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하고,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 조용히 공부? 고정관념 깼다…순식간에 5만명 몰려온 이 곳 [비크닉]

    조용히 공부? 고정관념 깼다…순식간에 5만명 몰려온 이 곳 [비크닉]

      ■ b.플레이스 「 "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를 설명하고, 태도와 세계관을 녹여내니까요. 온라인 홍수 시대에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은 좋은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하죠.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  “도서관의 경쟁자는 카페”   요즘 도서관 사서들 사이에서 나오는 우스갯소리다. 책 읽고, 공부하고, 모임하는 과거 도서관의 기능이 점차 카페로 옮겨가면서다. 규격화된 공간에서 기침 소리 한번 내기 힘든 도서관이 부담스러운 이들의 대안이다. 하지만 최근엔 변신을 시도하는 도서관이 적지 않다. 갤러리 같은 세련된 인테리어를 자랑하거나, 주민들이 북적대는 만남의 광장이 되거나, 일부러 찾아올만큼 지역의 명소가 되면서 도서관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12일 ‘도서관의 날’을 맞아 새로운 실험을 진행 중인 도서관 두 곳을 찾았다. 도서관의 날은 도서관에 대한 국민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처음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  각종 문화 프로그램 갖춘 동네 사랑방   웅장한 원형 공간 속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바닥 가득 내린다. 인공조명 없이도 충분히 밝은 분위기에 실내에 있어도 마치 야외에 있는 듯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지난달 26일 찾은 강원도 ‘인제 기적의도서관’ 의 모습이다. 문·칸막이 같은 장애물이 없어 어디에 서 있든 공간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지난해 6월 강원도 인제군에 문을 연 '인제 기적의도서관'. 사진 신경섭 작가 개방감을 극대화한 도서관답게 책만 구비해 두지 않았다. 마치 갤러리처럼 건물 곳곳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도서관 한쪽에 마련된 '미디어아트' 섹션에선 인제군의 역사와 자연을 담은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설악산·자작나무 숲 등 인제군을 대표하는 관광 자원을 주제로 활용했다. 또 4개 벽면을 가득 채운 미디어아트에다 서재 한쪽에는 ‘XR 뮤지엄(확장현실 박물관)’ 코너가 마련돼 있다. 조이스틱을 움직이면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 등을 실제 미술관을 거니는듯한 느낌으로 관람할 수 있다. 인제 기적의도서관 한쪽에 마련된 '미디어아트' 공간. 사진 서혜빈 기자 인제 기적의도서관은 지난해 6월, 지역 문화 거점 공간이자 주민 커뮤니티 시설을 지향하며 문을 열었다. 도서관은 조용히 공부하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곳으로 인식되기를 바란다는 취지가 담겼다. 개관 이후 반 년간 인문학 강연, 음악회, 마술극 등 문화 프로그램만 50여 회 넘게 진행한 이유다. 심민석 도서관장은 “처음 방문이 어렵지 도서관에 한 번만 와봐도 이 공간에 익숙해지고 또 오고 싶어질만큼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동네 사랑방’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개관 후 반년 동안 이곳을 방문한 이용객은 5만명이 넘었다. 인제군 인구 3만2000명을 훨씬 넘어서는 숫자다. 일주일에 4~5번 도서관에 방문한다는 한미림(34)씨는 “이곳에 오면 다양한 프로그램도 접할 수 있는 데다 인제군 지역 이야기와 동네 사람들 소식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  학교∙학원만 돌던 청소년들의 제3지대   성남시 중원구엔 청소년만을 위한 도서관도 있다. 9개 초∙중∙고등학교가 모인 지역 중심에 있는 ‘라이브러리 티티섬’은 2021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많은 청소년이 걸어서 쉽게 올 수 있는 곳에 터를 잡았다. 겉으로 보기엔 도무지 도서관처럼 보이지 않는 회색빛 대형 건물의 9층에 올라가면 4개 층으로 이루어진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 라이브러리 티티섬 10층에 마련된 클라이밍 공간과 악기 연주 공간. 사진 라이브러리 티티섬 지난 3일 찾아간 티티섬은 도서관이라고 부르기 어색할 만큼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쪽에선 기타를 치고, 다른 한쪽에선 재봉틀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든다. 도서관인데 요리하는 부엌, 식물을 키우는 실내정원을 비롯해 악기 연주 공간과 클라이밍 공간도 있다. 도서관 곳곳이 마치 ‘섬’처럼 따로따로 저마다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티티섬은 비영리단체 도서문화재단 씨앗이 운영하는 ‘공공’ 도서관으로,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재단은 ‘도서관을 떠난 청소년들은 어디로 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티티섬 설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공부나 입시에 몰려 다양한 경험을 접할 기회가 없는 청소년을 위해 ‘제3의 장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청소년 일과 시간에 맞춰 도서관을 여는 시간도 오후 1시부터 9시까지로 조정했다. 라이브러리 티티섬 9층에 마련된 실내 정원에서 청소년들이 식물에 물을 주고 있다. 사진 라이브러리 티티섬 조은정 라이브러리 티티섬 관장은 “지역에 청소년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며 “도서관조차 조용히 해야 한다거나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 등 특정 자격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공간이라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티티섬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티티섬 프로젝트 결과는 성공적이다. 학원이나 입시 준비로 바쁜 청소년들이 도서관에 안 올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매일 평균 청소년 130여명이 방문한다. 청소년들은 방과 후 또는 학원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자기만의 섬을 찾는다. 이곳에 방문한 청소년들은 평균 2시간 정도 머물며 개인 시간을 보내거나 동네 친구들과 교류한다.   자기만의 속도를 찾는 것도 이곳의 규칙이다. 도서 대출보다 매일 티티섬에 들러 조금씩 책을 읽어나가는 청소년이 많다. 만들던 공예품을 잠깐 보관한 뒤 다음 날 다시 와서 작품을 완성해 간다. 이곳은 사랑방 역할도 한다. 청소년 이용자들은 티티섬 중앙 로비에 앉아 오늘은 어떤 친구들이 올지 기다린다. 이 과정에서 나이 구분 없이 모두 친구가 된다. 그래서인지 티티섬 이용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내일 또 보자”라는 인사다. 올해 1월 라이브러리 티티섬 라운지에서 열린 새해파티. 사진 라이브러리 티티섬  ━  “미래 도서관은 사람·정보·기술이 모이는 곳”   공간은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할 때 가장 잘 쓰일 수 있다. 인제 기적의도서관과 라이브러리 티티섬의 공통점은 설립 단계부터 예비 이용자들이 기획 단계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기적의 도서관은 10명의 청소년 준비단과 함께, 티티섬은 23명의 지역 청소년과 함께 수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기획단은 각자 원하는 도서관의 쓰임새에 맞게 공간 구성 아이디어를 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도서관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 조 관장은 “도서관은 책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공간이 돼야 한다”며 “편하게 올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균등하게 정보를 얻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호 상명대 문헌정보학 교수는 “전통적인 도서관은 더는 의미가 없다”며 “도서관은 지역에서 사람과 정보와 기술이 모이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막내가 상사에게 "10억원 달라"…'다우니의 어머니' 탄생 썰 [비크닉] 버리긴 왜 버려? 못난이 푸드의 반전…강남 상권마저 흔든다 [비크닉] 다이어트 빠진 이장우도 '꿀꺽'… 탕후루 찾던 2030, 이젠 '까' 주스 [비크닉]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2024.04.12 06:00

  • 이젠 '타먹는 민족'이다…'배민' 김봉진, 성수동에 카페낸 이유 [비크닉]

    이젠 '타먹는 민족'이다…'배민' 김봉진, 성수동에 카페낸 이유 [비크닉]

