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컨틴전시 플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총선은 돌발 상황이 아니었는데, ‘비상 계획’이 없었나요? 

회사(언론사도 기업입니다) 생활을 30년 가까이 하다 보니 팀장, 부장 등의 관리자 직책을 맡기도 했습니다. 팀과 부서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좋은 ‘선수’ 영입하는 게 역할 중 하나였습니다. 비단 인사 시즌 때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욕심나는 다른 부서 후배에겐 일이 없어도 말을 걸어 보고, 넌지시 밥ㆍ술자리에 불러 보직 변경 의향이 있는지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조직 개편 등의 인사 요인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면 팀원, 부원 ‘라인업’을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윗분들에겐 틈날 때마다 ‘전력 강화’ 필요성을 어필하고요. 일개 중간 간부가 이런데 편집국장이나 편집인은 어떻겠습니까? 인사 계획이 있고, 그것을 계속 업데이트하겠죠. 

대기업들은 중대한 외부 환경 변화가 예상되면 ‘컨틴전시 플랜’을 짭니다. 전쟁 발발, 무역 분쟁 격화, 국내외의 정치적 격변 등이 요인이죠. 삼성ㆍ현대ㆍSK 등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경영 전략을 시나리오별로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으니 응당 해야죠. 

4ㆍ10 총선은 돌발 상황이 아닙니다. 오래전에 잡힌 일정입니다. 원론적으로 결과는 크게 세 갈래뿐이고요. 여당 승리, 야당 승리, 무승부. 판세가 여당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대통령실이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당이 총선에서 질 경우에 해야 할 일을 미리 생각해 놓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대국민 메시지 내용과 전달 방법, 인적 쇄신 범위, 당정 관계 재설정 등을 아울러서 말입니다. 

대통령 직무 수행의 핵심 중 하나는 ‘용인’입니다. 당장 필요한 사람만 찾는 게 아니라 다음번, 그 다음번도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 총리, 다음 비서실장에 대한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게 온당하죠. 이번처럼 총선에 따른 통치 환경의 급변이 예상되는 때는 더욱 그렇고요.

오늘이 총선 뒤 8일째입니다. 그동안 공개된 대통령의 일정은 16일의 국무회의 주재뿐이었습니다. 총선 결과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그 뒤에 수석비서관이 대통령 입장을 부연 설명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왕좌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