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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오리 가족
늑대가 까치발로 선 채 감나무에 온몸을 딱 붙이고 있습니다. 대가리만 살짝 돌려 음흉함이 가득한 눈초리로 오리 일가족의 움직임을 관찰합니다. 늑대는 대단히 풍족한 땟거리를 만났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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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호의 아침
들판의 아침이 밝아질 즈음, 목적을 두지 않고 걷게 되면 무심결에 발길 닿는 곳이 ‘동정호’입니다. 동정호는 악양 들판 서쪽에 있습니다. 예부터 알려진 평사리 들판의 ‘부부 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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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의 여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다녀왔습니다. 지난겨울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다녀온 뒤로 이어지는 인연입니다. 히말라야 14좌, 8000m 이상 봉우리 14개의 베이스 캠프를 모두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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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비구름
입술이 바짝 바짝 마르고, 입가는 갈라지고, 목은 칼칼해 밭은 기침이 잦습니다. 이럴 때는 미적지근한 물을 마셔야 문제가 해결되는데, 지금 온 나라의 가뭄이 이와 같습니다. 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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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의 계절
요즘 우리 동네는 매실 따기에 정신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매화나무만큼 실한 나무는 없습니다. 일단 춥고 삭막한 겨울에 매화꽃이 피면 온 천지에 그 향기가 퍼져 봄을 기다렸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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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농군
허리 굽혀 풀 베고, 무릎 굽혀 잔돌 치워가며 당신의 논을 힘 없이, 쉼 없이 다니십니다. 돌 틈에 난 풀에 벌레가 ‘오글오글’ 붙어 있다고 마른 풀로 불사르고, 더러 축대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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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 하모니
요즘 들판에서 나는 소리가 아주 다양합니다. 물 댄 논에서 땅을 뒤집는 트랙터는 ‘철퍽철퍽’ 힘겨운 소리를, 트랙터 뒤를 쫓으며 먹이 찾는 노랑머리백로는 ‘끼룩끼룩’ 행복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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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생일상
아는 스님이 초파일날 아침상을 같이 들자고 해서 스님 도량으로 내려갔습니다. 서로 간에 마음을 내어 만나는 사이인지라 도량 가는 발걸음은 항상 가볍습니다. 도량 주인은 말과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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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그늘 아래
‘멀리’ 혹은 ‘오랫동안’ 어디로 간다는 것은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즐거움입니다. 동네 근처 들판이나 강가를 기웃거리던 친구들과 어울려 우리 동네로부터 무려 ‘120㎞’나 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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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아침 햇살
길입니다. 큰물이 한번 들고 나면 걷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던 둑길이나 나무 다리가 뒤집어지고 부러집니다. 사람 발길이 뜸해지면서 잊힙니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풀, 나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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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사잇길로
보리가 익어가는 요즘, ‘한여름 더위’ 뺨치는 ‘봄 더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낮에는 반소매도 덥지만 밤에는 군불 땐 방에서 잠을 자니 봄날인지, 여름날인지 애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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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밭 ‘수행’
지금 지리산 화개·악양 마을 일대는 녹차 작업으로 낮밤이 바쁘게 돌아갑니다. 해지기 전까지는 찻잎 따기에 여념 없고, 해 지고 나면 녹차 만들기에 정신없습니다. 비록 20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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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식 써레질
우리 동네 이름은 노전마을입니다. 마을 길은 당연 ‘노전길’이고, 저는 노전길 제일 끄트머리인 형제봉 중턱에 살면서 노전길로 드나듭니다. 비 갠 하늘이 예쁜 아침에 노전길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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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산동네에서는 계절에 관계없이 푸름을 볼 수 있어 눈도 편안하고 그만큼 마음도 여유로울 수 있습니다. 여유로운 마음, 따뜻한 감수성이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시작과 끝의 인연을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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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빛 봄
꽃이 피고 지는 동안에 땅은 숨구멍을 열었고, 그 숨구멍으로 따뜻한 바람이 드나드니 어느새 버드나무에 여린 잎이 돋았습니다. 하늘과 땅의 약속이 릴레이처럼 펼쳐지더니 지리산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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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봄!
겨울 철새가 자리를 비운 들판에 풀꽃들이 다투어 나고, 농부들의 발걸음 또한 잦아졌습니다.겨우내 얼었던 땅도 슬그머니 풀려 숨구멍을 열었습니다. 햇볕 바른 곳은 진작부터 풀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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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바람 쐬는 날
쌍계사 큰절에서는 매년 보살계 회향하는 날인 음력 3월 7일 이른 아침에 수계식과 대장경정대불사를 봉행합니다. 이날은 1년에 딱 한 번, 석가모니불을 그린 괘불이 바깥공기를 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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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소식
“이 선생, 우리도 이제 늙었나 봐.” “그렇긴 하지만, 왜요?”“읍내 가는 길에 이제 갓 피어난 매화꽃을 보고 깜짝 놀랐어.”“매화꽃이 피는 줄도 몰랐네.” “벌써 봄이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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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바람
사진의 속성 중에 우선 따져야 할 것은 ‘사실에 바탕을 둔 기록성’입니다.기록성은 곧 ‘현장성’입니다. 어디든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그런 뜻을 갖고 봄바람이 모질게 부는 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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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
‘솔봉’ 끝자락 곁으로 보이는 들판에 여느 때보다 두툼한 안개가 깔렸습니다. 요즘은 계절이 바뀌는 철이라 일교차도 크고, 섬진강이 가까이 있어 새벽녘에 안개가 잦습니다. 생각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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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가는 길
상신마을에는 ‘조부잣집’이 있습니다. 소설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 댁의 모델입니다. 조선 후기에 지은 예스러운 한옥이 돌담길과 잘 어울려 찾는 이가 많습니다. 대개 이 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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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마중 눈꽃
먼 하늘에서 뿌연 눈구름이 다가오더니 이내 눈꽃바람이 일어나 천지가 하얀 눈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눈동자는 커지고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놀란 갑작스러운 마주침이었습니다. 가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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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마을 짚신공방
‘난정마을’ 할머니들이 신났습니다. 짚신 삼기에 골똘하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우리 사진반 일행을 보고 몹시 반기며 한마디씩 합니다. “어디서들 오셨나?” “한둘이 아니네! 버스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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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 최참판댁 소원쪽지
평사리 마을에는 ‘최참판댁’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도 주말에는 관광객들이 꽤나 찾습니다. 저도 설날 언저리에 갔다가 한쪽 벽에 있는 ‘소망편지’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