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30세, 세계적인 명성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지원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나이인데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마지막 기회를 기어코 우승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한국인 최초였죠.
✔ 그전까지는 자신을 '생계형 콩쿠르 출전자'라고 말할 정도로 커리어에 대한 조바심이 컸다고요. 직업인으로서 피아니스트의 고충을 묻자 "평생 끝이 없다는 것"이라는 고수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 '트렌드 기획자들 by 폴인'이 최근 클래식 붐을 이끄는 대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선우예권을 직접 만났습니다. '순수예술'이라는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평생의 불안감을 이겨내고 음악적 승부를 걸까요? 그 비결을 알려드립니다.
모든 마디에 ‘내 생각’을 담아야 한다
- 2017년 반 클라이번(Van Cliburn)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이었죠. 그런데 참가를 고민했다고요?
두 번째 도전이었거든요. 또 당시 공연을 조금씩 하고 있었는데요. 고민이 됐어요. 큰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더 높은 인지도를 얻겠지만, 결과가 좋지 못하면 지금 있는 기회마저도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했죠. 연주자의 커리어에서 공연을 계속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렇지만 국제 무대에서 더 많이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결국 출전을 결심했어요. 만 28세, 콩쿠르에 참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나이었어요. 간절했죠.
- 이전의 준비 과정과는 어떻게 달랐나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던 것 같아요. 무대를 마쳤을 때, 조금의 아쉬움이나 후회도 없었죠. 1시간 가까이씩 총 4라운드를 연주해야 하니 체력 분배도 중요하고요. 또 라운드를 거듭해도 흐트러짐 없이 연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우승하게 되면 많은 공연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그런 점도 평가하거든요. 유일하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느낀 대회였어요.
- 음악적으로 승부가 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설득력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스타일의 호불호는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설득력은 다른 문제죠. 관객을 음악으로 설득하려면 적어도 스스로의 연주에 100%의 확신이 있어야 해요. 가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연주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 게 위험한 거죠.
또 음악적 상상력도 중요해요. 예를 들면 통통 튀는 소리를 표현할 때도 유리처럼 투명하게 표현할 것인지, 농구공처럼 묵직한 소리를 표현할 것인지 고민하거든요. 그런 텍스처나 밀도에서 차별화되고요.
- 같은 악보를 연주해도 피아니스트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점이 신기했어요. 자신만의 해석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처음엔 용기가 필요하죠. 열다섯 살, 미국 유학을 갔을 때인데요. 당시 커티스음악원에서 선생님이 구체적인 설명을 전혀 안 해주시는 거예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라면 좀 더 노래하듯 표현하라고 얘기할 뿐이었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도통 감을 못 잡았어요.
한국에서는 디렉션을 주시는 대로 연습하면 됐는데, 그게 아닌 거죠. 그 와중에 혼자 곡을 해석해서 연습하는 친구들이 신기해 보였고요. 그때부터 곡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지 않을까요? 그전까지 저는 배운 대로 따라 하는 건 잘했지만, 혼자 생각하는 능력은 부족했거든요.