요. 심지어 꿈에 그리던 3D 프린터까지! 창천초 발명교실에는 서울 서부지역 발명영재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구글에서 찾은 벡스 공의 이미지를 3D 프린터에 입력하자, 한 줄 한 줄 플라스틱 실이 쌓이더니 연습용 공이 나왔어요. 엄마들이 만들어주셨던 모의 연습장과 신문지 공은, 이렇게 말하기 죄송하지만 이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지요. 저는 3D 프린터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어요.

어쩌면 미국이란 데도 그런 곳일지 몰라요. 저희 팀RGB 친구들과 함께 미로 같은 로커룸을 지나 지하실을 건너 발명교실에 들어갔더니 3D 프린터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던 것처럼, 힘겨운 훈련 과정을 견디고 견디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멋진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겠죠. 세계대회를 나간다는 건 3D 프린터의 마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일일 거예요.

김서준 학생기자(NLCS제주 4학년)

로보쌤의 원 포인트 레슨 ② 로봇의 ‘밥심’ 배터리

사람은 밥심으로 살고, 로봇은 ‘뱃심’으로 삽니다. 뱃심이 뭐냐고요? 배터리(전지)의 힘이지요, 하하! 로봇이 움직이는 데는 전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항상 코드를 꽂고 있으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언제 어디서든 전기 에너지를 즉각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든 발명품이 바로 전지랍니다. 그러니까 로봇의 휴대용 밥통, 즉 도시락인 셈이죠.

일반적으로 전지란 화학전지를 가리킵니다. 내부의 산화-환원 반응으로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원리입니다. 최초의 전지는 1800년에 발명된 ‘볼타 전지’였어요. 이후 두 세기 동안 한 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1차 전지)로부터 산화-환원 반응을 역으로 일으켜 재사용하는 충전지(2차 전지), 태양빛을 직접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태양전지(물리전지)까지 발전을 거듭했지요.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알카라인 건전지 있죠? 편리하긴 한데 환경오염 문제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충전지가 대세가 됐지요. 로봇을 비롯해 휴대전화, 노트북 같은 첨단기기에도 모두 충전지가 쓰인답니다. 참, 벡스-아이큐 로봇 대회에서 배터리는 한 가지 더 중요한 역할을 해요. 바로 가벼운 플라스틱 부품 가운데서 무게중심을 잡아줘 로봇이 넘어지지 않게 해준답니다.

‘로보쌤’ 이종환 (서울 창천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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