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브랜드와 떠나는 소풍, 비크닉입니다. 오늘은 패션 분야에서 오랜만에 들려온 반가운 소식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앤아더스토리즈와 한국 패션 브랜드이자 디자이너인 민주킴의 협업 소식인데요. 이를 통해 SPA브랜드가 어떻게 명품으로 거듭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INTRO: 드디어 그를 만나다

2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생히 기억납니다. 프린트가 가득 새겨진 원피스를 입고 두꺼운 검정 뿔테 안경을 쓴 그는 인터뷰와 사진 촬영이 끝날 때까지 연신 쑥스러워하며 땀을 흘렸습니다. 이런 관심이 “어색하다”면서요. 하지만 옷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눈은 반짝였고, 자신의 세계관을 이야기할 땐 확신에 차 있었죠. 그의 이름은 김민주. 패션 브랜드 민주킴을 전개하는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샤넬도, 조던도 아닌데…200명 줄 섰다

그랬던 김 디자이너가 올해 화사한 꽃 프린트가 가득한 화사한 원피스 차림으로 압구정동에 나타났습니다. 지난 3월 23일 민주킴과 앤아더스토리즈의 협업 컬렉션 코랩(co-lab)을 미디어에 발표하는 자리였죠. 반가웠습니다. 정원 컨셉으로 꾸며진 매장에, 꽃과 식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코랩 컬렉션 옷을 보고 있노라니 ‘봄이 왔구나’ 싶었어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번 컬렉션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민주킴의 컬렉션을 판매하기 시작하기도 전에 매장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 건물 뒤편까지 이어졌고, 오전 11시 매장문이 열린 뒤 1시간 40분만에 협업 컬렉션 제품은 단 한 개도 남김없이 다 팔려 나갔습니다. 이날 모인 사람들만 200명이 넘었다더군요. 온라인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어요. 같은 날 오전 9시 브랜드 공식사이트에서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모든 협업 제품에 ‘솔드아웃(품절)’ 표시가 떴습니다. 제품 판매를 시작한 지 2시간도 채 안 돼 한국에 있는 모든 제품이 팔렸다는 의미입니다.


사진=독자 제공


사실 최근 백화점 앞이나 스니커즈 매장 앞에선 이런 광경을 쉽게 보셨을 겁니다. 샤넬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을 올릴 때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조던·이지부스트 같은 시리즈를 발매할 때마다 매장 앞엔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어가는 오픈런은 물론이고, 전날부터 길에서 노숙하는 건 흔한 일이 됐죠.

하지만 SPA브랜드 매장 앞에선 쉽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대중이 언제든지 쉽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패션을 선보이는 SPA브랜드의 경우엔 ‘특별한’ 한정판이 나왔을 때만 보기 드물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바로 지난주에 이번에 그 ‘일’이 벌어진 겁니다. 대중적인 브랜드에 사람들이 몰린 이유는 한 가지. ‘민주킴’이라는 DNA가 더해져 SPA브랜드의 옷을 특별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민주킴이 대체 누군데?

김민주 디자이너는 2020년 넷플릭스가 만든 글로벌 패션 디자이너 오디션 프로그램 ‘넥스트 인 패션’의 우승자입니다. 대니얼 플래처, 엔젤 텐 등 런던·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명 디자이너들과 겨뤄 당당히 우승하면서 세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당시 상황을 그에게 들어보면 “모두가 대니얼이 우승할 거라고 예상했다”고 합니다. 대니얼 플래처는 이미 런던은 물론이고 유럽 전역에서 무서운 기세로 인기가 치솟고 있는 ‘네임드(named)’ 디자이너였으니까요. 하지만 오디션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민주킴의 우승! 몇 번이고 탈락 후보로 올랐던 그는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냈죠.


사진=넷플릭스

사실 패션업계에서 그는 넷플릭스에 나가기 전부터 유명했어요. 전에 보지못한 독창적인 옷은 2015년 브랜드를 론칭하자마자 주목받기 시작했죠. 많은 사람이 그를 '아티스트'라 불렀는데, 한 편의 동화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옷을 을지로 빈티지 카페 '커피한약방', 통의동 '보안여관' 같은 기상천외한(※지금은 유명해졌지만, 당시엔 그랬습니다) 장소와 방법으로 선보이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면 그럴만했습니다.


또 창의성과 완벽에 가까운 퀄리티에 '천재'라는 수식어도 붙었어요. 기존 구조를 해체한 전위적인 디자인 접근법과 순수 미술을 바탕으로 한 완성도 높은 그래픽을 선보였고요. 그의 이력은 이를 증명합니다. 세계 3대 패션학교로 꼽히는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H&M 디자인 어워드'에선 대상을, 'LVMH 영패션디자이너 부문'에선 준결선에 올랐어요. 2020년엔 '네타포르테 뱅가드 프로그램'에 선정되며 글로벌 패션 플랫폼의 막대한 지원도 받았습니다.


패스트 패션을 ‘명품’으로 만드는 방법

이번 민주킴과 앤아더스토리즈의 협업은 패스트 패션의 대표적인 '명품화 전략' 중 하나입니다.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대중이 쉽게 입을 수 있는 패션을 선보이는 SPA 브랜드가 명품 브랜드나 유명 디자이너를 통해 기존과는 다른, 색다르고 독창적인 제품을 선보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꼽히죠. 쉽게 말해 명품 브랜드의 DNA를 살짝 가져와 자신의 상품에 입히는 겁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인기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명성과 창의성을 덧입히니 좋고, 소비자 입장에선 저렴한 가격에 명품 브랜드의 ‘맛’을 볼 수 있어 좋죠. 이를 가장 잘하는 게 H&M입니다.