      ■ b.플레이스 「  “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를 설명하고, 태도와 세계관을 녹여내니까요. 온라인 홍수 시대에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은 좋은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하죠.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  길고 얇은 노란 봉지 속 커피∙크림∙설탕의 황금비율, 뜨거운 물을 붓고 대충 휙휙 저으면 완성되는 한 잔의 차. 집과 회사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믹스커피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원두커피가 인기라지만 가끔 달달한 믹스커피가 생각나는 날이 있어요. 조금 지치고 당 충전을 하고 싶을 때요. 구멍 송송 뚫린 네모난 비스킷을 푹 담가 먹는 재미도 있죠.   그런데 믹스커피가 한국의 발명품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76년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로 만들었어요.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덕분에 한국인의 삶 속에 빠르게 파고들 수 있었죠. 지금은 원두커피에 밀려 예전만큼 존재감을 드러내진 못하지만, 믹스커피는 여전히 한 해 60억개씩(2021년 기준) 팔리는 국민 기호식품이에요.   오늘 비크닉에서는 믹스커피를 재해석한 브랜드 ‘뉴믹스커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뉴믹스커피는 ‘배달의민족’을 만든 김봉진 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새로 창업한 ‘그란데클립’에서 만들었어요. '클립처럼 사소한 것에서 가치를 찾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은 사명처럼, 매일 마시는 커피를 첫 무기로 내세웠죠. 지난 10일 현장을 찾아, 기획을 총괄한 김규림 그란데클립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만나봤어요. 뉴믹스커피 스틱. 사진 뉴믹스커피    ━  광활한 우주가 펼쳐지는 3평짜리 공간     처음엔 믹스커피를 판다고 해서 옛날 다방 분위기를 재현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낡은 간판에 쓰인 촌스러운 글씨체부터 낡고 빛바랜 색깔의 소파, 7080 노래로 가득 찬 공간을 상상했죠. 뉴믹스카페 개업 안내 초대장에도 옛날 커피 자판기를 재현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상상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언뜻 보면 세련된 차 선물 가게 같은데, 들어가 보면 마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듯해요. 바닥에 깔린 블랙홀 무늬 미디어월과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 때문에 공간이 마치 계속 확장되는 것 같았죠. 고작 3평짜리 공간인데 광활한 우주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노래는 또 어떻고요. 밖에서 볼 땐 고요한 줄 알았던 공간에 처음 발 딛는 순간 강렬한 DJ 믹스음악이 귀를 두드려요. 전면이 거울로 이루어진 '뉴믹스커피' 내부 벽면. 서혜빈 기자   카페에 입장하자마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별거 아닌 믹스커피 한 잔 마시러 들어왔다가 공간에 완전히 압도될 수 있도록 이요.   이렇게 강렬하고 역동적인 분위기로 공간을 꾸민 이유가 있대요. 공사장에서 열심히 일한 뒤 한 잔, 신나게 서핑한 뒤 한 잔. 믹스커피는 열정적인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빠르게 당 충전을 하고 싶을 때 찾는 음료예요. ‘100mL짜리 에너지 드링크’인 셈이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명상하듯 마셔야 하는드립 커피는 완전히 달라요. 믹스커피를 마실 때 사람들이 느끼는 역동성을 공간에 구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블랙홀 무늬 미디어 월로 이루어진 뉴믹스커피 내부. 사진 뉴믹스커피    ━  ‘한국다움’을 재정의하다…뉴코리안 스타일     뉴믹스커피가 믹스커피를 주요 메뉴로 선택한 이유가 있어요. 가장 ‘한국적인’ 음료라서죠. 의문이 들죠? 한국적인 음료라고 하면 식혜·미숫가루·수정과가 먼저 떠오르니까요. 김 디렉터는 기획 단계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대요. “과연 우리가 매일 마시는 음료가 식혜일까?” 곧바로 정답을 찾았죠. 바로 커피요. 요즘 한국인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음료니까요. 커피 세계 소비량 2위를 기록할 정도로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대단하죠.   한국인은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게 아니라 타 마셨답니다   김 디렉터는 다양한 커피 중에서도 믹스커피를 고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어요. 직관적이고 단순한 맛. 스페셜티 커피처럼 어렵게 공부하지 않아도 되죠. 믹스커피야 말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즐기는 대중의 맛이라고 생각했대요. 대신 ‘뉴믹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적인 맛을 더해 신메뉴를 개발했어요. 익숙한 듯 새로운 경험을 주기 위해서죠. 볶은쌀∙군밤∙녹차 맛 커피와 슬러시 커피가 탄생한 배경입니다. 군밤과 볶은쌀맛 믹스커피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간식. 서혜빈 기자   뉴믹스커피가 이렇게 ‘한국다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외진출이 꿈이거든요. 우리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이 외국인의 마음을 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거죠. 마치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베트남 다람쥐똥 커피처럼 대표적인 한국 커피는 믹스커피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대요.   서울 성수동에 믹스커피 전문점을 연 '뉴믹스커피'. 서혜빈 기자 1호점을 성수동에 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외여행 가면 그 나라의 유적지를 방문하면서도 젊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에 가잖아요. 소위 ‘힙한’ 장소에서 요즘 그 나라의 문화를 흠뻑 느낄 수 있으니까요.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죠. 경복궁·인사동 같은 전통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홍대·성수동에서도 한국을 느낀다고 해요. 실제로 BC카드가 지난 2월 발표한 ‘외국인 관광객 소비 트렌드’에 따르면, 2019년 대비 지난해 성수동의 외국인 매출 건수가 973% 증가했다고 합니다.   한국적인 것과 한국다운 것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외국인들은 요즘 한국을 세련된 이미지로 봐요. 성수동이야말로 뉴코리안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죠.    ━  사소함의 위대함, 배민 김봉진의 실험   김봉진 대표는 지난해 7월 우아한형제들을 그만두면서 알찬 중소기업을 여러 개 만들겠다고 발표했어요. 그란데클립은 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인 거죠. 회사는 6개 팀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각 팀은 사람들의 일상을 바꿀 수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실험하고, 구현하죠. 마치 창업팀처럼 일한다고 해서 팀을 ‘창업 캠프’라고 비유한대요. 뉴믹스커피는 6개 팀 중 세상에 첫 번째 도전장을 팀입니다. 김 대표는 뉴믹스커피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재밌다. 이걸로 가자”라고 호응했대요. 공간 벽면을 거울로 가득 채운 것도 김 대표의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김 디렉터는 회사와 브랜드의 연결고리를 이렇게 설명해요. 김봉진 전 우아한형제들 대표. 사진 중앙일보   작은 것을 포착해서 크게 키우는 과정. 우리 주변에 항상 있기 때문에 너무나 익숙해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일. 본연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움을 줄 수 있는 힘. 뉴믹스커피와 그란데클립 모토가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뉴믹스커피' 팀이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 사진 김규림 디렉터 블로그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즐기는 믹스커피 한 잔   김 디렉터에게 브랜드의 미래를 물었어요. 재미난 대답이 돌아왔죠.   뉴욕 월가 증권맨들이 증시 마감 후 마시는 음료가 되면 좋겠어요. 업무를 하얗게 불태운 뒤 찾는 에너지 드링크처럼 뉴믹스커피가 자연스럽게 생각나면 좋겠어요.   세계를 향한 도전은 올해 말 시작될 거예요. 첫 진출 국가로 싱가포르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해요. 과연 뉴믹스커피는 외국인들이 찾는 한국 대표 커피가 될 수 있을까요.   관련기사 손석구의 다 낡은 배낭, 입소문 탔다…日여행 특산품 된 이 가방 [비크닉] 안 쓰는 신용카드를 네임택으로…기업 쓰레기의 변신 [비크닉] "골칫거리 팔아 13만원 벌었어요"…짠테크족 홀린 '기프테크' [비크닉]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2024.03.13 08:00

  • 가구 없는 가구 쇼룸, 편의점 품은 가전 매장...경험 공간 설계의 비밀 [비크닉]

