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적발에 세무조사,경제민주화 압박까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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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해 11월 6일 국회 정무위원회. 해외출장을 이유로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 실태확인 및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롯데그룹 신동빈(사진) 회장,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신세계 정유경 부사장,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회장을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경제민주화 화두에 대해서 ‘재벌 총수들이 잘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논의하고 있는 경제민주화법을 빨리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새누리당 조원진 의원)
 “롯데그룹은 지난 4년 동안 공정거래위원회 소관법률 위반사항이 26건으로 확인됩니다. 신세계그룹 또한 이마트나 신세계 L&B 등 이런 기업을 통해 공정거래법·하도급법 위반이 있습니다.”(민주통합당 강기정 의원)

 #2. 롯데그룹은 지난해 하반기 정책본부 내에 ‘명성관리 TF팀’을 만들었다. 5~6명 규모의 TF는 사회적 책임 활동(CSR), 부정적 여론 관리, 대관(국회·정부) 소통 업무를 주로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그룹 이미지를 파악하기 위해 PR컨설팅 업체에 의뢰해 평판도를 조사하기도 했다. TF팀장은 이석환 이사로 채정병 지원실장(사장)에게 직보하는 체계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채 사장은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롯데가 정권 말기에 이런 TF를 만든 것은 그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방치했다가는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업계는 풀이했다. 그룹 관계자는 “‘명성 관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만든 TF였다.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 26일 재판 출석 예정
지금 롯데그룹에는 위기감이 흐른다. 악재의 연속이다.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감사원은 10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배우자와 자녀·손자 등이 회사를 설립한 뒤 낮은 임대료로 영화관 내 매장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현금배당 280억원과 782억여원의 주가상승 이익을 얻었다고 밝혔다. 경제민주화 바람 속에서 대형마트·기업형 수퍼마켓(SSM)에 대한 압박도 이어진다. 이명박 정부에서 특혜를 받으며 성장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잠실 제2 롯데월드 건설허가, 맥주사업 진출, 면세점 AK글로벌 인수, 경인고속도로 연결 민자고속도로 건설 등 MB정부에서 굵직한 사업을 따낸 것이 혜택 아니었느냐는 일부의 시각이다.

 그룹의 핵심인 ㈜호텔롯데는 지금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 소속 요원 수십 명이 투입됐다. 호텔롯데는 전국 각지에 호텔과 면세점, 테마파크, 골프장 사업을 하는 곳으로 일본의 ㈜롯데홀딩스 등 일본롯데 계열사들이 대부분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롯데쇼핑(지분 9.58%), 롯데케미칼(13.64%), 롯데건설(38.34%) 등 주요 계열사의 지분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국내외 경기침체 속에서 지난해 롯데쇼핑·케미칼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의 실적은 부진했다. 그룹의 숙원사업으로 추진하는 잠실 제2 롯데월드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울시는 한국시설안전공단·대한건축학회와 함께 제2 롯데월드의 핵심 골조인 타워 기둥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최종보고서를 22일 낼 예정이다. 서울시 측은 “초고층 건물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시민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제2 롯데월드 타워의 정밀안전진단 진행과정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의 청문회 불출석에 따른 재판도 26일 있을 예정이다. 재판이 끝은 아니다. 국회가 지난해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은 유통업체 대표들을 다시 부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시 정무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고발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재청문회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정무위 간사인 박민식(새누리당) 의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청문회는 정기국회 국감 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민주화 관련 법을 만들면서 입법청문회를 열고, 여기에 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신동빈 회장은 지난달 롯데쇼핑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신 회장을 비롯한 기존 4인 대표체제에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이인원 그룹 정책본부장, 신헌 롯데백화점 사장 등 3인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됐다. 일부에서는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신세계·이마트의 등기이사에서 사임한 것과 비교해 신동빈 회장의 등기이사 사퇴 가능성도 언급된다. 책임을 면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변호사의 말이다. “관련 법상 타이틀을 떠나 실질적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면 책임을 지도록 돼 있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는 것이 책임 회피용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 업무 지시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다. 책임을 피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는 걸 부인하기 힘들다.”
 
재계 “최근 롯데 상황 보면 안타깝다”
롯데는 이런 부정적 인식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롯데의 실제 점수는 70점 이상인데, 50점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롯데쇼핑 대표이사 사퇴에 대해선 “신동빈 회장에게 롯데쇼핑 같은 계열사 대표이사 자리는 큰 의미가 없다. 대표이사직은 물러나지만 등기이사 지위는 유지한다. 책임회피가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 정권 특혜설에 대해서도 “절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풍부해 여러 기업을 인수하고 사업에 참여했을 뿐이다. 불법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반박했다. 호텔롯데 세무조사도 정기조사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룹 관계자는 “국제거래조사국이 투입된 것은 일본롯데 계열사가 있기 때문으로 안다”고 말했다.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해 롯데는 원칙에 충실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7월 비상경영을 선포한 비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원가·비용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보다 나은 서비스 제공을 통해 고객을 만족시킬 것이다. 원칙에 충실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롯데는 최근 ‘사랑과 신뢰를 받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여 인류의 풍요로운 삶에 기여한다’는 새로운 그룹 미션도 발표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최근 롯데를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경제민주화 바람의 영향을 받는 것도 그렇고, 사정기관의 책임자들이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갈 것을 더 엄격하게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기업들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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