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에 반 클라이번 거머쥔 男 “난 생계형 피아니스트였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3.13

📌3줄 요약

✔ 30세, 세계적인 명성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지원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나이인데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마지막 기회를 기어코 우승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한국인 최초였죠.
✔ 그전까지는 자신을 '생계형 콩쿠르 출전자'라고 말할 정도로 커리어에 대한 조바심이 컸다고요. 직업인으로서 피아니스트의 고충을 묻자 "평생 끝이 없다는 것"이라는 고수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 '트렌드 기획자들 by 폴인'이 최근 클래식 붐을 이끄는 대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선우예권을 직접 만났습니다. '순수예술'이라는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평생의 불안감을 이겨내고 음악적 승부를 걸까요? 그 비결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2월,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쇼팽을 협연한 다음 날 상암동 JTBC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사진 폴인, 송승훈

지난 2월,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쇼팽을 협연한 다음 날 상암동 JTBC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사진 폴인, 송승훈

모든 마디에 ‘내 생각’을 담아야 한다  

2017년 반 클라이번(Van Cliburn)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이었죠. 그런데 참가를 고민했다고요?

두 번째 도전이었거든요. 또 당시 공연을 조금씩 하고 있었는데요. 고민이 됐어요. 큰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더 높은 인지도를 얻겠지만, 결과가 좋지 못하면 지금 있는 기회마저도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했죠. 연주자의 커리어에서 공연을 계속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렇지만 국제 무대에서 더 많이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결국 출전을 결심했어요. 만 28세, 콩쿠르에 참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나이었어요. 간절했죠.

이전의 준비 과정과는 어떻게 달랐나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던 것 같아요. 무대를 마쳤을 때, 조금의 아쉬움이나 후회도 없었죠. 1시간 가까이씩 총 4라운드를 연주해야 하니 체력 분배도 중요하고요. 또 라운드를 거듭해도 흐트러짐 없이 연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우승하게 되면 많은 공연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그런 점도 평가하거든요. 유일하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느낀 대회였어요.

2017 반 클라이번 콩쿠르 연주 중인 모습. 사진 출처 The Cliburn

2017 반 클라이번 콩쿠르 연주 중인 모습. 사진 출처 The Cliburn

음악적으로 승부가 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설득력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스타일의 호불호는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설득력은 다른 문제죠. 관객을 음악으로 설득하려면 적어도 스스로의 연주에 100%의 확신이 있어야 해요. 가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연주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 게 위험한 거죠.

또 음악적 상상력도 중요해요. 예를 들면 통통 튀는 소리를 표현할 때도 유리처럼 투명하게 표현할 것인지, 농구공처럼 묵직한 소리를 표현할 것인지 고민하거든요. 그런 텍스처나 밀도에서 차별화되고요.

같은 악보를 연주해도 피아니스트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점이 신기했어요. 자신만의 해석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처음엔 용기가 필요하죠. 열다섯 살, 미국 유학을 갔을 때인데요. 당시 커티스음악원에서 선생님이 구체적인 설명을 전혀 안 해주시는 거예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라면 좀 더 노래하듯 표현하라고 얘기할 뿐이었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도통 감을 못 잡았어요.

한국에서는 디렉션을 주시는 대로 연습하면 됐는데, 그게 아닌 거죠. 그 와중에 혼자 곡을 해석해서 연습하는 친구들이 신기해 보였고요. 그때부터 곡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지 않을까요? 그전까지 저는 배운 대로 따라 하는 건 잘했지만, 혼자 생각하는 능력은 부족했거든요.

 커티스 음악원 유학 시절, 처음으로 자신만의 해석에 대해 고민했다. 사진 폴인, 송승훈

커티스 음악원 유학 시절, 처음으로 자신만의 해석에 대해 고민했다. 사진 폴인, 송승훈

조바심 내면 음악도 흔들려, 불안함 이긴 방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