    가구 없는 가구 쇼룸, 편의점 품은 가전 매장...경험 공간 설계의 비밀 [비크닉]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문을 연 ‘데스커 라운지.’ 책상을 주요 제품으로 하는 가구 브랜드인 데스커가 낸 공간이다. 가구 쇼룸인가 싶지만, 들어가 보니 조용히 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공유 라운지로 하루 3만6000원의 비용을 내고 자리를 점유해 일할 수 있다. 330㎡(100평) 규모에 마련된 좌석은 36석. 널찍한 테이블과 높은 층고, 은은한 배경 음악 등 카페만큼 개방성이 있으면서도 번잡하지 않아 인근 학생 및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매주 월요일에 일주일 치 좌석이 열리는데, 오픈한 뒤 1시간이면 모두 팔릴 정도다.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문을 연 데스커라운지. 공유 라운지로 하루 동안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사진 데스커    ━  가구 없는 가구 쇼룸, 왜   데스커가 갑자기 공유 오피스 사업에라도 뛰어든 건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이곳은 엄연히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공간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가구 브랜드 공간이면서도 내부 가구가 모두 데스커로 구성되지 않았다는 것. 일부 모션 데스크를 제외하면, 대부분 제작 가구다. 내부에선 그 흔한 브랜드 로고조차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가구 없는 쇼룸인 셈이다.   브랜드 홍보 공간이면서도 제품을 부각하기보다 공간이 주는 메시지에 주력했다. 사진 데스커   대신 공간 전체의 주제인 ‘일’에 대한 콘텐트로 꽉 채웠다. 입구에서부터 설문지 작성을 하는데, 가구 취향이 아니라 일에 관해 묻는다. ‘오늘 나의 업무에 필요한 것’ ‘나의 일의 여정’ 등의 질문에 답을 하고, 답에 맞춰 구성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물들은 주로 일에 관련된 유명인들의 일화나 멘트, 대담 등으로 구성됐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막연하게 일이 아니라, 일의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연결’을 테마로 전시를 구성했다는 사실이다. 한쪽에는 스티브 잡스와 팀 쿡의 만남, 이대호 선수의 반에 전학 간 추신수 선수 등 우연한 연결이 바탕인 된 성공 스토리가, 다른 한쪽에는 특정 업계의 선후배가 주고받는 편지가 전시되어 있는 식이다. 일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 또 이에 대해 자신의 경험으로 써 내려 간 답변은 방문객들에게 일과 성장에 대해 환기하게 한다. 한 업계의 후배와 선배가 주고받은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일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돋보인다. 유지연 기자   그렇다면 책상 브랜드가 책상 없는 쇼룸을 만든 의도가 뭘까. 지난 몇 년간 물건의 진열과 판매가 이뤄지던 소매 공간이 경험과 체험 공간으로 변화하는 양상은 유통업계의 화두였다. 다만 최근에는 데스커 라운지처럼 브랜드 경험과 체험을 더 밀도 높게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 중이다. 단순히 제품을 전시하고 잠시 써 보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우선 오래 머무르게 하고 좋은 경험을 주도록 공유 오피스까지 낸 셈이다.     일을 통해 성장하고 싶어하는 2030이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곳곳에 포진한다. 사진 데스커   얼마 전 화제의 중심에선 신세계프라퍼티의 ‘스타필드 수원’은 아예 전체 콘셉트를 ‘스테이(stay·머무는) 필드’로 삼았다. 유명 브랜드 매장 사이사이 오랫동안 시간 보낼 수 있는 체류형 공간을 곳곳에 배치하면서다. 고급 피트니스 클럽 ‘콩코드’ 외에도, 서울 성수동의 유명 LP 카페 ‘바이닐 성수’의 분점, 뷰티 브랜드 러쉬의 ‘러쉬 스파’,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펫파크’ 등을 입점시켰다. 먹고, 체험하고, 되도록 오래 머물라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경기도 수원에 문을 연 스타필드 수원은 오래 머무르게 하는 '스테이 필드'를 표방한다. 사진 중앙포토    ━  머물고 경험하며 생활에 연결해야   대형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가구·가전 매장들의 최근 고민은 손님 모으기와 체류 시간이다. 온라인에서 제품 스펙은 물론 후기까지 상세하게 검색할 수 있는 지금, 매장에서 줄 수 있는 정보량에는 한계가 있다. 손님을 끌기 위한 다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전 매장인 삼성스토어 부천중동점은 1층에 생활밀착형 프리미엄 편의점 '바스켓'을 열었다. 사진 바스켓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삼성스토어 부천중동점은 지난해 11월 1층에 생활밀착형 편의점 ‘바스켓’을 입점시켰다. 과자·음료·커피·식품 등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잠시 머물며 커피·라면·간단한 즉석식품을 조리해 먹을 수 있다. 셀프 간편식 조리대에는 삼성전자 제품을 비치해 자연스럽게 써 보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동네 슈퍼처럼 자주 들르고, 온 김에 가전 매장도 둘러보라는 복안이다.     가구 편집숍은 하루 동안 머물면서 가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숙박 시설을 열었다. 사진 무브먼트 랩   주로 국내 디자이너 가구를 소개하는 리빙 편집숍 ‘무브먼트 랩’은 최근 강원도 양양과 경기도 이천 등에 잇따라 숙박 시설 ‘무브먼트 스테이’를 열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한 번의 경험이 아닌, 최소 하루를 묵으며 가구나 리빙 제품을 온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다. 무브먼트 랩을 운영하는 고지훈 파인우드리빙 대표는 실제로 이곳을 숙소가 아닌 매장으로 지칭한다. 고 대표는 “단순히 하드웨어로서 가구를 써보는 공간 이상으로 해당 제품이 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큰 가구부터 각종 소품, 향, 위스키 등 생활로서 브랜드를 경험해 볼 수 있도록 밀도 높게 설계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길에서 주웠다" 덕후들 난리…당근 뜨면 '순삭' K빈티지 뭐길래 [비크닉] "우리집에 놀러와" 평범한 2층 가정집의 반전, 이게 매장야? [비크닉] 랍스터 롤부터 츄러스까지, 서울 몰려드는 외식 브랜드들 [비크닉]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4.02.15 17:45

  • "여기서 운동할래요" 개점 전 1000명 몰렸다…호텔 뺨친 헬스장 보니 [비크닉]

    "여기서 운동할래요" 개점 전 1000명 몰렸다…호텔 뺨친 헬스장 보니 [비크닉]

    신세계건설이 스타필드 수원에 선보인 국내 최초 올인클루시브 스포츠클럽인 '콩코드 피트니스'. 신세계건설 팬데믹 이후 건강과 체력관리를 위해 지갑을 여는 ‘덤벨 이코노미(Dumbbell Economy)’ 현상이 지속되면서 헬스장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더 쾌적하고 편리하게 운동하기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피트니스 센터가 등장한 것. 최고급 시설에 IT기술을 도입한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수영, 테니스, 골프 등 다양한 운동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컴플렉스 형태가 특징이다. 이같은 프리미엄 헬스장의 등장은 소비자의 체류 시간과 맞춤 서비스가 화두인 라이프스타일 업계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  호텔급 올인클루시브 헬스장의 등장     스타필드 수원 7층에 위치한 콩코드 피트니스 입구. 박이담 기자 올 초 스타필드 수원에 국내 최초 올인클루시브(All inclusive) 스포츠클럽 ‘콩코드 피트니스’가 문을 열었다. 규모만 해도 4959㎡(1500평) 에다 호텔 같은 쾌적한 인테리어와 전문 기구, 첨단기술을 접목하며 기존 피트니스의 형태를 대폭 업그레이드했다.    지난 1일 이곳을 찾았을 때 입구부터가 첫인상부터 여느 헬스장과 달랐다. 로비가 마치 공항 라운지처럼 푹신한 소파와 테이블들로 꾸며져 있다. 로비 옆 복도를 지나면 수영장, 사우나, 피트니스장, 골프장 등으로 연결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수영장이다. 층고가 높은 데다 통창으로 마감해 시선이 탁 트인다. 수영 레인 주변으로 선베드와 타월 등 호텔에서나 볼 법한 편의 장비까지 갖췄고, 전망이 좋은 창가엔 자쿠지를 배치했다.  콩코드 피트니스 수영장에 있는 자쿠지. 통창 넘어 도심 경치가 펼쳐져 있다. 박이담 기자   수영장과 바로 이어진 사우나는 프라이빗 서비스에 초점을 뒀다. 탈의실 락커 사이사이 의류매장 피팅룸처럼 독립된 공간을 뒀고, 샤워시설도 일부는 큰 벽으로 칸막이를 두어 타인의 시선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서 만난 박정호(42) 씨는 “회원으로 등록하고 주에 5일은 이곳에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면서 “일반 헬스장과 달리 건습식 사우나, 냉·온탕 등 시설이 좋아서 운동 후 40분은 사우나를 즐긴다”고 했다.   피트니스센터의 경우 최고급 브랜드의 운동 기구를 여유 있게 배치하며 마치 명품 매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테니스 전문 브랜드인 ‘헤드(HEAD)’와 함께 만든 코트가 마련돼, 레슨뿐 아니라 혼자서도 자유로운 연습이 가능한 스마트 볼 기계를 즐길 수 있다. 콩코드 피트니스에 있는 테니스 코트. 박이담 기자   운동의 재미를 더하는 첨단기술을 도입한 것도 이곳만의 특징이다. 4곳의 GX 섹션 중 한곳을 미디어GX룸으로 만들었다. 메타버스 기술을 적용, 스피닝자전거를 타면서 가상도로를 달리는 듯한 체험을 하는 식이다. 피트니스 센터 아래층은 신세계건설이 지난해 내놓은 프리미엄 골프 연습장인 ‘TGX’로, 연습 타석부터 스크린골프, 어프로치 존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콩코드 피트니스와 연결된 프리미엄 골프 연습장 TGX의 어프로치 존. 박이담 기자    ━  AI와 헬스장의 만남   국내 운동기구 전문 기업인 ‘디랙스(DRAX)’가 만든 피트니스 센터 ‘하이랙스(HIRAX)’는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간이다. 호텔처럼 고급스러운 공간 구성은 기본, 여기에 자체 개발한 AI 트레이너 ‘랙스(RAX)’ 시스템을 갖췄다. 10여년간 쌓은 운동과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체형, 운동 목적, 수행 능력을 AI가 분석해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국내 운동기구 전문 기업인 ‘디랙스(DRAX)’가 만든 피트니스 센터 ‘하이랙스(HIRAX)’. 하이랙스 홈페이지   프로그램과 함께 자체 개발한 웨어러블 밴드를 끼면 데이터가 추출되는 식이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 키오스크에서 AI가 구성한 운동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프로그램 순서에 따라 운동기구를 찾아가 밴드를 접촉하면 운동 방법을 알려준다. 운동 횟수 등 데이터도 자동으로 입력된다.   AI를 이용하면 개인 데이터만이 아닌 피트니스의 편의성도 해결한다. 다른 사람이 운동기구를 사용하고 있어 대기해야 할 필요가 없다. AI가 현재 다른 사람이 사용 중인 운동기구를 파악한 뒤 실시간으로 운동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 자체 디지털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만들어 처음 방문한 사람도 회원으로 등록하고, 회원권 결제, 운동복 수령, 보관함 배정 등 전 과정을 직원 안내 없이 할 수 있다.      ━  해외선 성공 모델…국내서도 통할까   미국 프리미엄 피트니스 센터 브랜드인 이퀴녹스(Equinox). 이퀴녹스 인스타그램 이런 프리미엄 피트니스 모델은 이미 해외에선 성공적이다. 미국 프리미엄 피트니스 센터 ‘이퀴녹스(Equinox)’가 대표적인 사례. 이퀴녹스는 1993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 가입비만 750달러(99만원), 한 달 요금은 160~500달러(21만~66만원)나 되지만 최고급 시설과 개인별 맞춤형 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차별화에 성공했다.    현재 뉴욕에서만 40개 센터에 35만명의 회원을 모집했고, 최근엔 일상과 운동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센터 내에 마사지 바는 물론 습식 사우나, 간단한 업무를 볼 수 있는 오피스 공간, 어린 자녀를 맡길 수 있는 키즈클럽까지 마련하며 라이프 스타일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중장년층뿐 아니라 젊은 세대까지 '건강'이 중요한 관심사가 되면서 국내에서도 이같은 순항을 기대하고 있다. 콩코드는 개점 전 이미 1000여 명 회원을 사전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신세계건설 레저부문 이승민 팀장은 “맨몸, 맨손으로 와도 모든 운동을 즐길 수 있는 호텔급 스포츠센터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도록 제공해 건강한 운동문화를 선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랙스의 경우 현재 4개 점 외에도 향후 수도권 핵심 업무 지역을 중심으로 10곳을 추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일본 도쿄 등에도 신규 센터를 개장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박이담 기자 park.idam@joongang.co.kr

