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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외교공조 유지가 과제(수교한돌… 되짚어본 한중관계:하)
◎중국 팽창·대국주의 걸림돌 될수도/경제경쟁국 부상… 우위분야 지켜야 「파란불을 받고 정체된 교차로를 빠져나와 탁 트인 고속도로에 들어선 고속버스」. 수교 1주년을 맞은 한중관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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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6·25참전 미화 대응 왜 없나|김장용
중국은 7.27 휴전 협정 40주년을 맞이해 「항미 원조 기념관」을 개관했다. 또 북한의 「조국 해방 전쟁 승전 40돌」 행사에 대규모 당·정 경축 대표단을 파견했다. 「6·25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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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협정 40돌 맞아/중북한 관계회복 기미
◎중국 공식비공식대표 80여명 입북/“긴장완화 도움” 한국측에 사전 해명 지난해 8월 한국과 중국의 국교수립으로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져왔던 휴전협정 성립 40주년을 계기로 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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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 2년 다시 이는 전운(사설)
이라크의 쿠웨이크 기습점령으로 시작된 걸프전쟁이 2일로 개전 2주년을 넘겼다. 페레스트로이카이후 최초의 국제전이었던 이 전쟁은 세계를 크게 바꿔놓았지만 그 지역의 불안과 전쟁위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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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39돌맞아 알아본 중공군개입 내막|"모택동 사흘밤낮 생각 끝에 참전결정"
6·25전쟁은 3년여에 걸친 처절한 상쟁에도 불구하고 남북분단체제를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한민족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한국현대사에 있어 가장 강력한 「규정력」을 갖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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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한반도 정세 |「냉전터널」 벗어나 대화시대로
일제의 패망과 해방, 그리고 미소 양국 군대의 진주에 따라 한반도에 펼쳐진 냉전 질서는 남북한에 대립되는 정권을 등장시키면서 이 땅에 분단시대의 막을 열었다. 그것은 해방과 건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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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경제」에 눈뜬 베트남
75년 월남 패망과 베트남의 적화. 통일 후 벌써 11년, 프랑스와 미국의 보호아래 있던 그 나라의 남반부에도 사회주의가 뿌리를 내릴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현재 통일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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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내가 아는 박헌영(157)|박갑동
김일성은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온다 온다는 중공의 원병은 오지 않고「유엔」군은 38선을 넘어 질풍과 같이 쳐들어오는 것이었다. 모택동은 김일성에게『기본방침은 구원병을 파견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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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3대 지 공동사설
다음은 지난 1일 중공 정권수립 23주년 기념일을 기해 발표된 중공 당 기관지 인민일보·홍기·중공 군 기관지 해방군보 등 3대 일간지의 공동 사설의 요지이다. 1, 1년 동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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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스탈린의 죽음 (6)|소련과 6·25 (3)
「스탈린」은 처음에는 북한 공산군에 장비만 제공해줌으로써 6·25를 통해 한반도 전체의 적화를 기도했다. 소련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소망이기도 한 이런 계획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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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아이크」 집권과 내한 (2)|등장의 배경 (2)|6·25 21…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
「해리·S·트루먼」 대통령은 자신의 재출마는 단념했지만,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 「프레드·빈슨」 대법원장이 후보가 되기를 바랐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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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맹군의 전면공세
월맹과 「베트콩」은 3개 사단이상의 병력과 중장포를 동원하여 남북월남비무장분계선(DMZ) 남방, 중부고원지대 및 수도 「사이공」 서북방 등 월남전역에서 68년의 구정공세이래 최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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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맹의 해빙「쇼크」무마
월맹수상 「팜·방·동」의 중공방문은 구체적으로는 미·중공정상회담에 대비한 양측의 공동전략을 타협하는 한편 「포드고르니」의 「하노이」방문에서 나타난 소련영향력의 인지침투를 만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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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남과 북의 포로수용소
상병포로란 문자 그대로 전투 중 부상하고 적에 잡혔거나 포로생활 중 병에 걸린 군인으로서 전쟁에서 가장 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포로가 된 것만도 불행한데 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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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국방 국론을 하나로
『국가안보나 외무 국방에 여야가 있을수없다』는 열국공통의 고정표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실질상 그실천은 정부의 전횡과 이에 추종일변도인 여당에 대비하여 야당은 만년 반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