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2 총소리에 뒷담 넘었다…쿠데타에 3번 숨은 국방장관 유료 전용
「 한남동의 총소리 」 「 4회. 12·12는 5·16의 데자뷔 」 12·12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은 군 수뇌부가 우유부단했기 때문이었다. 최고책임자인 국방장관
-
청와대 향해 조명탄 날렸다…‘박정희 양아들’ 만든 사건 셋 유료 전용
「 궁정동의 총소리 」 「 3회. ‘박정희 양아들’ 전두환 」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등장하자마자 박정희 대통령의 양아들이란 소문이 나온 것은 그만큼 박정희가 전두환을 총애했
-
최고회의 평균 나이는 39세…사진 한 장이 보여준 새 권력 (15) 유료 전용
1961년 5·16은 구질서의 권위와 기능을 정지했다. 그날 내가 작성해 KBS 방송으로 내보낸 포고문(4호)은 이랬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오늘 오전 7시를 기해 일체의 장면 정
-
군사 혁명정부 지키기 위해 수방사 창설 … 한국군, 독자적인 작전권 행사 계기 돼
1961년 6월 1일 후암동 미군부대 서 열린 수도방위사령부 창설식. 사령관 김진위 소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는 5·16의 산물이다. 탄생의 산파역은 5·
-
수녀원에 피신한 장면 총리 '54시간 부재' … 궐기군 진압 무산 … 반전의 기회 사라졌다
1961년 3월 장면 총리(왼쪽)가 이한림 제1군사령관(중장)과 함께 원주 국토건설사업 시공식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 사령관은 한국 최대 규모 실병력인 20개 전투사단을 보유하고
-
JP "거사 빨리 하려 5·16 택일" … 이한림 "군 지휘부 공백 노려"
5월 12일 거사 계획이 새어 나가자 5·16 주체세력은 거사일을 5월 16일로 조정했다. 16일은 화요일이었다. 16일 택일에 대해 김종필 전 총리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아니면 '아니오' 해야지(34)
(34)육사교장 시절 7.29선거로 민주당의 제2공화국 정부가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은 60년 10월, 나는 6군단장에서 육사 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임 최경록 (崔慶祿) 육
-
30.申性模국방 전황보고서 下.
〈1950년 7월6일〉제7차 보고 어제 오전5시부터 오산방면에서 미군이 적과 충돌했습니다.어제 종일 비가 많이 와 큰 충돌은 없었으나 오늘 아침부터는 미군부대와 적의 주력부대간 전
-
제3공화국 가장 길었던 사흘(11)
계엄령을 기정사실로 한 행정통제로 거사는 1단계 전진했지만 야전군사령부·유엔군사령부, 그리고 장면 총리의 막료들은 사태역전에 머리를 짜고 있었다. 5·16주력부대 앞을 가로막고 있
-
(92)창군전후(11)이경석(필자는 제자)
경비대의 초창기에는 갖가지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 중에도 사병들이 장교를 구타하거나 배척한 이른바 하극상사건이 많았으며 한국장교와 미군간의 충돌도 적지 않았다. 제3연대장 김백일
-
(1)5·16군사혁명|국내
간단없이 흐르는 역사에 구독점을 찍어 어떤 사물을 관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어떤 기간에 세계가 유달리 격동을 겪었음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