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수습, 본인 덕 아니다…‘용두사미’ 황선홍에 남은 불씨

  • 카드 발행 일시2024.03.22

‘임시 사령탑’ 타이틀을 달고 축구대표팀 선장 역할을 맡은 황선홍 감독이 태국과의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첫 경기를 답답한 무승부로 마쳤습니다. 다가올 일정은 더욱 부담스럽습니다. A매치는 태국 원정 경기를 앞두고 있고, 다음 달엔 본업인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돌아가 파리 올림픽 본선행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은 황선홍 감독은 ‘축구대표팀 갈등 봉합’과 ‘A매치 승리’ ‘파리 올림픽 본선행’까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을까요. 만약 하나라도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가 나온다면 황 감독은, 그리고 한국 축구는 어떻게 될까요. 레드재민이 차근차근 짚어봤습니다.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그림이 있다.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1818년에 그린 작품이다. 힘 있게 솟은 바위 절벽 위에 우뚝 선 사내가 두꺼운 안개에 휘감긴 절경을 내려다본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작품은 다양한 대중매체에 의해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는 의미로 재생산되고 있다.

지금 황선홍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임시사령탑 역할을 겸하며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을 치르고 있다. 약 한 달 전, 그를 축구대표팀 임시 사령탑으로 선택한 건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다. 하지만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최종 결정한 주체는 황선홍 감독 본인이다. 올해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버거운 과제를 짊어진 그는 왜 또 하나의 거대한 짐을 떠안았을까? 대자연 앞에서 위대한 도전에 나서는 프리드리히의 방랑자라도 되고 싶은 걸까?

‘감독 황선홍’의 길과 2024년의 선택
황선홍 감독이 지도자로서 걸어온 길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는 ‘용두사미’가 아닐까 싶다. 2008년 그는 부산아이파크 구단주이기도 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낙점을 받아 부산 사령탑에 올랐다. 지도자로서 특별한 실적을 남기지 못한 그가 K리그팀 지휘봉을 잡은 건, 역시나 2002월드컵 4강을 이끈 주역으로서의 후광이 눈부셨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부산에서 거둔 FA컵 준우승 실적은 3년 뒤 친정 포항 감독직으로 연결됐다. 스틸야드(포항의 홈 구장)에서 황선홍 감독은 2012년 FA컵 우승에 이어 2013년 외국인 선수 없이 K리그 최초의 더블(정규리그와 FA컵 동반 우승)을 이뤄냈다. K리그 최우수감독상 트로피를 받아든 그에게 ‘한국의 펩 과르디올라’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놀랍게도 여기까지로 용의 머리 부분이 끝나고 곧장 뱀의 꼬리 부분이 시작된다. FC서울에서 황선홍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들과 충돌했다. 첫 시즌 K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그의 명성은 따분한 경기력과 팀 분위기 장악 실패가 겹치며 급속도로 마모됐다. 빅 클럽 도전은 결국 2년을 넘기지 못한 채 마감됐다. 지금도 서울 팬들은 황선홍 감독 재임 기간을 ‘암흑기’로 규정한다. 중국 옌볜 푸더에서는 공식전을 치르기도 전에 구단이 해체되는 불운을 겪었고, K리그 신생팀 대전하나시티즌 초대 감독직도 한 시즌을 채우지 못했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부정적인 민심을 일부 돌려놓긴 했지만, 팬들은 그에 대해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에도 불구하고 황선홍 감독의 지도력과 관련한 축구 팬들의 의구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에도 불구하고 황선홍 감독의 지도력과 관련한 축구 팬들의 의구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맞이한 2024년은 황선홍 감독에게 중대한 기로다. 7월 파리 올림픽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여름올림픽은 지도자 경력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이벤트다. 잘하면 높은 곳을 향해 ‘수직 점프’할 수 있지만, 망치면 경력에 커다란 흠집이 생긴다. 그런데 파리 올림픽 본선 출전이 확정되지 않은 시점에 황선홍 감독이 A대표팀의 이달 태국 2연전을 덜컥 받은 것이다.

언론조차 무모한 선택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A대표팀 임시감독직에 신경 쓰느라 다음 달 파리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삐끗한다면 아무도 그를 보호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위기’로 보는 상황을 황선홍 감독 본인은 ‘기회’로 해석한 것 같다. 일단 첫 걸음부터 어긋났다. 21일 태국과의 홈 경기를 졸전 끝에 1-1로 비기며 자존심을 구겼다. 남은 원정경기를 깔끔한 승리로 마무리 짓고, 4월에 올림픽 10회 연속 본선 진출마저 달성한다면 흐름을 바꿀 수는 있다. 어쩌면 그 이후에 시작될 A대표팀 정식 감독 선임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지도 모른다. 이 모든 건 이론적으로만 보면 충분히 가능한 셈법이다. 그런데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