    2024.02.08 05:00

  • "우리집에 놀러와" 평범한 2층 가정집의 반전, 이게 매장야? [비크닉]

    "우리집에 놀러와" 평범한 2층 가정집의 반전, 이게 매장야? [비크닉]

    지난해 11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택가에 문을 연 프랑스 패션 브랜드 ‘르메르’의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는 언뜻 매장이라기보다 집에 가깝다. 간살 디자인의 단정한 나무 대문 옆에 작게 쓰인 브랜드 이름은 마치 문패 같고, 계단을 올라 현관을 향할 때 보이는 작은 정원과 연못, 마당의 감나무는 여느 한국 주택의 모습 그 자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택가에 문을 연 르메르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 프랑스 파리 플래그십에 이은 두 번째 플래그십 매장이다. 사진 삼성물산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옷과 가방, 신발이 진열되어 있다는 점 외에는 구조나 분위기가 가정집과 비슷하다. 우선 보통 의류 매장에서는 시선을 빼앗길 수 있어 금기시하는 너른 창이 곳곳에 나 있어 자연광이 충분히 들어온다. 벽과 천장을 감싼 나무 몰딩과 한지로 된 벽, 누빔 천으로 만든 커튼은 영락없는 한국의 2층 양옥집이다.     1970년대 주택을 개조해 만든 르메르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 전경. 사진 삼성물산   지난해 12월 같은 한남동에 문을 연 패션 브랜드 ‘낫띵리튼’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가정집을 개조한 2층 규모, 약 165㎡(50평) 남짓의 공간이다. 이곳 역시 매장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의류 매장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계산대는 없고, 대신 예쁜 세면대와 욕조가 놓인 욕실이 커다랗게 자리한다. 의류 매장이면서도 옷과 가방은 마치 집처럼 옷장 등 일부 공간에 소량 진열된 것이 핵심. 대신 공간 곳곳에 편안한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있다. 상업 공간이면서도 인공조명은 낮추고, 햇살로 공간을 밝히는 것도 인상적이다.     국내 여성복 브랜드 '낫띵리튼'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쇼룸 전경. 의류 매장이면서도 의류는 2층 옷장 위주로 최소한만 진열해뒀다. 사진 낫띵리튼    ━  위압감 주는 매장은 가라, ‘편안함’이 핵심     “너희가 생각하는 주택은 어떤 모습이야?” 르메르의 한남동 쇼룸을 준비하기 위해 직접 한남동 일대를 돌며 공간을 물색했다는 크리스토퍼 르메르 아티스틱 디렉터가 르메르 한국 팀에게 했던 최초의 질문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공간 곳곳에 베인 이유다.   르메르 한남 스토어는 주택과 부티크(매장)의 경계를 허문 공간이다. 위엄 있고 차가운, 그래서 범접하기 힘든 고가 브랜드 매장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들어와 둘러보고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마당과 내부 매장 곳곳에 놓인 의자는 쇼핑하는 틈틈이 편안히 앉아 시간을 보내기 적당하다. 이곳의 공간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삼성물산 스토어 아이덴티티 그룹의 이정현 프로는 “르메르라는 브랜드를 완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집처럼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일상에 스며드는 옷을 만드는 르메르의 철학과 연결된 자연스러운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일상에 스며드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르메르는 스토어 공간 곳곳에 의자를 두고 있다. 사진 삼성물산    ━  브랜드 철학 선명하게 보여준다   오프라인 쇼핑 공간의 문법이 달라지고 있다. 많은 물건을 가져다 놓고, 우선 많이 노출하는 전략보다 브랜드를 손으로 만지고 느끼며, 경험할 수 있도록 브랜드 세계관을 응축시켜 놓은 공간을 지향하는 추세다. 말 그대로 매장이 아니라 ‘브랜드의 집’인 셈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인근에 문을 연 패션 브랜드 ‘노아’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아예 ‘시티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노아는 지난 2015년 시작된 뉴욕 기반의 하이엔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다. 무신사 트레이딩과 정식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미국·일본에 이은 세계 세 번째 진출국으로 한국을 낙점, 서울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였다.     서울 신사동에 문을 연 노아 시티하우스 전경. 노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러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사진 무신사   약 330㎡(100평) 2층 규모의 노아 시티하우스는 미국 대도시 인근 한적한 교외의 저택을 연상시킨다. 파라솔과 의자가 놓인 정원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주방을 연상시키는 카페가, 오른쪽에는 의류가 놓인 응접실이 나타난다. 계산대 대신 큰 책상이 놓여있어 구매한 물건을 앉아서 계산할 수 있는 것도 노아 시티하우스만의 독특한 풍경. 나무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노아의 의류와 액세서리 제품 사이사이로 빈티지 안경, 시계, 담요, 아트북 등 소품이 풍성하게 구성되어 있다. 천장까지 이어지는 개방감 넘치는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서울 시티하우스에서만 판매하는 서프보드는 브랜드 특유의 여유로운 감성을 반영한다.     미국 빈티지 가구와 소품, 의류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노아 시티하우스 내부. 계산대 대신 책상을 뒀다. 사진 무신사   매장에 흐르는 음악 하나까지도 노아의 색을 나타낼 수 있도록 했다는 무신사 트레이딩 관계자는 “단순히 옷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의 문화를 투영한 공간”이라며 “노아가 중요시하는 지역에 녹아드는 커뮤니티의 구심점이 되는 곳이자, 노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러 호흡하고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  패션에서 라이프 스타일로 확장   이런 집 형태의 매장들은 또한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의 확장을 위한 전략적 공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낫띵리튼의 한남 쇼룸에서는 룸 슈즈와 배스가운, 수건 등 패브릭 상품, 우산과 파우치 등 생활 소품을 판매하고 있다. 모두 이곳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상품들이다.     의류 진열 공간 보다 응접실과 거실, 욕실 등에 더 많은 공간을 할애한 낫띵리튼. 이곳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배스 가운과 룸 슈즈 등 라이프 스타일 제품도 만나볼 수 있다. 유지연 기자   쇼룸에 놓인 가구와 조명 등을 몇 년에 걸쳐 직접 수집했다는 이영주 낫띵리튼 대표는 “소품이나 홈 퍼니싱 제품, 모아왔던 클래식 가구도 추후 판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집 같은 쇼룸을 통해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서의 확장 가능성도 모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노아에도 서울 시티하우스에서만 판매하는 유리잔과 머그잔 등 라이프 스타일 상품이 있다. 커피와 주스 등의 음료를 내는 노아 카페에서 활용하는 기물들로, 이 상품을 구매하러 오는 팬들도 많다고 한다.     노아 시티하우스 1층에 자리한 노아 카페. 이곳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유리잔과 커피잔 등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 무신사   목적형 구매가 아니라 발견형(탐색형) 구매로 패션 소비 행태가 변화하고 있는 것도 브랜드 공간 구성이 변화하는 이유다. 옷이 필요해서 구매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요즘, 구매 욕구를 자극하고 설득하는 데 매력적인 브랜드의 세계관은 필수요소가 됐다. 천편일률적인 백화점 매장 같은 사각의 공간이 아니라, 여유로운 공간에서 마음껏 브랜드의 세계를 펼쳐내는 곳. 요즘 브랜드가 집을 짓는 이유다.    관련기사 공공미술 프로젝트 ‘DL 스트리트 뮤지엄’ 첫 번째 시즌 화제 [비크닉] 세상에 없던 펫 공간 만들어라…치킨 브랜드까지 나선 ‘펫 프렌들리’ 실험 [비크닉] 랍스터 롤부터 츄러스까지, 서울 몰려드는 외식 브랜드들 [비크닉]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4.01.30 07:00

