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살인' 결국 무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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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는 낙지일까 남자친구일까. 살인의 직접적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른바 ‘낙지살인사건’의 피고인이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12일 여자친구 윤모(당시22세)씨를 살해한 뒤 낙지를 먹다 질식사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 2억원을 타낸 혐의(살인 등)로 기소된 김모(32)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만 사건과 별개로 기소된 절도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김씨는 2010년 4월 인천의 한 모텔에서 윤씨와 술을 마셨다. 인근 횟집에서 구입한 산낙지 네 마리가 안주였다. 술을 마시러 들어간 지 1시간여 만에 김씨는 모텔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윤씨가 숨을 쉬지 않으니 119 신고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병원에 실려간 윤씨는 잠시 맥박이 회복됐으나 치료를 받다 끝내 숨졌다. 김씨는 윤씨가 낙지를 먹다 질식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씨가 자신이 수익자로 된 윤씨의 생명보험금을 노리고 살해한 것으로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핵심 쟁점은 윤씨가 낙지를 먹다 질식사했는지 여부였다. 1심을 담당했던 인천지법은 낙지로 인한 질식사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다. 술자리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였고, 윤씨도 평온한 표정으로 잠을 자듯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는 근거를 들었다. 또 신용불량자로 소득이 없었던 김씨가 주변 지인들에게 ‘돈 나올 곳이 있다’는 취지로 얘기한 점, 자신의 휴대전화가 있는데 프런트로 전화해 119 신고를 부탁한 점 등 주변 정황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살인죄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상급 법원인 서울고법과 대법원은 정반대의 판단을 했다. 유죄로 판단하려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고하게 증명돼야 한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윤씨가 낙지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코와 입을 막아 윤씨를 살해했다면 발견돼야 할 저항의 흔적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또 질식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질 때 얼굴 표정이 펴지게 돼 편하게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몸부림치기보다는 가슴을 두드리며 쓰러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고려했다.

 또 공소사실에 범행 동기로 적시된 생명보험금을 노렸을 것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익자가 윤씨의 법정상속인에서 김씨로 바뀐 것은 사실이지만 윤씨가 보험 가입 당시부터 부모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 스스로 이를 원했다는 증언과 수익자 변경에 관한 서명을 윤씨가 직접 한 점 등을 감안한 것이다. 또 해당 보험이 상해사망보다는 암 등의 질병에 대한 보장에 특화된 보험인 데다 보험 내용에 대해 김씨가 잘 몰랐던 점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미리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윤성식 대법원 공보관은 “간접증거만으로 유죄 판단을 하기 위해선 간접증거들이 오류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작아야 된다는 취지”라며 “낙지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무죄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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