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둘째가 그림 그리는 걸 보면 여러 생각이 들어요. ‘그래, 너도 열심히 하면 엄마만큼 그릴 순 있겠다. 그런데 미대 나와서 뭐 먹고 살래? 인공지능(AI)이 너보다 더 빠르게, 더 잘 그릴 텐데….’
글로벌 에듀테크 기업 에누마를 이끄는 이수인 대표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요즘 이런 생각 안 해 본 분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엔씨소프트에서 게임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이면 지금의 교육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토도수학을 시작으로 토도영어·토도한글 등을 론칭해 전 세계 20여 개국 앱스토어(어린이·교육 부문)에서 1위에 오른 에누마가 AI 디지털교과서 제작에 뛰어든 것도 그 때문이다. 2012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남편 이건호 최고기술책임자와 함께 만든 에누마는 다양한 국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모색해 왔다.
이 대표는 “학교와 사회에는 일종의 단절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학교 밖에서는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학교는 부작용을 우려해 사용을 막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졸업 후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일찌감치 제대로 사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AI 시대 교육은 어떻게 변할까?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격변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AI는 현재 교육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지난달 23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 물었다.
Intro. 에누마가 AI 교육에 뛰어든 이유
Part 1. 시대에 맞는 교육 철학이 필요하다
Part 2. 공교육과 손잡아야 바꿀 수 있다
Part 3. 교육 격차는 지금도 커지고 있다
👩💻시대에 맞는 교육 철학이 필요하다
에누마는 YBM과 손잡고 초등 영어·수학, 중·고등 영어 AI 디지털교과서를 개발 중이다. AI 디지털교과서는 AI 기술을 접목해 학생별 맞춤 교육이 가능하도록 한 교육 콘텐트다. 이수인 대표는 “AI 디지털교과서가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전 세계 디지털 교육에 롤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 도입과 더불어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10년 전에도 디지털교과서를 만들었지만 효용이 크진 않았어요.
- 그때는 종이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컴퓨터로 옮기는 방식이었어요. 매체가 달라졌을 뿐 학습 방식은 바뀌지 않았죠. 하지만 AI 디지털교과서는 1:1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요. 개인별 데이터가 쌓이면 수준에 맞는 문제를 제공해줄 수 있어요. ‘L’과 ‘R’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라면 발음을 교정해줄 수도 있고, 습관처럼 자주 하는 문법 실수를 잡아줄 수도 있죠.
- AI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면 아이들마다 각기 다른 진도로 공부하는 게 가능한가요?
- AI를 활용해 아이의 학습 계획을 짜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영어 말하기는 잘하는데 쓰기가 약하다면, 쓰기를 보강할 수 있게 하는 거죠. 하지만 학습 속도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에요. 공부를 못 하는 아이에게 현재 수준보다 낮은 단계의 문제를 주는 것은 괜찮지만, 공부를 잘 하는 아이에게 높은 단계의 문제를 주는 건 현행법상 불가능해요. 선행학습 금지법에 따라 정규 교과과정을 미리 가르치면 안 되거든요.
-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 뜬구름 잡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교육 철학부터 세워야 해요. 결국 ‘AI를 교육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공부란 무엇인가’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과 모두 연결돼 있거든요.
- 공부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저 역시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당시 유학 중이던 남편을 따라 미국에 살게 되면서 생각이 계속 바뀌고 있거든요. 처음 토도수학을 만들 땐, 장애가 있는 저희 집 첫째처럼 학습이 느린 아이도 재미있게 수학을 배우길 바랐어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함께 게임을 만들던 우리 부부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올해 열여섯 살이 된 아이는 또래보다 낮은 단계의 문제를 풀지만 본인이 수학을 잘 하고, 또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공부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