  • 랍스터 롤부터 츄러스까지, 서울 몰려드는 외식 브랜드들 [비크닉]

    랍스터 롤부터 츄러스까지, 서울 몰려드는 외식 브랜드들 [비크닉]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지하 1층 식품관에는 미국 뉴욕에서 온 ‘루크스 랍스터’의 팝업이 차려졌다.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성업 중인 프리미엄 해산물 프랜차이즈로 국내에서는 최초로 선보이는 브랜드다. 이날 루크스 랍스터 팝업 현장은 상징적 메뉴인 랍스터 롤과 새우롤, 크랩 롤, 수프 등을 맛보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루크스 랍스터 독점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제이알더블유(JRW) 관계자는 “팝업 첫날 백화점 측 예상 매출의 두 배를 웃돌았다”며 “오는 4월 국내 정식 매장을 앞두고 많은 소비자 의견을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문을 연 루크스 랍스터 더현대서울 팝업 현장. 랍스터 롤을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루크스 랍스터   지난 5일에는 같은 자리에서 스페인 츄러스 브랜드 ‘츄레리아 산 로만’의 팝업 스토어가 열렸다. 역시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역의 명물로, 국내 최초로 문을 열었다. 약 10일간 진행됐던 팝업 스토어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스페인 여행지에서 경험했던 맛을 다시 보기 위해 들른 사람들과 SNS 입소문을 타고 방문한 젊은 세대들이 핵심 고객이다. 츄레리아 산 로만의 아시아 대륙 판권을 가진 허정 더블에이치F&B 대표는 “바르셀로나에서 먹어본 이들도 있고, 워낙 친숙한 간식인 데다 가볍게 시도해볼 수 있어 인기를 끄는 것 같다”며 “앞으로 백화점 팝업 일정을 소화한 후 연남동·압구정동 등지에 로드샵도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더현대서울에서 열린 츄러스 브랜드 '츄레리아 산 로만' 팝업 현장. 사진 더블에이치 F&B    ━  해외 프랜차이즈 국내 1호점 러쉬   최근 해외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한국 상륙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햄버거 프랜차이즈 ‘파이브가이즈’가 서울 강남대로에 1호점을 오픈했고, 10월에는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2호점을 열었다. 지난달에는 캐나다 커피 브랜드 ‘팀홀튼’이 강남구 신논현역에 국내 1호점을 열었고, 곧이어 선릉역에 2호점을 내 화제가 됐다.   지난달 14일 캐나다 커피 브랜드 팀홀튼의 신논현역 1호점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사진 팀홀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유명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인 ‘인텔리젠시아 커피’도 국내 1호점 개점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국내서 인텔리젠시아 원두 등 상품을 B2B 형태로 유통하고 있는 커피 수입·유통 전문회사인 MH파트너스가 최근 한국에 독점적으로 매장을 열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미국 유명 커피 브랜드인 ‘피츠 커피’도 지난해 5월 국내에 상표권 등록을 마쳤다. 유명 투자가 워렌 버핏이 경매에 부치는 점심이 이뤄졌던 뉴욕의 스테이크 하우스 ‘스미스 앤 월렌스키(Smith & Wollensky)’도 올해 9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국내 첫 매장을 열 예정이다.   워렌 버핏의 스테이크 집으로 유명한 스미스 앤 월렌스키도 올해 하반기 국내 상륙한다. 사진 와이제이 파트너스    ━  프리미엄 외식 수요 노린다   글로벌 외식 브랜드들의 잇따른 진출 배경으로는 국내 미식 문화의 성장이 꼽힌다. 특히 해외 브랜드가 보는 한국 시장의 최대 매력은 활성화된 소셜 미디어다. 오픈 소식부터 실시간으로 소셜 미디어에 공유되며, 입소문이 나면서 매장을 찾는 이들로 이어지는 등 흥행 여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빠르고 트렌디한 데다 미식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이 늘면서 서울이 아시아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맡김차림(오마카세) 식당이 인기를 끄는 등 국내 미식 문화가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며 “특히 최근 들어 프리미엄 외식 수요를 공략하는 해외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빠르고 트렌디한 데다, 프리미엄 외식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한국은 해외 외식 브랜드에 있어 매력적인 시장이다. 사진 루크스 랍스터   여기에 검증된 브랜드로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는 국내 외식 업체들의 필요가 맞물린다. 루크스 랍스터는 국내서 멕시칸 레스토랑 온더보더 등을 운영하는 제이알더블유가, 팀홀튼은 버거킹과 파파이스 등을 운영하는 비케이알코리아가 마스터 프랜차이즈 형태로 들여왔다. 브랜드를 만들어 인지도를 쌓고 성공시키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로열티 지급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보장된 브랜드가 낫다는 판단에서다.      ━  팝업이 관문, 미식은 훌륭한 ‘집객’ 콘텐트   특히 팝업 스토어가 활성화하면서, 국내 진출 가능성을 염두에 둔 해외 외식 브랜드의 실험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실제로 루크스 랍스터와 츄레리아 산 로만 모두 정식 매장 오픈을 앞두고 백화점 식품관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어 소비자들의 반응을 테스트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백화점 식품관이 외식 브랜드의 한국 진출 마중물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백화점 입장에서도 계속해서 신규 고객을 유입시키고 신선함을 불러일으키는 데 이런 해외 외식 브랜드의 팝업을 유치하는 것이 도움된다. 김현우 현대백화점 F&B 바이어는 “식품은 다른 카테고리에 비해 경험에 대한 공감을 얻어내기가 쉽고, 음식 사진 등 비주얼 바이럴(입소문) 전략이 가장 잘 통하는 분야”라며 “SNS상에서 가장 이슈화되는 것이 외식 브랜드인 만큼 새로운 손님 모으기 콘텐트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미쉐린 암행어사' 120년 여행 노하우 푼다, 日 최고 호텔 어디? 서울 미디어아트위크 명당은 삼성역 O번 출구…. 도심 물들이는 빛 축제 "'화장품 병' 버리지 마세요, 집 앞에 두면…" 아모레의 큰 그림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4.01.18 18:02

  • 화장품 대신 책으로 꽉 채웠다…이 브랜드의 지적인 접근법[비크닉]

    화장품 대신 책으로 꽉 채웠다…이 브랜드의 지적인 접근법[비크닉]