사진=H&M

H&M은 2004년부터 칼 라거펠트,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알렉산더 왕 등 이름을 듣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해왔는데요. 앤아더스토리즈는 H&M의 자매 브랜드로, H&M의 성공 사례를 이어받아 한 해에도 크고 작은 협업 컬렉션을 발표해오고 있습니다. 이번에 민주킴과 진행한 코랩 컬렉션은 올해 진행하는 협업 프로젝트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매장과 온라인몰에 상품을 출시했어요.

특히 이번 코랩은 앤아더스토리즈가 한국 디자이너와 진행한 두 번째 협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한데요. 코랩 파트너는 전 세계 디자이너 중에서 가장 인기 있고 주목할만한 사람을 고르는데, 지난해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레지나표’(표지영)에 이어 민주킴을 선택한 것이죠.


사진=앤아더스토리즈

그럼 여기서 잠깐. 김민주 디자이너가 명품이란 무엇인지 잠깐 들어볼까요. 그는 “내가 생각하는 명품이란 가격을 떠나 오래 간직하고, 오래 사랑할 수 있는 것. 그런 것은 어떤 것이든 명품이 될 수 있다”고 했어요. 이런 생각, ‘패스트 패션’이란 멍에를 벗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앤아더스토리즈가 환영할 수밖에 없었겠죠?


K-패션, 이제 때가 됐다

사실 저는 이번 민주킴 x 앤아더스토리즈의 협업 소식에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글로벌 브랜드의 협업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그의 인기와 위상을 보여주는 방증인데, 앤아더스토리즈가 2년 연속 한국 패션 브랜드를 그 해의 가장 큰 협업 컬렉션 파트너로 골랐으니 같은 한국인으로써 어깨가 으쓱해지더라고요.

여러분은 K-패션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어떤지 아시나요? 해외 패션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높은 점수를 주고,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한국 MZ세대의 높은 패션 감각을 인정하고 있죠. 지방시의 전 아티스틱 디렉터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2020년 봄 시즌 남성복 컬렉션을 만들 때 한국의 거리패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는 영국 왕자비 매건 마클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했던 디자이너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서울 방문에서 접했던 한국의 스트리트 패션을 “초현대식 댄디즘”이라며 감탄했어요. 올해 초엔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캐피털 세쿼이아캐피털이 약 1000억원을 한국 패션회사 웰던(권다미·정혜진 대표) 에 투자하기도 했고요.


민주킴의 메시지 “패션엔 다양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 민주킴은 여전히 생소한 브랜드입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 소비자에게 자기 세계가 확고한 민주킴의 옷은 어려운 것 같아요. 그의 명성과 넷플릭스에서 보여준 모습이 좋아 그의 옷 앞에 섰지만, ‘너무 화려하지 않나?’ ‘언제 입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김민주 디자이너는 “더 적극적으로 나서 한국 소비자에게 다가 가야겠다”고 결심했답니다. 넥스트 인 패션이 그 첫 번째 도전이었고, 올해는 앤아더스토리즈와의 협업으로 한 걸음 더 대중과 가까워졌어요.

“아쉬웠어요. 유명해지고 싶다기보다, 한국 시장에 아직은 부족한 ‘패션의 다양성’에 대해 전하고 싶었거든요. ‘이런 옷도 있다’ ‘이런 스타일을 좋아해도 된다’고요.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개성과 취향에 맞게 패션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까요.”


사진=앤아더스토리즈


그래서 지난해 여름 그는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앤아더스토리즈의 연락을 받고, 결정에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장 먼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통해, 넷플릭스 이후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떠올랐다고 해요. 게다가 앤아더스토리즈는 여성에 대해서 다양하게 바라보는 관점, 밝은 여성상, 에너제틱하고 격식 없는 이미지가 민주킴의 색깔과 잘 어울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김민주 디자이너는 자신의 옷이 걸리는 매장에 자주 나타나요. 지난 3월 24일 앤아더스토리즈의 매장을 아침부터 직접 지키며, 그의 옷을 사려고 찾아온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눴어요. “무대 뒤에 숨어있는 디자이너가 아닌, 거리에 나서 민주킴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소통하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실천하고 있는 거예요. 이에 화답하듯 그가 옷을 선보이는 자리엔 늘 그의 팬들이 몰려듭니다.

“몇 시간씩 할애해 제 옷을 보려고 오신 분들을 직접 만나 고맙다고, 잘 지내냐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민주킴 옷을 좋아하는 사람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저는 옷을 통해 사람들이 에너지를 얻고, 밝아지고, 행복함을 느꼈으면 좋겠거든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최근 해외 럭셔리 브랜드 소비가 폭풍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죠. 하지만 ‘명품 플렉스’ 빠져 다른 좋은 브랜드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아쉽습니다. 고개를 들어 K-패션을 만들어가는 한국 패션 브랜드들을 봐주면 좋겠습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내 취향에 맞는 진짜 ‘내 옷’을 발견할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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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세 김형석 교수는 마음의 건강 비결에 대해 한마디로 “공부"라고 했는데요. 무엇이든지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늙어버린다고. ‘공부’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독서와 같은 취미활동을 말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배우고 즐기면 그만입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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