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원 어머니께 바친 ‘우리’의 웃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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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모친상에도 벤치를 지킨 전주원 코치가 우리은행 선수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용인=김민규 기자]

2012~2013 여자 프로농구 챔피언결정 3차전. 66-51로 춘천 우리은행이 앞선 4쿼터 종료 34초 전, 위성우(42) 우리은행 감독은 김은혜(31), 김은경(30) 등 베테랑을 일제히 교체 출전시켰다. 팀을 위해 헌신한 고참들이 우승의 기쁨을 코트 위에서 만끽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우리은행이 19일 용인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용인 삼성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 3차전에서 66-53으로 승리하고 챔피언에 올랐다.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챔프전에서 1·2·3차전 모두 완승.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퍼펙트’ 통합우승이다. 지난 시즌까지 4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던 팀의 드라마 같은 변신이다.

 우리은행은 1958년 창단한 한국 최초 실업 여자팀 상업은행에 뿌리를 두고 있다. 67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일궈낸 박신자·김명자·김추자도 우리은행 선수들의 대선배다. 98년 프로 전환 후에도 네 번이나 우승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적 부진과 더불어 전임 감독들의 성추행·폭행 등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랐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위 감독과 전주원(41) 코치가 부임하면서 팀이 확 바뀌었다. 업계 라이벌 신한은행 코치에서 우리은행의 사령탑으로 옮긴 위 감독은 하루 9시간 맹훈련을 지휘하며 팀을 쇄신했다. 선수들이 “우리가 한 훈련을 생각하면 우승은 당연한 것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혹독한 훈련이었다. 전 코치는 위 감독이 헤아리지 못하는 빈자리를 채웠다. 선수들을 다독이고 격려하는 어머니 역할을 했다.

 전 코치는 챔프 3차전이 열리기 하루 전 모친상을 당했다. 챔프전 2차전에 춘천의 체육관에 응원까지 왔던 건강한 어머니 가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선수들은 전 코치를 위해 왼쪽 가슴에 근조(謹弔) 리본을 달고 뛰었다. 심판의 휘슬이나 경기 흐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차근차근 점수를 쌓아갔다.

 위 감독은 “전 코치가 마음이 복잡할 텐데 오히려 팀 걱정을 하더라”며 “오늘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선수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전했다. 전 코치는 밤새 빈소를 지켜 눈이 빨갛게 충혈됐지만 작전시간에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불러 격려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는 시상식 때 사진만 찍은 뒤 아무 말 없이 코트를 빠져나갔다.

 위 감독은 “선수들이 챔프전에서 이 정도로 잘해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내 눈에만 부족해 보였나 보다. 혹독한 훈련을 견뎌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코트 안에서 진두지휘한 주장 임영희(33)는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글=박소영 기자
사진=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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