    실험실 약병 같은 갈색 병들이 오와 열을 맞춰 흐트러짐 없이 진열돼 있습니다. 들어서는 순간 번잡한 외부와는 완벽하게 차단된 편안한 정적이 흐르는 곳이죠. 눈에 거슬리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플라스틱보단 나무 혹은 스테인리스, 유리 등 자연에서 유래한 자재로 꾸며진 내부는 완벽하게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공간을 채우는 은은한 향까지도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죠. ‘사려 깊은 디자인은 삶의 질을 높인다’는 믿음을 지닌 이솝은 스토어 디자인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진 이솝   혹시 눈치채셨나요? 길거리를 지나다 발견하면, 한 번쯤 들어가서 향을 맡으며 정신적 휴식을 취하고 싶은 장소. 바로 화장품 브랜드 이솝의 스토어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솝 스토어가 지난 6월 대대적으로 변신한 적이 있어요. 선반 위 가지런히 정돈된 제품이 모두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책으로 채웠죠. 바로 이솝 가로수길 스토어와 한남 스토어에서 열린 ‘우먼스 라이브러리’ 얘기입니다. 코스메틱 브랜드에서 제품 대신 책이라니, 흥미롭지 않나요?   왜 이솝은 이날 제품들 대신 책을 진열해뒀을까요? 오늘은 이솝이 만든 세계와 그 세계를 그토록 우아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동력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해요.    ━  서울 상륙한 이솝 도서관   올해 6월 열렸던 ‘이솝 라이브러리’는 그간 이솝이 진행했던 여러 캠페인 가운데 가장 이솝다웠던 캠페인이었습니다. 코스메틱 브랜드의 캠페인이면서도 단 하나의 제품도 등장하지 않은 매우 이례적인 캠페인이기도 했고요. 주인공은 바로 책, 그중에서도 한국 여성 작가 14인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이날만큼은 스토어 공간을 채운 이솝 제품 특유의 향 사이로 종이 냄새가 가득했죠.   이솝 라이브러리는 지난 2021년 미국과 캐나다에 위치한 이솝 스토어 세 곳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성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퀴어 라이브러리’를 주제로 개최됐죠. 이후 캐나다·유럽을 거쳐 지난해부터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아시아 지역에서도 열렸고요. 지난 5월 23일에는 서울 한남동에, 6월 1일에는 가로수길에 상륙했습니다. 각각 약 2주씩 진행됐던 우먼스 라이브러리 기간 두 스토어는 제품을 위한 진열용 선반을 책에 잠시 양보했습니다. 지난 5월 말 이솝 한남 스토어에 책이 진열된 모습. 사진 이솝   한국에서 열린 이솝 라이브러리의 타이틀은 ‘이솝 우먼스 라이브러리-글로 쓴 예술과 문화, 그리고 삶’이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를 대변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여성 작가들의 14개 작품을 소개했죠.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손보미 작가의 『우연의 신』(현대문학), 정세랑 작가의 『지구에서 한아뿐』 (난다) 등 신진 작가와 기성 작가 작품을 비롯해 장·단편 소설, 시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가 포함됐고요.   이 기간 스토어에 방문한 고객들은 제품 대신 자신이 원하는 책을 한 권 고르면 됩니다. 다음 카운터로 가면 늘 이솝 제품을 포장해주던 코튼백에 담아주죠. 코튼백에 이솝 향수를 뿌려주는 것도 잊지 않고요. 물론 한쪽에서는 여전히 원하는 이솝 제품을 테스트할 수 있어요. 이솝 스토어의 트레이드마크인 ‘싱크 데모(제품 시험용 싱크)’는 여전히 운영했으니까요. 또 스토어 한쪽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조용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가로수길의 경우 2층 전체가 조용한 서가와 소파가 있는 여느 도서관과 다름없는 풍경이 펼쳐졌죠.    ━  이솝 우화처럼, 간결하게 농축하다   이솝은 광고하지 않는 브랜드로 유명합니다. TV 광고는 물론, 그 흔한 잡지 광고조차 하지 않죠. 그러면 어떻게 브랜드를 알릴 수 있을까요? 글쎄요,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좋은 제품과 훌륭한 스토어입니다.   이솝의 오프라인 스토어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광고입니다. 이솝 특유의 잘 정돈된 스토어가 시각적 광고 역할을 하고, 스토어에서 주는 고객 경험이 마케팅이 되며, 그곳에서 진행되는 활동이 캠페인이 되는 거죠. 이솝의 ‘우먼스 라이브러리’는 그러니까, 이솝이 브랜드를 알리는 중요한 활동의 하나로 기획된 겁니다. 여성 작가들의 책으로 꾸며진 이솝 가로수길 스토어 전경. 사진 이솝   그런데 코스메틱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의 활동이 도서관이라니 조금 독특하죠. 하지만 이솝이 추구하는 브랜드의 결을 가만히 따라가 보면 이런 ‘문학적’ ‘지적’ 교류가 이번 한 번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솝이라는 브랜드 이름 자체도 고대 그리스의 이솝 우화에서 따온 것이고요.    ━  약점이나 불안감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솝은 1987년 호주 멜버른에서 만들어진 스킨케어 브랜드입니다. 창립자 데니스 파피티스(Dennis Paphitis)는 질 좋은 코스메틱 제품을 구상하면서 짧고 간결하지만 몇 천 년이 흐른 지금까지 일관된 진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솝 우화를 떠올렸습니다. 삶의 본질적인 지혜가 응축된 이야기처럼, 본질적 효능을 농축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인 거죠.   이솝이라는 브랜드 이름은 고대 그리스의 이솝 우화에서 따왔다. 사진 이솝 브랜드의 출발부터 그래서였을까요. 이솝은 지난 30여 년 동안 ‘지적 교류를 통한 균형 잡힌 삶’을 지속해서 추구해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항상 문학이 있었고요. 뷰티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로는 조금 독특하죠. 혹시 발견하신 적이 있나요? 이솝 제품의 패키지에 쓰여 있는 격언과 문장들, 삶의 지혜들을요. 예를 들어 올해 출시한 리프레시 바 솝(비누)에는 미국의 작가이자 시인인 카운티 컬린(Countee Cullen)의 ‘I have a rendezvous with life(나는 삶과 만나기로 했네)’라는 인용구가 쓰여있죠.   또 이솝은 제품의 정확한 정보만 전달할 뿐 고객의 약점이나 불안감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가지고 있어요. 캠페인 자료에 ‘주름 고민 개선’ 대신 지혜를 주는 한 줄을 적어둔 것처럼요.     ━  어른들을 위한 침대맡 동화   이솝은 여기서 더 나아가 지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호주 주간지 ‘새터데이 페이퍼’와 함께 에세이 공모전 ‘더 혼 프라이즈(The Horne Prize)’를 주관했습니다. 세계적인 문학 전문지 ‘파리스 리뷰(The Paris Review)’와 협력해 뉴욕의 이솝 첼시 스토어의 벽과 천장을 페이지와 표지로 장식하기도 했고요. 문예지 파리스 리뷰로 장식된 이솝 첼시 스토어 전경. 사진 이솝   흥미로운 프로젝트도 진행합니다. 바로 ‘이솝 미래 우화’인데요. 문학 전문 웹사이트 ‘리터리러 허브’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지난해부터 작가들과 함께 어른들을 위한 침대맡 이야기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팟캐스트를 통해 공개되고요.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의 ‘잠은 모두 그녀의 것’, 저널리스트 아멜리아 아브라함의 ‘쥐와 햄스터’ 등의 작품들이 공개됐습니다. 약 7~8분가량 이어지는 팟캐스트는 동시대 작가들의 교훈적 우화를 통해 현대의 도덕성에 대해 다루죠.   이솝의 문학적 행보는 한국에서도 이어집니다. 지난 2019년부터 여러 작가와 함께 파리스 리뷰에 실린 단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진행해왔습니다. 이솝 사운즈 한남과 한남, 가로수길 스토어에서 문학 전문지 ‘파리스 리뷰’를 판매하고 있고요. 펭귄북스로 꾸며진 이솝 한남 스토어. 사진 이솝   또 한남 스토어에 가면 책장에 비치된 책을 상시로 볼 수 있도록 안락한 소파를 비치해 두었어요. 방문객들은 정원이 보이는 소파에 앉아 편안한 독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죠. 지난 2021년에는 오래된 펭귄북스 도서를 새 책으로 교환할 수 있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솝은 왜 이렇게 문학에 천착하는 걸까요? 이솝의 세계관에서는 창의적 추구와 지적 호기심을 훌륭한 삶의 필수적인 요건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  이솝이 만든 우아한 세계   이솝은 브랜딩의 모범 사례로 꼽힙니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화장실에 가면 왜 늘 이솝 핸드 워시가 있을까요? 공간을 고급스럽게 만들고 싶을 때 화룡점정처럼 이솝 제품을 가져다 놓는 이유는요. 소비자들 사이 ‘이솝=고급스러움’이라는 연상 작용 덕분이겠죠. 좋은 공간에 가면 늘 놓여있으니, 이솝이 스스로 광고나 마케팅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본 효능에 기반을 둔 심플한 패키지, 독특한 아로마와 에센셜 오일의 향, 한옥 등 지역색을 살린 유니크한 스토어 인테리어, 싱크 데모와 1:1 컨설턴트 등 환대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사려 깊은 스토어 경험 등. 이솝의 성공 비결은 다양하게 꼽을 수 있겠지만, 딱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특유의 ‘세계관’일 겁니다   세상에는 이미 수만 개의 스킨케어 브랜드가 존재합니다. 기능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렵죠. 대신 어떤 브랜드나 제품을 통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면 어떨까요. 물건이 아니라 생활을 판다는 감각으로요.   요즘 뷰티 업계를 포함, 수많은 브랜드가 이런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를 표방합니다. 제품 스펙의 경쟁이 끝난 지금,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제품이 주는 가치겠죠. 기능 충족은 기본, 내가 추구하는 삶의 스타일과 결이 맞는지가 중요합니다. 이솝은 단순한 뷰티 브랜드를 넘어 삶의 철학까지 투영할 수 있는 브랜드를 지향한다. 사진 속 제품은 이솝 아로마틱 인센스 스틱과 브론즈 인센스 홀더 사진 이솝.   이솝은 화려한 수식어나 신제품을 내세우기보다 특유의 세계관을 만드는 데 공들여왔습니다. 문학과 예술에 기반을 둔 다양한 활동들은 그 세계를 견고하게 만드는 훌륭한 질료가 됐고요.   번잡한 일상을 뒤로하고 한 템포 쉬어가고 싶을 때, 삶의 균형을 찾고 싶을 때 자연스레 이솝의 제품들을 떠올립니다. 단순히 뷰티 브랜드를 넘어 삶의 철학까지 투영할 수 있는 브랜드. 이솝의 브랜딩이 남다른 이유, 바로 이것 아닐까요.     관련기사 "저는 재미없음을 못 견뎌요"...장르 그 자체된 '나솔' 그 남자 [비크닉] "엄만 왜 일만해?" 울던 빈대떡집 딸, 광장시장 힙플로 만들다 [비크닉] 캐럴 사라진 자리 크리스마스 마켓…벌써 1만 명 몰려간 이곳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3.12.16 07:00

