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릴레이] 독일 박물관 짓는데 22년 걸린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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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에 있는 독일박물관(Deutsches Museum)은 과학기술 발명품을 보존, 전시하는 것뿐 아니라 방문객에게 각종 기구를 실제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과학적 원리를 알게 하는 새로운 박물관 개념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박물관이다.

과학박물관의 대명사가 된 독일박물관은 독일 전력 산업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했던 전기공학자 오스카 폰 밀러의 생애를 바친 노력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이 박물관에서 교육과 오락의 기능을 결합시켰으며, 과학기술이 역사와 사회 속에서 구현되는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독일박물관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무려 22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1903년 여름 박물관 건설 추진위원회가 처음 결성되었으며, 뮌헨시가 제공한 이자르강의 사주(砂洲)의 부지에 과학관 건설 계획을 수립한 것이 1905년의 일이었다.

다음해 공모를 통해 가브리에 폰 자이들이 건축가로 선정되었지만, 최초의 건축 계획은 1925년에 구현된 최종 버전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오스카 폰 밀러는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전시 개념에 맞도록 끊임없이 설계 변경을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건설 계획안은 계속 바뀌었다. 독일 박물관 건설에서는 항상 전시 계획이 정해지고 난 뒤에야 건축 설계가 뒤따랐다.

오랜 건설 기간 동안 독일박물관은 엄청난 난관도 극복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세계 제1차대전의 패배와 이어 나타난 최악의 인플레이션은 과학관 건설 사업을 심각한 재정적인 곤경에 빠뜨렸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오스카 폰 밀러는 건설.철강 협회를 비롯해 가능한 모든 곳을 찾아다니며 건설 재원을 마련하였다.

1913년 애초에 건축가로 선정한 가브리에 폰 자이들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동생 에마누엘이 뒤를 이어 19년까지 건설을 지휘했다.

25년 박물관을 완공시킨 것은 그의 후임이었던 오발트 비버였다. 40대에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했던 오스카 폰 밀러는 칠순의 노인이 되어 독일박물관의 개관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오스카 폰 밀러가 온 생애를 바쳐 추진한 독일박물관은 그 후 과학기술 박물관의 전형이 되었고, 시카고 과학산업 박물관을 비롯한 세계의 유명 박물관 설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정부는 수도권 지역에 새로운 국립과학관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현재 부지 선정작업에 들어가 있다.

이번 과학관 건설에서는 일단 시공 삽질부터 하고 건물에 맞추어 전시물을 채우는 구태의연한 전시 행정의 모습에서 탈피해야겠다. 22년에 걸쳐 독일과학관을 완공한 오스카 폰 밀러의 활동은 우리 과학관의 건설에도 귀감이 되어야 한다.

임경순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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