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과 밀정, 그리고 여운형…김구 측근은 권총 빼들었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4.24

 〈제2부〉 여운형과 김규식의 만남과 헤어짐  

① 천성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기

해방정국의 풍운아 여운형

장수한 사람의 일생을 살펴보면, 하루에 만나서 말을 걸어본 사람이 7세 이전에는 5명, 학생 시절 20년 동안에는 20명, 청장년기 40년 동안에는 30명, 은퇴한 뒤 15년 동안의 노년에는 5명 정도 된다. 그러면 한 생애 80년 동안에 60만 명 정도와 말을 나누는데, 대부분은 부모·부부·친구·동료·자식과 중복된다. 국회의원에 출마해 시장통에서 악수한 것을 빼면, 우리가 일생에 인연을 맺는 사람은 5000명 남짓이다.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2005년 독립유공 대통령장,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중앙포토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2005년 독립유공 대통령장,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중앙포토

그들 가운데에는 처음 만나 인상 좋고, 어쩌면 내 편이 될 것만 같고,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흔치 않지만, 가끔은 있다. 인품 좋고, 부티 나고, 말 통하고, 언변 좋고, 사회적 위치도 번듯하고, 인상도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한국의 현대사에 그런 인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여운형(呂運亨)을 꼽고 싶다. 그는 경기도 양주 대지주의 아들로서 인물 좋고, 언변 좋고, 인상 좋고, 호감 가는 인상에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에 빠질 것이 없었다. 정치인으로서의 미덕인 체력도 좋아 각종 운동에 익숙해 훗날 초대 조선체육회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인상 좋은 사람을 겪어보고 나면, 그 사람은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비슷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것은 큰 미덕이며 장점이 될 수 있으나 그가 어느 순간에 그 인상 좋던 내 친구인지 아니면 이제는 내 적군의 동지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는 때가 온다. 그는 자신이 그 ‘포커판의 조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그때가 바로 가장 위험한 시기이다. 그때는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 여운형이 바로 그랬다.

목사가 되려 했던 ‘금수저’ 출신 

여운형은 양주 지주의 아들로 부러울 것 없는 금수저 출신이었다. 어머니가 태몽으로 용꿈을 꾸어 호를 몽양(夢陽)이라 지었다지만 태몽이란 엄마가 자식에게 부여하는 회상성 기억 조작(retrospective falsification)일 경우가 많은데 이 점에서는 승룡(承龍)이라 이름을 지은 이승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렇지 않지만. 여운형의 집안은 대대로 노론이었는데,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선대부터 동학에 호의적이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여운형은 노비 문서를 불태워 모두 면천(免賤)해 주고 땅까지 나눠주었다. 땅을 영혼으로 삼으며, 땅이 곧 신분이던 전근대 사회에서 그렇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비범하고 상찬받을 만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