  • [비크닉] 서울 여행의 무료 길잡이…서울 미래유산 100% 활용법

    [비크닉] 서울 여행의 무료 길잡이…서울 미래유산 100% 활용법

    안녕하세요. 지난 10월 레터에서 서울 산책자들을 위한 가이드라인 ‘서울 미래유산’을 소개했는데, 기억나시나요? 서울, 특히 구도심을 걷다 보면 붉은색 금속판에 새긴 ‘서울 미래유산’ 인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는 아니지만, 시간과 역사가 깃들어 들여다볼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서울시에서 지정·관리하는 제도입니다. 오늘 비크닉에선 지난번 레터에서 미처 못다 한 이야기를 담아봤어요. 서울 미래유산을 나타내는 붉은 인장. 사진 서울 미래유산    ━  무료 답사 프로그램으로 숨은 보물찾기   서울 미래유산을 답사하는 가장 대표적인 오프라인 이벤트는 ‘동행매력 서울투어’ 프로그램입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서울 여행을 할 수 있는 일종의 가이드 투어인데요. 김정미(46세) 씨는 이 투어에 7번이나 참여한 ‘마니아’입니다. 우연히 SNS에서 투어 프로그램을 발견해 신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는 남산 자락 아래 ‘해방촌.’ 이름의 유래는 물론, 땀을 흘리며 힘들게 올라갔던 언덕배기와 108 계단의 기억이 강렬했다고 합니다. 김 씨는 “평소 같으면 스쳐 지나가기 바빴던 서울의 거리에 스며든 역사적 의미를 알 수 있어서 즐거웠다”며 “마치 서울 구석구석에 숨은 보물찾기 같았다”고 말합니다. 김정미 씨는 곰 인형을 지니고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인증샷을 남기곤 한다. 사진 김정미   동행매력 서울투어는 서울 미래유산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매주 주말 미래유산이 포함된 서울의 이곳저곳을 함께 둘러볼 수 있죠. ‘자유와 예술의 거리, 대학로 투어’ ‘올림픽의 성지가 된 송파 여행’ ‘근대 기억을 따라 걷는 길, 남산 로드’ 등 타이틀도 매력적이네요. 약 스무 명 남짓한 답사 정원이 금방 채워질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지난 11월 11일 투어가 18회 차였어요. 내년에도 투어 프로그램이 이어진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홈페이지 즐겨찾기를 해두어도 좋을 것 같네요.    ━  스티커 수집하며 ‘도장 깨기’도   여럿이 함께하는 투어도 좋지만, 혼자만의 서울 여행을 선택한다면 ‘스티커 여권 투어’를 추천합니다. 서울 미래유산의 약 50개 장소에 방문 후 스티커를 수령해 자신만의 서울 여행 여권을 만드는 거죠. 마치 ‘도장 깨기’랄까요. 갈 수 있는 모든 장소를 방문해 여권을 채우겠다는 목표의식을 은근히 자극합니다. 시민공모전을 통해 디자인되는 스티커는 각 장소의 모습을 매력적인 그림과 문구로 표현해 그 자체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있고요. 한 곳에 배부한 스티커 약 1500장이 5개월 만에 소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김미선씨의 서울 미래유산 여권. 미래유산에 방문해 배부하는 스티커를 모을 수 있는 여권이다. 사진 김미선   서울 용산구에 사는 김미선(58세) 씨는 서울 미래유산 스티커 여권 투어의 매력이 푹 빠졌답니다. 김 씨는 개인 스케치 노트를 만들어 각 장소의 모습을 자신만의 그림으로 남겨두곤 합니다. 벌써 50장이나 노트가 빼곡하게 채워졌다고 하네요. 그는 “처음에는 단순히 스티커가 예뻐서 모으고 싶었는데, 다니다 보니 나만의 노트를 만들고 싶을 만큼 서울 미래유산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말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는 은평구에 위치한 ‘불광 대장간’을 꼽았는데요. 옛 방식으로 꼼꼼하게 만든 식도와 과도가 그렇게 탐이 났다고 하네요. 김미선씨는 개인 스케치 노트에 미래유산의 스티커와 함께 각 장소의 그림을 남기고 있다. 사진 김미선    ━  보신각 타종, 서울광장… 모두가 우리의 ‘유산’   서울에는 발길 닫는 곳곳 시간과 역사의 필터를 끼고 들여다볼 만한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 즐비합니다. 서울 미래유산은 이런 가치 있는 문화유산 중 특히 근·현대의 유산에 집중합니다.    현재도 쓰이고 시민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근현대 서울의 유·무형 유산이죠. 박물관에 박제된 유적이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숨 쉬는 유산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어요.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미래유산은 지난 2013년 선정을 시작해, 올해로 500개를 넘어섰습니다. 장소로는 400여 곳, 무형 유산으로는 100여 개가 지정됐죠. 보신각 종을 새해 첫날, 삼일절 등 기념일에 타종하는 행사가 지난 2016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사진 서울 미래유산   예를 들어 1486년 도성의 문을 여닫는 종으로 쓰이다 광복 이후 시민과 각종 기념행사를 함께 기억하고 나누는 행사가 된 ‘보신각 타종’, 대한민국 근현대 주요 사건의 발생지였지만 현재 시민들과 행사·축제 등 서울의 상징적인 장소가 된 ‘서울광장’이 대표적이죠. 과거 서울을 대표하는 정수장에서 현재는 생태공원이자 친환경 물놀이터가 된 ‘선유도 공원’ 같은 곳도 있습니다.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과 감성을 지녔고, 앞으로의 미래 세대에게도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더 오래 남도록, 미래유산 수리 지원   도입 초창기 서울 미래유산은 발굴과 선정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앞으로는 이를 잘 보존하고, 시민들이 잘 향유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단순히 길거리에 붙어있는 붉은 현판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찾아주고 기억할 때 살아남아 미래 세대에까지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이런 취지로 서울 미래유산 지원 사업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 미래유산은 기본적으로는 민간이 주도해 보존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 위기에 놓인 미래 유산이 늘어가고 있어요. 서울시에서는 ‘미래유산 소규모 수리 및 환경개선 지원사업’을 운영 중입니다. 서울 미래유산 노후화 방지를 위해 소유자가 신청할 경우 심의를 통해 최대 2000만원까지 소규모 공사를 시행할 수 있도록 실비를 지원하는 사업이죠.   종로구 혜화동 ‘한무숙 문학관’이 수리 지원 혜택을 받은 대표적 미래유산입니다. 『등불 드는 여인』, 『만남』 등의 작품을 집필한 소설가 한무숙의 사택인데요. 창작의 산실이자 문학적 자취를 되새겨볼 수 있어 지난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됐습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한무숙 문학관. 사진 서울 미래유산   20세기 초 유명 대목장인 심목수가 건립한 정취 넘치는 옛 가옥은 어느새 70여년의 세월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에는 아시아 건축가협회로부터 ‘아카시아 건축상’을 받기도 했죠. 문학도만이 아니라 건축사나 건축과 학생들도 자주 찾는다고 하네요.   한무숙 작가의 장남인 김호기 관장은 “전시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야 관람객들이 더 잘 관람할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한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조명이나 기와가 낡아가고 전시 공간이 어두워 고민이 많았는데, 미래유산 수리 지원 덕분에 보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서울시 미래유산 소규모 수리 및 환경개선 지원 사업을 통해 문학관의 낡은 기와와 조명 등을 수리했다. 사진 서울 미래유산    ━  50년 100년이 쌓여 위대한 유산이 된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에서 50년, 100년은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면 미래 세대에게 문화유산으로 전달될 기회조차 없겠죠. 어제도 오늘도 우리 옆에 존재했던 일상을 미래를 위해 남겨둔다는 게 서울 미래유산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요.       관련기사 캐럴 사라진 자리 크리스마스 마켓…벌써 1만 명 몰려간 이곳 "저는 재미없음을 못 견뎌요"...장르 그 자체된 '나솔' 그 남자 [비크닉] [알면 쏠쏠한 경제 비크닉] 종부세 줄이려면 부부 공동명의 유리? 고령자·장기보유자 공제도 따져봐야 "엄만 왜 일만해?" 울던 빈대떡집 딸, 광장시장 힙플로 만들다 [비크닉]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3.12.09 17:07

  • "적은 돈으로 명품 산다"...'문구 덕후' 불러 모은 핫플 비결 [비크닉]

