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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 한국 연극 최초의 여배우 단체 ‘부인 연구단’
엄명선 일행 여배우의 공연에 대한 ‘매일신보’(1912. 9. 22.) 기사. “조선의 처음으로 흥행하는 엄명선 일행의 여배우는(…) 사동 연흥사에서 십일 동안을 계약하여 명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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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영화 다시보기
올해는 영화가 태어난지 꼭 1백년 되는 해다.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형제가 자신들이 발명한 시네마토그래프를 사용해 촬영한「영화」를 일반에 공개한 것이 그 효시(嚆矢)다.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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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9) 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
복혜숙이 대망하던 영화에 출연한 것은 1926년 조선키네마회사가 창립 작품으로 내놓은 『농중조』에서 였다. 이규설이 감독하고 이규설과 복혜숙이 주연으로 나오고 나운규·노갑룡이 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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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8) 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141)
우리나라에서 여배우로 최초로 등장한 여인은 이월화다. 그는 1923년 윤백남이 감독으로 제작한 『월하의 맹설』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하였고 그 다음에 윤백남이 제작한 『운영부』 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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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6) 제80화 30년대의 문화계(19)여배우 이월화
50년동안 우리나라 연극계에 출연하여온 원로 연극인 변기종도『1923년에 우리연극계에 큰파문이 있었으니 그것은 곧 토월회의 탄생이었다』고 말하고있듯이 토월회의 공연은 서울의 극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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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5)|제80회 30년대의 문화계(18)
제2회 공연때에는 제1회때에 나타난 결점과 미비한 점을 많이 고쳤다. 첫째로 출연자를 동경유학생으로만 한정했던 것을 바꾸어 서울에서 유능한 연기자를 많이 가입시켰다. 동경유학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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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727)-영화60년(제67화)(27)안종화씨/『해의 비곡』서 이월화와 공연해 데뷔/성격원만해 총독부서 영협회장 임명
내가 결혼하고 신혼생활을 시작할 즈음, 평소 영화연출을 꿈꾸던 안석채이 감독으로「데뷔」했다. 당시 외국영화수입회사인 기신양행을 경영하던 이기세가『심청전』을 제작했는데, 여기에 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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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박진
지금은 연극하는 사람을 배우라 하지 않고 연기자라고 한다. 라디오에서 목소리만 내는 것을 성우라고 하더니 요즘 TV가 안방극장으로 등장한 다음에는 탤런트라 한다. 탤런트란 영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