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탐냈다면 보물 잃었다, 간송이 지켜낸 위대한 유산

  • 카드 발행 일시2024.05.17

요즘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2년 만에 열린 ‘간송의 보물 곳간’을 들여다보려는 관람객으로 북적입니다. 1938년 세워진 보화각이 1년7개월간 보수·복원 공사를 마친 것을 계기로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6월 16일까지)이 열리고 있어서죠. 예전엔 봄·가을 상설전시 때마다 이 흰색 건물 앞에 끝도 없는 줄이 늘어서곤 했는데, 요즘엔 인터넷 사전예매(회차당 100명, 무료) 덕분에 그 같은 수고는 피할 수 있습니다.

반원형 돌출 구조에 비대칭 구성이 멋들어진 보화각은 간송 전형필(1906~62)의 꿈의 공간이었습니다. 당시 이 일대는 북단장이라고 불렸는데요. 간송은 국내 1세대 건축가 박길룡(1898~1943)에게 여기 세울 보화각과 부속 가옥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이번 전시엔 당시 설계 때의 청사진이 발굴돼 처음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간송의 ‘일기대장’도 처음 공개됩니다. 당시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던 간송은 이를 관리하기 위해 매일 금전 출납을 꼼꼼히 기록했는데요. 6·25전쟁 등 혼란기를 거치면서 상당수 사라졌고 이번에 1936년, 1937년, 1938년 기록이 발견됐습니다. 이 안에는 오늘날 전해지는 여러 유물의 구입 기록이 남았을 뿐만 아니라 1930년대 후반 간송 전형필의 생애를 살필 수 있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보화각 개관기념 사진. 아랫줄 오른쪽 셋째 한복 차림이 간송 전형필이다. 사진 간송미술관

보화각 개관기념 사진. 아랫줄 오른쪽 셋째 한복 차림이 간송 전형필이다. 사진 간송미술관

이번 주 ‘문화비타민’은 간송미술관 김영욱 전시교육팀장의 도움을 받아 간송의 일기대장을 들여다봤습니다. 이를 통해 그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어떻게 지키고 관리했나 엿봅니다. 재개관전에서 만난 전인건 간송미술관장과의 인터뷰도 담았습니다. 전 관장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간송의 장남이었던 전성우(1934~2018) 전 관장이 “간송미술관을 지키기 위해 사실상 자신의 커리어를 희생하신 분”이라고 했는데요. 이 3대의 사연을 듣고 나면 보화각에서 만나는 문화유산이 한층 예사롭지 않습니다. 간송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오는 문화의 날(5월 29일)엔 별도 예약 없이 관람할 수 있습니다.

간송미술관

일제강점기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이 사재를 털어 수집한 문화재를 수장·연구·전시하기 위해 1938년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박물관. 삼국시대부터 조선말·근대에 이르기까지 서화·전적·도자·공예 등 조형미술 전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소장품을 자랑한다.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상감 운학문 매병’, ‘혜원 전신첩’ 등 국보 12점과 ‘미인도’ 등 보물 30점 외에 조선 진경시대를 연 겸재(謙齋) 정선의 서화, 추사(秋史) 김정희의 글씨 등을 보존해 왔다.

농장 곡식 팔아 추사·겸재 걸작 사들여 

간송미술관 재개관전에 선보이고 있는 간송 전형필의 일기대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간송미술관 재개관전에 선보이고 있는 간송 전형필의 일기대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