    "적은 돈으로 명품 산다"...'문구 덕후' 불러 모은 핫플 비결 [비크닉]

     ━  #INTRO: 새로운 마음   새해의 문턱, 1월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저는 13년 전 스무 살이 됐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꼭 이맘때쯤 칼바람이 부는 1월의 겨울이었어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세상에 나아갈 준비에 한창이던 친구들을 뒤로하고, 재수 종합학원으로 첫걸음을 하던 우울한 재수생이었죠.   고3 내내 썼던 제도 샤프를 버리고, 대형 서점으로 가 새로운 샤프펜슬과 샤프심을 고르고 또 골랐어요. 가고 싶었던 대학 문턱에서 미끄러진 것이 샤프 탓이겠냐마는, 새것을 사니 새로운 마음가짐이 들어 좋더라고요.   샤프를 사서 돌아오는 발걸음에 기분만큼은 산뜻했던 저처럼, 문구 하나에 가슴 설레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 있어요. 비크닉 새해 첫 레터는 '문구 덕후'가 차린 문구점, 포인트오브뷰(Point of View)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포인트오브뷰 플래그십 스토어. 사진 포인트오브뷰      ━  #연필과 지우개를 스토리텔링하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자리한 포인트오브뷰. 연필, 샤프, 볼펜, 종이, 지우개 등 필기구와 그를 사용하는 '공간'을 꾸미는 오브제까지, '문구'라 하면 떠오르는 모든 제품을 한곳에 모아둔 문구 편집숍 브랜드예요.   2018년 성수동 카페 '오르에르'의 2층 한 구석, 20평 정도 되는 곳에 조그맣게 차린 판매대가 포인트오브뷰의 출발이었어요. 간판도 없이, 아는 사람만 아는 점포 속 또 다른 점포였죠. 지난해 11월 새단장을 해 공간을 확장하면서 지금은 180평, 3층짜리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해요.   포인트오브뷰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 1층 모습. 사진 포인트오브뷰   '창작을 위한 도구를 제안하고 스토리텔링하는 곳.' 브랜드를 기획하고 만든 김재원 대표는 포인트오브뷰를 한 마디로 이렇게 설명했어요. 브랜드명 포인트오브뷰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관점’이라는 뜻이에요. 이곳을 찾는 소비자들의 관점이자, 도구를 보는 이들의 관점이기도 하죠.   "연필로 종이에 글이나 그림을 그렸을 때 어떤 사람은 사각거리는 느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물 흐르듯이 부드러운 촉감을 좋아하죠. 포인트오브뷰는 그러한 다양한 관점에 맞춰서 상품을 제안하는 곳입니다."   포인트오브뷰의 상징은 세잔느의 사과다. 사과 정물화를 즐겨 그린 세잔느는 여러 각도에서 관찰한 사과를 작품에 녹였다. 사진 박영민    ━  #써본 이와 써보지 않은 이의 경험치는 달라   포인트오브뷰의 상징은 사과예요. 애플(Apple)이 아닌, 프랑스의 화가 '세잔느의 사과'죠. 정물화의 대가인 세잔느는 일평생 사과 그림을 그렸어요. 그는 사과를 한 각도에서 본 것이 아니라 앞, 뒤, 옆, 위에서 각각 본 시점을 하나의 프레임에 그려 넣었어요. 하나의 오브젝트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작품에 녹아 있죠.   브랜드의 상징인 사과를 그려 넣은 다이어리, '애플 저널'에도 포인트오브뷰가 도구를 대하는 관점이 숨어있어요. 성경처럼 측면을 금박과 은박으로 길딩(Guilding, 박 인쇄)한 것이 특징인 제품이죠. "다이어리에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도할 때의 마음으로 빗대어 표현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에요.   포인트오브뷰의 대표 상품 '애플 저널'. 측면을 금박과 은박으로 인쇄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 박영민   "한번은 가게를 방문한 학생들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 세상에 문진(文鎭, 종이가 바람에 날리지 않게 눌러두는 물건)이라는 것을 돈을 주고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라고요. 그 학생에게 문진은 쓸모없는 것이라 돈을 주고 산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얘기였죠. 문진을 사러 일부러 가게에 방문하는 고객도 물론 있어요. 문진을 써본 사람과 써보지 않은 사람의 경험치는 달라요. 그 역시 관점의 차이인 거죠."   제품의 배치 등 고객의 관점에서 공간 구성을 신경 쓴 점도 특징입니다. 포인트오브뷰를 방문한 사람들은 마치 해리포터의 도서관 같은 인테리어에 끌려 가게 곳곳을 산책하듯 물건을 살펴보죠. 문을 열고 들어가 처음 본 것이 연필이라면, 바로 근처에서 연필과 어울리는 노트를 금세 찾을 수 있어요. 물론, 군데군데 숨어있는 예측할 수 없는 구성 또한 포인트오브뷰가 추구하는 공간의 매력입니다. 노트를 둘러보다가 옆으로 돌아섰는데 갑자기 유리구슬 오브제가 툭 튀어나와 호기심을 유발하죠. 당장 제품을 구매하진 않아도, 공간을 체험하는 것만으로 잠재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에요.   제품에 대한 관점을 설명하는 짤막한 토막글도 제공한다. 사진 박영민    ━  #문구 덕후를 불러 모은 비결   포인트오브뷰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다는 성수동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가 됐어요. 또 다른 매장인 여의도 '더현대 서울' 점포에도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요. 그런데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도, 상품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MD도 없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광고비를 써본 적도 없죠.   광고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을 가게로 불러 모은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선, 문구는 비교적 호불호가 나뉘지 않는 제품이에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사용하는 것이 바로 펜과 종이죠. 김 대표는 "적은 돈으로도 잘 만든 ‘명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라고 부연했어요. "좋은 자동차를 구입하려면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를 지불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10만원이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품질의 볼펜과 노트를 살 수 있어요."   포인트오브뷰에 방문한 한 소비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문구에 대한 관점을 메모지에 기록했다. 사진 박영민    ━  #좋은 도구를 보는 안목   "어릴 때부터 문구에 관심이 많았어요. 부모님께 용돈으로 100원을 받으면 친오빠는 슈퍼마켓으로 가서 100원짜리 과자를 사 먹었지만, 저는 문방구에 들러 100원으로 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애썼어요. 문방구 사장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젠 꿈을 이뤘네요. 도구가 바뀌면 창작물도 달라진다는, '도구빨'을 믿어요."   포인트오브뷰엔 문구 덕후인 김 대표가 직접 써보고 괜찮았던 제품들로 가득해요. 김 대표의 문구 콜렉션인 셈이죠. 이렇게 모은 제품 가짓수는 1만여개가 넘어요.   김 대표는 "좋은 제품을 보는 안목을 가지려면 일단은 많이 써봐야 한다"고 했어요. 또 "이 세상에 흩어져 있는 창작을 위한 도구들을 모아 이런 상품도 있다고 제안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며 "문구를 잘 만드는 나라의 제품을 가져와 소개하고, 우리가 또 잘 만들 수 있는 제품은 직접 개발해 고객들에게 제안하고 싶다"고 덧붙였어요.   사진 언스플래시    ━  #뱀발: 성수동과 젠트리피케이션   "큰 공간과 작은 공간, 이상한 공간이 혼재하는 것이 성수동의 매력이었어요. 세련된 공간과 노포가 함께인 곳. 청담동이나 한남동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죠." 김 대표는 2018년, 포인트오브뷰가 성수동에 처음 발을 디뎠던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요즈음 성수동의 분위기는 그 때와는 사뭇 달라졌어요. 몇 달 새 골목골목마다 스티커 사진 숍 같은 프랜차이즈 점포가 많이 들어섰고요. '팝업스토어는 성수동에 차려야 한다'는 불문율이 생기면서 가게를 여는 것보다 '대관'을 하는 게 돈이 되는 동네로 바뀌고 있어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원주민이 내몰리고, 프랜차이즈가 들어와 자리를 메우는 현상)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죠.   "스티커 사진 숍 같은 것도 있으면 좋지만, 그런 공간이 '성수동의 콘텐트'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팝업 또한 '변주' 콘텐트일 뿐, 메인 콘텐트는 아니죠. 메인 콘텐트를 만드는 공간도 함께 늘어나야 변주 콘텐트도 힘을 받아요. 포인트오브뷰가 그 역할을 미약하게나마 돕고 싶어요."   브랜드와 공간, 동네가 성장하는 것은 모두 콘텐트의 힘이라 믿는 김 대표. 콘텐트를 '돌보며' 성수동의 생명력을 연장하겠다는 포인트오브뷰의 원대한 계획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비크닉 편집숍은 살아 움직인다, 비이커가 브랜드를 발굴하는 법 [비크닉] 로컬과 상생 코드 품었다…진화하는 스타벅스의 공간 마케팅 [비크닉] "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단독] '백색가전' 돌아온다…LG전자 다시 색깔 빼는 이유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2023.01.15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