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비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며칠 전 시댁에 다니러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에서 토정비결 책 한 권을 샀다.
점잖지 못하게 토정비결이나 들고 다니기가 언짢았지만 방학동안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이 팔고있기에 한 권을 샀다. 학비에 보태어 쓰라고 돈을 주었더니 거저 받기가 거북하다면서 한권을 건네주고 갔다. 그래서 그날저녁에는 심심풀이로 아빠와 때늦은 토정비결을 보게 되었다. 과학적인 신빙성이 없는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어왔으나 일생 처음 토정비결을 앞에 놓고 보니 한편 신기한 기대(?)마저 들었다.
그런데 내 것을 펼쳐보니 정월부터 섣달까지 한결같이 불길한 괘밖에 나오지 않았다. 병·화재·도난·교통사고·자식과 남편은 잃는다는 등 온갖 나쁜 괘가 나열되어있었다.
두번 다시 읽어볼 마음도 없이 덮어버렸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공연히 불안한 마음에 며칠 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아빠의 괘는 나와는 반대로 더 없이 좋은 괘였다.
아주 상식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이렇게 마음을 돌리기로 했다. 토정비결의 괘만 믿고 생활에 태만하면 그만큼 뒤떨어지고 나의 괘같이 불길하더라도 모든 일에 신중하고 착실한 생활을 영위한다면 오히려 화가 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토정비결은 하나의 미신적 예언에 불과하지만 좋은 충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이란 오늘 하루 이 순간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지 결코 내 것, 네 것으로 이미 만들어져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 임자년 한해를 알차게 보내리라 마음먹는다.<김해숙(경북 영일군 양포 국민학교 관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