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얄팍한 밑천 드러낸 일본 우익 정치인의 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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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승욱 도쿄 특파원

일본 정치가 두 사람의 우익 정치인 때문에 시끄럽다. 한 사람은 “위안부는 필요했다”는 망언을 통해 ‘국제적 비호감’으로 각인된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 나머지 한 명은 자민당 정조회장을 맡고 있는 여성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다.

 6선 의원이자 집권당의 정책 사령탑인 다카이치는 한국에서의 지명도는 하시모토에 밀릴지 몰라도 일본에선 내로라하는 우익이다.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야스쿠니(靖<56FD>) 신사를 찾는 확신범으로, 침략 역사를 사죄한 일본 정부 담화들을 걸핏하면 깔아뭉갠다.

 그가 17일 대형 사고를 쳤다. 한 지방 모임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지만 그로 인한 사망자가 나온 건 아니다. 최대한 안전성을 확보해 나가면서 (원전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민당 정책인 원전 재가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큰 파문을 낳았다.

 먼저 사실 관계부터 틀렸다. 지진·쓰나미의 직접 피해가 아니더라도 피난 생활 과정의 질병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자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했다. 이런 ‘지진 관련사(關聯死)’로 인정받은 사망자가 5월 현재 전국적으로 2600명이 넘고, 이런 불행한 죽음 중 절반 이상이 원전 사고지역인 후쿠시마에서 나왔다.

 게다가 다카이치의 발언에 일본 전체가 경악한 건 그가 한 말의 진위 여부가 아니었다. 아직 15만 명 이상이 힘겨운 피난 생활을 이어 가고 있는 후쿠시마를 향해, 집권당의 핵심 당직자가 어떻게 “원전 사고, 별거 아니거든”이란 취지의 발언을 던질 수 있느냐는 분노였다.

 원전 피해 주민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마저 상실한 태도에 비난이 쇄도했다. 결국 다카이치는 이틀 만에 “발언을 모두 철회하고 사죄한다”고 무릎을 꿇었다. 이번 일을 지켜보자니 다카이치가 해온 수많은 망언이 떠올랐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4월 “(신사 참배가) 외교 문제가 되는 것이 너무 이상하다”, 5월엔 “침략이란 표현이 들어간 무라야마(村山) 담화는 적절치 않다”고 했다. 과거 일본의 침략에 피해를 입은 주변국 국민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입에 담을 수 없는 얘기들이다. “모든 나라가 전쟁 때 여성을 활용했는데, 왜 일본만 욕을 먹느냐”는 궤변을 거듭하다 결국 일본 정치의 외톨이가 돼버린 하시모토만 뭐랄 게 아닌 것이다.

 상대가 자국의 원전 피해 주민이든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됐던 아시아 국민이든, 인간의 아픔을 무겁게 여길 줄 모르는 정치인들은 언젠가 그 얕은 밑천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정치 입지 강화를 위해 남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다 된서리를 맞은 두 정치인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서승욱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